4월 8일 (8일차)
중년생은 플레인 크루아상(중년생이 느끼기에 이탈리아 보다는 프랑스식에 가까웠기에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과 에스프레소, 사회는 플레인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를 바에 서서 흡입하고 있었다. 5.1유로. 호텔이어도 바에서 먹으면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두 사람이 묵고 있는 호텔 1층. 큼지막한 빨간 간판에 하얀 글씨로 누가 봐도 일리(illy) 커피를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표시해 놓은 카페였다. 그리고 이 표시는 베네치아에 온 지 며칠이나 되었는데도 그동안 호텔 1층에 붙어있는 카페를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당연히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너무도 익숙한 브랜드라서 들를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 평소 커피를 좋아하는 우리는 한국에서도 핸드드립, 모카포트, 에스프레소머신, 인스턴트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즐기는데 그중에서도 캡슐 커피는 항상 일리(illy)를 고집해서 마셔왔다. 우리 취향에 너무 잘 맞았으니까. 그만큼 한국에서도 매일 즐길 수 있는 커피보다는 이탈리아에 온만큼 접해보지 않은 커피들을 최대한 많이 맛보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마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계속 일리커피는 제쳐뒀어야지 왜 오늘 아침엔 여기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한 가지였다. 본토의 일리를 느껴보고 싶어서.
사실 시작은 어젯밤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어? 대박!!!” 사회가 검색하던 스마트폰에서 눈을 돌려 중년생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일리가 이탈리아 거였네!” 중년생도 놀라서 소리쳤다. “진짜? 매일 마시면서 왜 전혀 몰랐지?” 마시기만 좋아했지 매일 마시는 커피가 어느 나라 상표인지도 몰랐다는 부끄러움이 순간 밀려왔지만 동시에 1층에서 봤던 빨간 일리커피 간판이 떠올랐다. 좀 더 검색해 보니 일리는 슬로베니아 국경과 가까운 이탈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트리에스테(Trieste)에서 탄생한 커피 브랜드였다. 더 궁금해진 중년생이 소리쳤다. “내일 아침에 1층 카페 가자!”
(2023년 4월 8일 토요일)
신선한 카페인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크루아상은 평범한 맛이었지만 커피는 역시 당연하게도 상당히 맛있었다. 브랜드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인 커피의 나라에서 누구나 잘 아는 맛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대다수에게 수준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니까. 중년생은 우리나라에서 마실 때 보다 조금 더 고소하고 조금 더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본토에서 마신다는 기분 탓일 거라는 사회의 말에 부정할 거리가 딱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만난 일리커피를 개인적으로 평가해 보자면, 맛있지만 아는 범위 안에서 좀 더 맛있는 맛이라고나 할까?(쓰고 나서도 참으로 무책임하고 주관적인 소감에 미리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이제 뭐 하지?” 어젯밤 대처를 잘하고 잔 덕분인지 많이 살아난 중년생이 의지를 보이며 말했다. 둘은 머리를 맞댔다. 무리할 필요는 없지만 오늘 오후까지는 수상버스 이용권이 살아 있으니까 본섬으로 가자는 얘기를 하다가 사회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우리, 오늘 카페 데이로 할까?” 무슨 소리냐는 중년생의 말에 “카페 플로리안 가보자고!”라고 대답하는 사회. 좋은 생각이었다.
산마르코 광장 남쪽에 위치한 베네치아의 상징과도 같은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 오늘 우리가 즐기는 일리커피의 조상쯤 되는, 무려 1720년부터 이어져온 역사를 자랑하는 300살도 더 된 카페를 직접 경험해 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본섬으로 들어간 우리는 우선, 햇살을 즐기며 천천히 산책을 시작했다. 어제 배를 타고 오고 가다 눈여겨본 곳이 무라노와 가장 가까운 본섬 선착장인 F.te Nove 부근인데, 유독 풍겨오는 여유로운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거기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근처 골목을 걷다가 배고프면 점심도 해결하고 천천히 쉬다가 오후쯤에 산마르코 광장 안에 있는 카페 플로리안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태양이 강했다. 물 한 병을 사서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살폈다. 우리나라와 같은 편의점은 찾을 수 없어서 두리번거리다 젤라또 가게에 있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발견하고는 가격을 물었다. 엄청 비싸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1.5유로. 살인적인 물가의 베네치아 관광지 한복판인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선착장까지 가는 골목은 생각보다 더 나른하고 한적했다. 우리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마치 슬리퍼를 끌고 동네 편의점으로 향하는 한가로운 주말 오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 사이를 흐르는 물도 일렁임 없이 잔잔했다. 수면 위로는 백색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보석 같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우리는 곳곳에 설치된 붉은색 벤치들 중,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따뜻한 햇살도 옆자리에 가만히 앉았다. 가끔씩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하는 강아지가 눈을 맞추고 지나쳐갈 뿐, 조용하다 못해 시간이 멈춘 동네 같았다. 행복했다.
그렇게 쉬다 걷다를 반복했다. 베네치아에는 골목이 참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천천히 살펴보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본섬 전체가 실 같은 골목들이 얽혀서 만들어진 촘촘한 미로 덩어리 같았다. 심지어 어떤 골목은 너무 좁아서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한 골목에 들어섰을 때 반대편에서 한 외국인이 이쪽으로 걸어 나오는 중이었는데, 서로 지나쳐 갈 수 없을 만큼 좁아서 우리가 돌아 나왔다가 그분이 빠져나온 뒤에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서로 반대편에서 오던 차가 외길에서 만났을 때, 한 차가 후진했다 다시 가는 상황과 꼭 같다고 생각했다.
철썩철썩. 걷다 보니 골목 끝 쪽에 다가갈수록 육지에 부딪히는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어느덧 1차 목적지인 F.te Nove 선착장에 다다른 것이었다. 손목을 구부려 눈앞에 들어온 스마트폰의 시계는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2시간은 족히 산책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선착장 앞에 있는 리스토란테에 들어갔다. 밥이 아니라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에 열흘 정도 있으면서 눈치로 익힌 사실인데, 커피의 나라답게 밖에서 슬쩍 봐서 안에 바가 보이면 거의 대부분 커피를 판매했다. 그리고 리스토란테라고 해도 바에서 마시면 저렴하기 때문에 겁먹을 것이 없었다. 두 잔에 2.5유로. 밖에서 유료 화장실이 인당 1유로는 하니까 맛있는 에스프레소도 마시고 덤으로 화장실까지 이용하면 제법 남는 장사였다. 혀 끝에 닿은 에스프레소는 상당히 진한 쪽이었다. 작고 네모난 포장에 담긴 황설탕 하나를 뜯어 물을 따르듯 조르륵 에스프레소 잔으로 쏟아붓고 티스푼으로 두세 번 젓고는 다시 한 모금. 입가에 미소가 스며들었다. “행복해.” 사회가 말했다. “정말.” 중년생도 말했다.
카페 데이답게 카페인은 채우고, 불편함은 비우고서 다시 산책을 이어갔다. 비슷했지만 똑같은 골목은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색색깔의 과일을 파는 노점이 나타났다. 토마토를 포함한 몇 가지를 제외하면 생긴 모습이 우리나라의 과일과 달라서 섣불리 이름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골목길. 한참을 들어가니 끝은 막다른 물길이었다. 돌아 나오며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이렇게 후미지고 좁은 골목은 위험할 것 같아 들어가지도 않았을 텐데. 여행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만나는 모든 것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꾸게 하니까. 한국에 돌아가서도 여행하듯이 보고 걷고 듣고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시도해 봐야겠다.
계속 걷기만 해서였을까? 갑자기 중년생의 다리에 힘이 빠졌다. 돌아보니 사회도 지친 표정이었다. 입을 열어 얘기해 보니 원인은 둘 다 배고픔이었다. 깊은 골목길 한가운데여서 음식점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선가 음식을 파는 것은 당연지사. 본능에 의지해서 걸음을 재촉한 지 5분 여만에 캄포(Campo) 정도도 안될 것 같은 아주 작은 공터 아닌 공터가 나타났고, 건너편엔 거짓말처럼 오스테리아가 하나 있었다. 온통 집과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갑자기 식당이라니. 깊은 미로 한복판에서 보물상자라도 발견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바로 직진해서 야외 좌석에 앉았다. 친절한 직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건넸다. 물 한 병과 사회는 스프리츠 아페롤, 중년생은 화이트 와인을 한잔씩 주문했다. 놓이는 기본 빵과 물컵. 유리로 된 큼지막한 컵이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예쁘게 장식이 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라노 유리공예로 만든 컵이 틀림없었다. 한입, 한 모금, 그리고 서서히 또렷해지는 눈동자. 여유를 찾으면서 우리는 음식도 주문했다. 너무 배불리 먹긴 싫어서 두 가지만 주문했는데 새우가 들어간 뇨끼와 해산물 샐러드였다. 양도 적당하고 맛있어서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여기서 잠깐! 사회가 선택한 스프리츠 아페롤(Spritz Aperol)에 대해 얘기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로마에서는 주로 투어를 하느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베네치아에 와서 걷다 보니 사람들이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얼음이 든 와인잔에 주황색, 혹은 빨간색의 이름 모를 음료를 감자칩 등과 함께 즐기는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왔고, 그래서 한 번 마셔보고 싶었었다. 그러다가 이 오스테리아에 앉았을 때, 옆 테이블에서 마침 주황색 음료를 마시고 있어서 직원에게 저게 뭐냐고 물어보게 된 것이었다. 직원은 ‘스프리츠’라고 했다. 1800년대에 이탈리아 북부(베네토) 지방에서 당시 도수가 높았던 와인을 희석해 마시던 것이 현대에 들어와서 프로세코(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에 탄산수, 리큐르를 첨가해서 즐기게 된 것이 스프리츠인데 들어간 리큐르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주황색은 아페롤(Aperol), 빨간색은 캄파리(Campari)가 들어간 것으로, 사회가 선택한 것은 아페롤이었다. 마셔보니 감귤 향이 나는 탄산 섞인 술이었다. 빨대를 사용해서 마시는 사람이 많아 ‘달달한 음료’ 정도로 예상했는데 생각 외로 도수가 세서 마시고 나면 어느샌가 알딸딸해지는 술.
나중에는 사회와 중년생 둘 다 즐기게 되었지만 이 날, 스프리츠의 첫인상은 ‘글쎄?’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얼음이 들어가 있어 더운 날에 즐기기 좋은 술을 쌀쌀한 날(골목 안이라 그늘이 져서 그렇게 느꼈던 듯하지만)에 마셔서 더 그랬나 싶다.
여튼, 기분 좋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충전을 마친 우리는 본격적으로 산마르코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낮이 되자 가는 길 곳곳에 벼룩시장처럼 여러 가지 오래된 소품을 들고 나와 판매하는 노점들이 열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평소 소품을 좋아하는 중년생이었기에 당연히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한참을 뚫어져라 구경한 뒤 결국 2개를 샀다. 중년생의 선택은 금속 열쇠(옛날 나무 옷장 열쇠 느낌) 하나와 아주 작은 접시(간장 종지 크기의 기마병이 그려진 접시) 하나였다. 합쳐서 8유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물건을 건네받은 중년생을 향해 친절한 주인 할머니께서 인사까지 건네주셨다. “아리가또!”
중년생이 돌아서다 말고는 쓰고 있던 모자를 가리키며,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웃으며 말씀드렸더니 정말 죄송하다고 하시는 할머니. 죄송할 일도 아니고 당연히 기분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역시 아직 대부분의 서양인에게 아시아는 중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구나 싶었을 뿐. 중년생은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정면에는 나이키 코리아(Nike Korea), 측면에는 태극기가 새겨진 하얀색 모자를 머쓱하게 고쳐 썼다.
2시가 거의 다 되어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오늘의 목적지이자 카페 데이의 3번째 커피를 마실 장소인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으로 당당히 들어섰다. 카페 외부 테이블에 앉으면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실내 좌석을 선택했다. 1720년부터 이어 온 만큼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카페의 속 사정이 더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카사노바도 괴테도 찰스 디킨스도 앉아 시간을 보내던 자리에 앉아서 무거운 은쟁반에 내오는 커피를 즐기고 있으니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모카커피류 2잔에 샌드위치. 50유로. 카페라고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지만 사회와 중년생은 아깝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커피 맛보다, 샌드위치보다, 끊기지 않고 이어진 역사를 현재에 즐길 수 있다는 감사함에 지불한 금액이었으니까. 카페라는 유물을 보고 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하면 맞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남은 베네치아 일정동안 또 오고 싶은 가격은 아니었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금 생각해 봐도 카페 플로리안은 커피와 역사 애호가라면 한 번쯤 와 볼만한 멋진 공간이다. 그러나 플로리안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산 마르코 광장 안에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고, 도착하기까지 본섬의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거치면서 베네치아의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서 깊은 카페를 향해 걸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길. 그 과정 전체가 3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 숨 쉬는 진정한 카페 플로리안을 만들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막간을 이용해 이번 회차의 표지 이미지 역시, 당연하게도 산 마르코 광장 쪽에서 카페 플로리안 창가를 찍은 사진임을 밝히고 넘어가겠다. FLORIAN이라고 쓰인 간판이 계속해서 옆으로 이어져 있는데 관광객이 너무 많이 찍힌 관계로 편집해서 그렇지, 카페 자체의 규모도 엄청나다.
우리는 카페 밖으로 나와 예쁜 입구에서 사진도 찍고 좀 더 둘러보다 산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 쪽을 거닐었다. 어느 쪽으로 걸어도 엄청 높은 종탑이 계속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 베네치아 떠나기 전에 저기도 올라가 보자.” 두 사람은 약속하듯 다짐하면서 선착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3시 30분 정도 되는 시각. 슬슬 바포레토를 타고 출발해야 본섬에서 메스트레로 돌아가는 버스를 탑승하는 시각이 5시를 넘기지 않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첫날 끊은 바포레토 3일 이용권은 첫 탑승 시점부터 72시간 동안 유효하기 때문이었다. 계산해 보면, 첫날 야경투어 시작시간이 5시였고 그 이후에 바포레토를 처음 탔을 테니까 오늘 5시 전까지는 확실한 무료인 셈이었다. 리알토 다리를 거쳐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풍광들이 지나쳐갔다. “몸은 괜찮아?” 기분 좋게 흔들리는 수상버스 위에서 사회가 중년생에게 물었다. “어? 잊고 있었어, 진짜 아무렇지 않네.” 중년생의 대답대로 어느덧 몸살감기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기분 좋은 물살이 우리가 탄 배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배에서 내려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 두 사람이 탄 버스는 2번이 아닌 다른 버스였다. 어제도 갔던 대형마트인 인터스파에서 저녁 장을 보기 위함인데, 와인과 치즈 등을 사는 건 비슷하지만 오늘은 한 가지 미션이 있었다. 그것은 와인에 어울리는 생 햄인 프로슈토 구매였다. 어제도 사서 먹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어제는 가판대에 진열되어 있는 기성품을 그냥 집어서 계산한 것이었다면, 오늘은 정육코너에 걸려있는 수많은 프로슈토 덩어리 중에 원하는 것을 담당 직원에게 얘기해서 원하는 양과 두께를 선택해야 하는 비교적 고난도(언어의 장벽 때문)의 과정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앞의 손님들이 많이 사는 햄 중 맛있어 보이는 햄을 눈여겨 두었다가 차례가 왔을 때 최대한 정확하게 손가락으로 목표물을 가리켰다. 일단 알아들은 눈치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직원이 햄을 집어 들고 중년생을 향해 뭐라고 물어보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 번역기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전파가 잡히지 않아서 더 당황했다. 원하는 두께를 물어보는 줄 알고 중년생은 영어와 손가락을 사용해서 얇게 달라고 몇 번 얘기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직원은 답답한 듯 양쪽으로 손을 벌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회는 부끄러운지 그냥 어제처럼 기성품으로 사서 먹자고 했다. 하지만 중년생은 도전한 김에 꼭 성공하고 싶었다.
한동안 난감해하던 두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것은 어느 노부부였다. 끙끙대는 게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귀여워 보였는지 미소를 지으시며, 점원이 몇 그램을 살 것인지 묻는 거라고 영어로 얘기해 주셨다. 이 순간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얇게 슬라이스 된 생햄 몇 그램이 두 사람이 먹기에 적당한 지도 묻고 싶었으나 우리의 영어도 미천하였기에 직원에게 적당히 200그램을 달라고 했다. 직원은 코팅된 갈색종이 위에 즉석 해서 얇게 썬 햄을 예쁘게 담고 다시 그 위에 투명한 코팅지를 덮어 포장했다. 드디어 받아 들고는 카트에 담는데 어찌나 행복하던지. 사회와 중년생은 대단한 임무라도 완수한 듯한 만족감을 느끼며 개선장군처럼 마트 정문을 나섰다.
미션 클리어. 미션 석세스. 무거운 봉투를 들었지만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 하나도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와인과 함께한 프로슈토 200그램은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지만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우리는 마트에서 햄 하나 산 일을 무슨 전투에서 승리한 경험담처럼 늦은 밤까지 안주삼아 홀짝홀짝 와인을 즐겼다. 이제 베네치아에서 하고 싶은 건 대부분 한 것 같은데 내일은 또 어떻게 흘러갈지 문득 궁금해졌다. 하지만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일정이 없는 것도 우리에겐 하나의 일정이었으니까. 짜여지지 않아 생기는 설렘은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볼 필요도 없는 완벽한 쉼 속에, 끊기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말소리가 불이 꺼진 뒤에도 방 안의 어둠 속을 맴돌고 있었다. 어느새 밤은 더 짙어갔고, 어느덧 소리 없는 잠이 찾아들었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정말 깊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