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회중년생 Jun 06. 2024

Venezia :  맛있는 무라노, 달콤한 부라노

4월 7일 (7일차)

“몸, 괜찮겠어?”

오전 9시가 좀 안된 시각. 사회가 중년생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사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정확히 말하면 새벽부터 중년생은 스스로의 몸 상태가 확실히 좋지 않은 것을 깨닫고 있었다. 증상을 보면 목이 좀 부은 느낌이었고 미열이 있었다. 콧물도 조금 생긴 것 같았다. 아무래도 가져온 옷 중에 예상치 못한 추위를 견딜 만큼 두꺼운 옷이 없어서 생긴 초기 감기 증상 같았다. 중년생은 살짝 걱정이 들어 오늘 일정 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감기약을 사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국 같았으면 이 정도 증상은 약은커녕,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텐데 이탈리아까지 와서 감기로 며칠 앓아눕거나 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였다.

잘 아프지 않는 중년생이지만 한 번 감기나 몸살이 제대로 걸리면 상당히 심하고 오래 앓는 편이어서 자칫하다가는 여행의 제법 큰 기간을 날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나마 다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감기나 몸살 기운이 느껴지면 초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한 덕분인지 언젠가부터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 없을 정도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점은 위안거리였다. 학생 때는 아파서 결석하면 쉬고 맛있는 것도 먹어서 좋다 생각했는데, 회사원이 되고서는 일도 바쁜데 아프면 본인만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방법은 일단, 감기 기운이 올라오면 악화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는 레몬향 가루 감기약을 자기 전에 한포 먹고, 꼭 가글까지 한다. 다음날 아침에도 감기약을 물에 타서 마시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가글을 한다. 그 외에 목이 불편할 때마다 용각산 류를 먹어 목을 편하게 해 준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하루를 투자하면 웬만한 증상은 잠잠해진다. 생각해 보면 별 대단한 방법도 아니지만 중년생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의 감기증상이 목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초기에 목을 계속 소독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물론, 중년생은 의사나 약사도 아니고, 개인이 다년간 경험을 통해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니 단지 참고만 해주시길 바란다. 쨌든, 감기약을 먹는 것과는 별개로 오늘의 일정은 시작해야만 했다. 게다가 오늘은, 바포레토 이용권이 내일 만료되기 때문에 꼭 주변 섬에 가기로 한 날이 아니던가.


(2023년 4월 7일 금요일)

우리는 호텔을 나와 바로 버스를 타지 않고 일단 기차역 푸드코트로 향했다. 지금 본섬으로 들어가면 아침을 먹기에도, 점심까지 기다리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으니까. 맥도날드의 아침 메뉴를 생각하고 갔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역사 안에 있는 맥도날드는 오픈 시간이 늦어 아침 메뉴를 판매하지 않는 것 같았다. 첫날 먹었던 맛있는 조각피자집도 아직 닫혀있었다. 하는 수 없이 커피와 샌드위치 류를 함께 판매하는 바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카푸치노 두 잔과 큼지막한 샌드위치 하나. 9.7유로를 지불하고는 음식을 받아 바 테이블에 서서 입안에 밀어 넣었다. 커피는 상당히 훌륭했지만 샌드위치는 아쉬운 맛이었다. 루꼴라와 생햄, 치즈가 들어가 있었는데 조금 짜고 조금 퍽퍽했다. 중년생만 그랬다면 좋지 않은 컨디션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회 역시 똑같이 느낀 것으로 보아 샌드위치는 적어도 우리 취향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일단 배를 채우는 게 중요했으니까 목적 달성이라면 달성이었다.

카푸치노는 강력 추천입니다만 (이탈리아 음식 문외한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오리발입니다만)

바를 나와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서 어제와 같은 버스를 타고 본섬으로 들어갔다. 오늘 우리가 정한 코스는 본섬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먼저, 유리 공예로 유명한 섬인 무라노(Murano)로 들어가서 걷다가 점심을 먹고, 그다음 알록달록한 건물 색 때문에 사진 스팟으로 유명한 섬인 부라노(Burano)로 이동해서 좀 쉬고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저녁은 오는 길에 어제 잠시 들렀던 대형 마트인 인터스파(Interspar)에서 이것저것 사와 호텔에서 먹기로 했다.

수상버스 정류장에는 우리와 같은 일정의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말도 잘 통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알았냐고? 그냥 알 수밖에 없었다. 정류장에 줄을 서 있는데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의 입에 무라노와 부라노가 수도 없이 오르내렸으니까. ‘무라노 가는 배예요?’라고 묻는 사람은 다른 말 필요 없이 “무라노?”라며 끝만 올려 말했고, 대답하는 수상 버스 관계자 역시 ‘무라노 가는 분들 여기서 줄 서세요!’라는 말 대신 “무라노!”라고 연거푸 외쳤다. 국적은 모두 달랐지만 신기하게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상버스 하나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제법 길었던 대기줄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어 금방 우리 차례가 되었다. 배 안에는 좌석이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앉지는 못하고, 결국 맨 앞 좌석 측면 쪽에 나 있는 작은 공간에 자리 잡고 선 두 사람이었다.

서서히 출발하는 배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무라노로 향하고 있던 그때였다. 우리 앞에 앉아 있던 어느 외국인 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50~60대는 족히 되어 보였는데 사회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하며 일어나려고 했다. 사회가 계속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앉으라고 해서 좀 의아했지만 잠시 뒤 그 이유를 알고 웃음이 터졌다. 혹시 모를 소매치기 걱정에 사회는 크로스 백을 배 쪽에 두고 그 위에 외투를 걸치고는 추워서 지퍼를 올린 상태였는데, 그 부부는 볼록 나온 배를 보고 임산부라고 착각했던 것이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재킷 지퍼를 내리고 가방을 보여주는 사회. 우리 네 사람은 순간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거의 눈물까지 흘리며 한참을 같이 웃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봐도 낯선 외국 여행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웃다가 도착해 버린 유리 공예의 본산 무라노

어느새 승무원은 무라노 선착장에 밧줄을 감고 있었다. 무라노에 도착한 사회와 중년생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선착장 옆에 자리한 유료화장실을 이용한 것이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급해지면 여행이 즐겁지 않고 초조하기만 해진다는 것을 몇 차례 경험한 둘이기에 섬을 둘러보기 전에 화장실부터 들르기로 했다. 잠시 후, 차분해진 몸과 마음으로 섬을 걷기 시작한 두 사람. 유리 공예로 유명한 만큼 여기저기 유리 상점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검색해 보니 옛날 베네치아의 발달된 유리 공예의 핵심 인력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섬으로 이주시켰는데 그 섬이 바로 무라노(Murano)였던 것이었다. 왜 이렇게 작은 섬이 유리 공예로 유명한가 했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무라노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으로만 익숙했던 ‘베네치아의 상인’을 만났다. 당연히 희곡에 등장하는 상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말 단어 그대로의 진짜 베네치아 상인. 우리가 기념품을 구경하러 들어갔던 유리 공예 상점에서 사회와 중년생은 생각지도 못했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평소 사고 싶었던 것 외에는 아무리 옆에서 뭐라고 해도 충동구매를 잘하지 않는 두 사람인데도 판매하는 기술이 그냥 이야~~~~ 소리가 절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말을 어찌나 잘하고 사람들을 홀리던지! 원래는 그저 둘러만 볼 생각이었는데 유려한 말솜씨에 몇 개나 사버렸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처음에 우리가 원하던 것은 작은 컵이었는데 마땅한 것이 없어서 조금 더 둘러보다 그냥 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향초를 담는 작은 그릇. 잠깐, 정말 아주 잠깐 예뻐서 머뭇거렸는데 베네치아의 상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갑자기 그 향초 그릇의 디자인과 좋은 점을 설명하더니, 원하면 충분히 컵으로도 사용 가능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누가 봐도 컵은 아닌데 장사꾼의 임기응변에 웃음이 났다. 청산유수로 말을 잘하는 장사꾼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불편한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이 정도로 유쾌한 상인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우리 집에는 향초 그릇이 6개 있다.

이래 저래 섬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지치고 배도 고파왔다. 특히 중년생은 사회에게 따로 말은 안 했지만 약간의 감기 몸살 기운 때문인지 더 지쳐있었다. 우리는 메인 거리에서 작은 골목을 지나 베르나르도 소광장(Campo S. Bernardo)에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여유로운 평일 무라노의 정겨운 캄포에서 휴식을! (맞은편에 상아색 저거 = 식당)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캄포(Campo)라는 말을 많이 보게 되는데 흔히 알고 있는 광장이라는 뜻인 피아짜(Piazza) 보다는 규모가 작은 광장을 캄포라고 한다 했다. 유모차를 끌고 계시는 멋진 패션의 할머니와 옆에서 함께 걷는 꼬마 숙녀도 무언가 얘기를 나누시는 할아버지 두 분도 바닥에 내려앉은 비둘기 들도 모두가 여유로운 동네의 평일 점심 풍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12시가 조금 못 된 시각. 잠시 뒤면 현지인들로 식당이 가득 찰 것이 분명했다. “어디서 먹지?” 여유롭던 두 사람의 마음이 살짝 바빠졌다. “어? 저 맞은편에 저거, 식당 같은데?” 사회의 말에 중년생도 벤치 맞은편 건물을 유심히 쳐다봤다. 혹시나 해서 구글맵으로 확인까지 해보니 오스테리아가 틀림없었다. 주변에 보이는 다른 식당도 없고, 당연히 무라노 섬에 아는 데도 없어서 우리는 바로 정면으로 돌진했다. 다행히 식당은 거의 비어있었다. 신기했던 건 우리가 들어가서 자리에 앉은 때가 12시 10분 전쯤이었는데, 12시 땡 치자마자 정말 사람들이 몰려들어 상당히 넓은 실내가 만석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현지 동네 사람들 같았다.

다시 가고 싶은 무라노 현지 식당 (만석 되기 10분 전)

중년생의 기대감이 더 올라갔다. 맛을 떠나서 현지인들이 평소에 먹는 점심을 온전히 경험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까. 모든 테이블 위엔 이미 바구니에 빵이 세팅되어 있었다. 우리는 화이트 하우스 와인 1/4병과 물부터 주문했다. 이 집에서는 하우스 와인을 1잔, 1/4병, 1/2병, 1병 단위로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토마토 파스타 하나와 새우, 문어, 게 등의 해산물을 쪄서 레몬과 치즈를 곁들여 먹는 음식도 하나, 그리고 소고기 스튜도 하나 주문해서 와인과 곁들였다. 정말 맛있었지만 그보다 기분이 좋았던 건, 한참 먹으면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대부분의 현지인들도 우리가 주문한 것과 같은 메뉴를 먹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대만족. 우리는 마지막으로 에스프레소 한잔씩을 더 즐기고 나왔다. 그렇게 즐기고도 모두 합쳐 37유로. 세계적인 관광지라 더 살인적인 베네치아 물가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가격이었다.

죄송합니다 오늘도 먹방 사진이라서 (feat. 너무도 착한 가격에 멋진 맛)

즐거운 마음에 순간 자취를 감춰버린 피곤. 우리는 두둑해진 배를 기분 좋게 쓰다듬으며 다음 목적지인 부라노(Burano)로 향하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흘러가는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머릿결을 이따금씩 바람이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물에 반사되는 태양 빛이 눈부셔 선글라스에 저절로 손이 갔다. 모든 순간이 힐링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도착한 부라노는 정말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에메랄드, 핑크, 옐로, 그린... 건물마다 다른 색들이라 자칫하다간 촌스럽거나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햇살이 밝게 비춰서인지 아니면 아름다운 물길이 앞으로 나 있어선지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다. 무라노나 부라노나 섬이 크지는 않지만 매력만큼은 크고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 속에 제일가는 포토 스팟이 있다면 바로 여기! @부라노 어디쯤

하지만 우리는 T인 것일까? 사회나 중년생이나 이 섬이 아름답다는 것은 분명 알겠는데 그뿐이었다. 두 사람 다 셀카를 남기거나 SNS를 즐겨하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인지 감동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한참을 여유롭게 둘러보다 다소 지루해진 우리는 입이 궁금해진 사회의 제안으로 젤라또를 먹기로 했다. 감기 기운이 있던 중년생이었지만 듣자마자 침을 꼴깍 삼켰다. 목표를 먹는 것으로 바꾸니 풀려가고 있던 두 사람의 눈동자가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딱 봐도 유명해 보이는 집에 줄을 섰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가게는 오래되어 보이고 콘의 외모(?)도 범상치 않았다. 여기서 잠깐! 부라노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배경 삼아 범상치 않은 젤라또의 자태를 담은 사진이 이번 편의 표지 이미지에 선정되었음을 고지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보통 크기의 콘을 선택하고 두 가지 맛을 골랐다. 콘 2개에 8유로. 우리가 선택한 맛 가운데서도 피스타치오가 일품이었다. 생각하던 맛과 전혀 달랐다. 미숫가루 같기도 하고 여튼, 곡물의 향이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도 다른 젤라또 집과는 스타일이 다른 곳이었다. 갑자기 중년생이 혼자 웃었다. 무라노는 유리 공예의 본산이지만 우리에겐 맛있는 현지 밥집을 만난 섬이고, 부라노는 예술적인 색감의 건축물로 유명한 곳이지만 우리에겐 그보다 콘 아이스크림 맛집, 아니 맛섬(?)으로 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술적인 색감의 부라노 건축물 (젤라또 얘기만 한 게 미안해서 남기는 사진)

역시 여행의 반은 먹는 즐거움으로 기억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맛있는 젤라또를 혀로 핥으며 좀 더 여유를 즐겼다. 아마도 3시 정도 되었을까? 우리는 슬슬 돌아가기로 했다. 중년생의 몸 상태를 고려해서였다. 무라노와 부라노는 이미 충분히 둘러봤고, 괜히 조금 더 보자고 무리했다가 내일 더 악화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라면 5시 전에는 수상 버스에서 내려 본섬을 빠져나가는 버스에 탑승해야 크게 붐비지 않을 것이었고, 부라노에서 본섬까지는 좀 거리가 있기 때문에 여유 있게 출발하는 편이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덕분에 훨씬 편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본섬으로 향했다. 본섬에 내려 잠시 약국에 들러 미리 검색해 뒀던 레몬향 가루 감기약을 한통 샀다. 이름만 살짝 다르지 한국에서 항상 먹던 약과 같은 성분인 것이 틀림없었다. 조금은 든든해진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대형 마트에 도착하니 5시경. 우리는 배가 고파진 김에 닥치는 대로 샀다. 우선 로마에서 가이드 분이 추천해 주셨던 산 지미냐노 지방의 베르나챠(Vernaccia)라는 화이트 와인을 한 병 담고, 먹고 싶은 안주 겸 저녁을 담았다. 작은 샌드위치 두 개, 모짜렐라 덩어리 치즈, 까망베르 치즈, 삶은 브로콜리, 삶은 새우, 문어와 올리브 초절임에 급기야는 초밥까지 담았다.

호텔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우리의 저녁 만찬 (feat. 가이드님, 추천해 주신 게 저 와인 맞죠?)

호텔로 돌아와서 씻고 나니 7시 반 정도. 정말 정말 꿀 같은 식사와 와인이었다. 로마 때와 다르게 이 호텔에는 가득 차려놓고 먹을만한 유리 테이블까지 있었기 때문에 여유롭게 먹고 즐기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먹었을까? 배가 차오르자 어느새 피곤이 스멀스멀 몰려오고 있었다.

마침 물을 올린 커피포트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김을 내뿜었고, 중년생은 레몬향이 나는 감기약을 따뜻하게 타서 호호 불어가며 마셨다. 친근한 향기가 목 안을 어루만지며 조심스레 넘어 들어갔다. 목과 몸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회가 깜빡 졸았다가 눈을 다시 떴다. 이제는 정말 잠자리에 들 차례였다. 두 사람은 양치질을 하고, 어제 사뒀던 가글을 하고 침대에 몸을 던지듯이 누웠다. 오늘 밤만 잘 자면 분명히 내일은 괜찮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내일은 뭐 하지?” 사회가 말했다. 일단 푹 자고 일어나 호텔 1층에 있는 커피 바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다른 건 내일 컨디션을 봐서 정하기로 했다. 진짜 이제부터는 정해진 것이 없는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중년생은 벌써 약기운이 퍼지는지 빠르게 그리고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사회는 이미 말이 없었다. 아득해진 귀에서는 “무라노!”, “부라노!”하고 외치는 관광객들과 선원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맴도는 것 같았다.

이전 07화 Venezia : 베네치아도 식후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