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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Jun 27. 2024

Venezia : 베니스가 베네치아였어?

4월 10일 (10일차)

테이블에 놓인 메모지 위에 5유로짜리 지폐 한 장을 올려 두고 우리는 본섬으로 가기 위해 메스트레 기차역으로 향했다. 메모지에는 사회가 호텔 직원 분을 향해 남긴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Tip for You. Grazie! :)’ 말 그대로 팁이었다. 아무리 객실 안이라고는 하지만 어제 미니금고를 열어둔 채로 외출했는데도 분실한 것 없이 잘 관리해 주신 것은 물론, 부활절 초콜릿까지 받은 것에 대한 작은 성의 표시였다. 사실, 어제 금고를 열고 나갔는데 이러저러해서 감사하다고 적고 싶었지만 외국어가 짧은 관계로 길게 적을 수는 없었다. 팁을 메모와 함께 남긴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묵는 동안 매일 아침 1유로나 2유로짜리 동전을 팁으로 객실 테이블 위에 두고 외출했었는데 거의 가져간 적이 없으셔서였다. 이탈리아에선 팁이 필수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도 해서, 그냥 놔둔 돈이 아니라 팁임을 명확히 알려드리고 싶었다.

누군지 모를 직원분께 감사한 마음의 접선을 시도하며 (feat. 두근두근 바운스)

(2023년 4월 10일 월요일)

사람들이 가득한 메스트레 기차역으로 들어가 승차권 판매기 앞에 줄을 섰다. 오늘은 왜 버스가 아니라 기차인가 하면 우리에겐 더 이상 바포레토(수상버스) 교통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김에 오랜만에 기차를 타기로 했다. 줄이 좀 길긴 했지만 급한 일이 있는 날도 아니어서 사회와 중년생은 ‘오늘 뭐 할까?’라는 주제로 대화를 하며 기다렸다. 생각보다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순식간에 우리 바로 앞 순서. 중년생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우리 차례를 준비했다. 그러나 1분, 2분... 5분...... 계속 기다려도 우리 앞의 서양 중년 부부는 판매기 앞을 떠날 줄 몰랐다. 가만히 보니 중간중간 뒤쪽을 돌아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 모양새가 뭔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중년생이 그분들 어깨너머로 판매기를 들여다 보고는 말했다. “우리가 처음에 헤맸던 거랑 똑같아. 현금으로 계산하려면 저쪽 버튼 눌러야 하는데 못 보셨나 보네.” 그러고는 웃으면서 판매기로 다가가 버튼을 눌러드렸다.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표정과 행동으로 연거푸 고맙다고 하시는 부부. 잠시 어깨가 으쓱해졌지만, 쓰는 언어가 이탈리아어도 영어도 아닌 걸로 보아 관광객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중년생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서양인들도 국가마다 쓰는 언어가 많이 다를 것이 분명한데, 외모가 비슷하면 당연히 의사소통에도 문제없을 거라 무의식 중에 확신했던 스스로에게 민망해서였다. 여행 중에 우리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걸어오는 서양인들이 무례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스스로도 똑같지 않은가? 중년생이 한창 반성모드를 켜고 있던 그때, 사회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 많이 발전했다. 그치?” 중년생도 뿌듯하긴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표 살 때마다 서툴러서 긴장했었는데 이젠 남을 도와줄 만큼 여유가 생겼으니 말이다. 실없게도 내려갔던 어깨가 다시 금방 으쓱해졌다.

메스트레 역 -> 산타루치아 역으로 가는 열차에서 바라본 철길

산타루치아 역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매표소로 직행하여 바포레토 1일권을 구매했다(2장 50유로). 왜냐하면 오는 길에 상의한 결과 오후에 리도(Lido) 섬을 다녀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리도섬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다시 설명하기로 하겠다.

티켓을 산 후, 여유를 부리며 조금 걷다 보니 사회는 속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11시가 조금 못된 시각. 늦잠을 자고선 아침을 거르고 나왔으니 배고픈 것이 당연했다. 우리는 간단히 커피와 빵을 먹기로 하고 가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하나 둘 길가에 테이블을 펼치기 시작했다. “저기 어때?” 사회의 제안에 눈을 돌리니 깔끔한 나무 테이블을 깔아 둔 오스테리아 하나가 보였다. 대부분 다른 가게들이 한산한 반면, 이곳은 제법 사람들이 많이 앉아서 카푸치노와 꼬르네또를 즐기고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구성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커플, 엄마와 아빠와 아이로 구성된 가족, 연인 등 다양했다. 한 눈으로 봐도 검증된 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평범한 집이라고 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매번 백 퍼센트 맛집만 고집한다면, 실패했을 땐 오히려 스트레스는 배가 될 테니까. 우리는 스트레스를 피해서 온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야외 테이블에 착석. 그리고 우선 중년생은 에스프레소를, 배가 고팠던 사회는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빵류는 사회가 먹을 한 입 거리의 작은 햄치즈 샌드위치 하나를 골랐다. 오늘도 따사로운 햇살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어, 저건 뭐지?”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온 것을 보며 중년생이 말했다. 샌드위치와는 좀 다른 모양이었는데 작은 빵 위에 햄이랑 이것저것이 올라가 있어 먹음직스러웠다. 검색해 보니 치케티(cicchetti)라는 것이었다. 치케티는 베네치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한 입 거리 빵 위에 햄이든 치즈든 올리브든 생선이든 정말 다양한 재료를 올려서 먹는 핑거푸드를 말하는데 와인과 곁들이기에 아주 훌륭하다고 나와있었다. “이런 건 또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샌드위치는 안 먹겠다던 중년생은 갑자기 배가 고파졌는지 직원을 불러 치케티 4조각을 주문했다. 화이트 와인 두 잔도 함께. 잠시 뒤 프로슈토에 치즈에 트러플까지 올려진 치케티가 나왔다. 주문할 때 우리가 나눠 먹을 거라고 얘기했더니 아예 두 접시에 두 조각씩 나눠 담아 주셨다. 우리를 보며 활짝 웃으며 처음보다 더 친절해진 직원분. 커피 마시러 왔다가 음식까지 주문하니 뭔가 더 흐뭇하셨던 것 같았다.

숭배하라! 꿈에서도 먹고 싶은 치케티와 화이트 와인

치케티의 비주얼은 너무 훌륭했다. 주변에서 뚫어져라 쳐다보던 손님들이 우리 테이블 서빙이 끝나자마자 직원분을 호출해서 우리 쪽을 가리키며 물어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우리와 같은 것으로 주문!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식당 주인이라도 된 것 마냥 뿌듯했다. 사실 이것은 중년생의 특이(?)한, 그리고 고질적(?)인 버릇이었다. 음식점이나 카페에 갔을 때 야외석이나 창가석에 앉게 되면 사람들에게 보이게 최대한 맛있게 먹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들어오거나 같은 메뉴를 주문하면 엄청 뿌듯해하는, 사회가 보기엔 참 쓸데없고 특이한 버릇이었다. 쨌든, 크지 않은 치케티는 환상적이었고 달지 않은 와인은 기분 따라 달달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출렁이는 물결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어두워진 시야 너머로 햇살의 밝고 따뜻함이 눈꺼풀에 와닿는 것이 느껴졌다. 마냥 앉아있고 싶은 정오쯤의 베네치아였다.

푸드드득-

“꺄악!!!” 사회의 비명에 놀라 눈을 뜬 중년생의 눈앞에는 커다란 갈매기 한 마리가 목표물을 향해 날아와 그 위로 착지하듯 날개를 천천히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목표물은 하나 남은 사회의 치케티. 좀 더 정확히는 치케티 윗부분의 프로슈토였다. 갈매기는 순식간에 프로슈토와 치즈, 트러플까지 한 입에 물고선 빵만 남겨두고는 다시 세찬 날갯짓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하하하하!” 잠깐의 정적 뒤에 우리는 물론, 지켜보던 다른 테이블 모두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 상황이 황당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무엇보다 알짜배기만 잽싸게 채간 녀석이 신기하기도 했으니까. 사회와 중년생, 그리고 갈매기까지 3인분에 25유로를 계산하고 일어섰다. 커피와 빵, 치케티, 와인에 에피소드까지 모두 합친 가격치고는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식사였다. 여기서 잠깐! 이때 우리 테이블을 습격한 갈매기는 이미 날아가 버려서 못 찍었고, 나중에 비슷한 녀석을 발견해서 카메라에 담아둔 것이 오늘의 표지 이미지임을 알려드린다.

빵만 남겨진 우리의 마지막 치케티 조각 (feat. 갈매기 네가 맛있었다면 그걸로 됐어)

우리는 산 마르코 광장을 지나 본섬의 깊숙한 안쪽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갈수록 점점 한산해지는 거리. 건물과 건물 사이에 빨랫줄이 걸려 있고 그 위로 널려 있는 색색깔의 세탁물. 사회와 중년생의 시시콜콜한 질문이 오고 갔다. “상당히 긴데 어떻게 연결했을까?”, “양쪽이 다른 집일 텐데 서로 협의하에 설치했겠지?” 정도로 시작했던 대화는 급기야는 “같은 날 동시에 빨래양이 너무 많으면 어느 집 빨래를 먼저 널까?”, “갑자기 비가 오는데 한쪽 집에만 사람이 있으면 다른 집 빨래를 대신 걷어 줄까?”로까지 이어졌다. 현지인에겐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보는 우리에겐 하나하나가 사진으로 담고 싶은 작품 같았다. 걷다가 가판대에서 베네치아 기념 마그넷 2개를 샀다. 하나에 1유로. 총 2유로의 추억을 넘겨받아 가방에 담았다.

캡틴 아메리카도 스파이더맨도 널려 있는 베네치아의 어느 골목길

걷다 보니 갑자기 멋진 자갈이 깔린 탁 트인 가로수길이 등장했다. 범상치 않은 동상도 있는 이 길은 바다까지 이어져 있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Viale Garibaldi. 가리발디? 많이 낯익은 이름이다 했는데 역시나였다. 다름 아닌 이탈리아의 통일과 이탈리아 왕국의 설립에 공헌한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를 기념하는 길이었다. 해는 뜨겁고 다리도 살짝 아파왔다. 2시 반쯤 된 시각. 다행히도 가로수 사이로 카페가 하나 보였다. 높이가 살짝 있는 야외 테이블에 놓인, 역시 발이 땅에 닿을락 말락 할 정도 높이의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 냅킨 박스 위에 QR코드 하나와 Menu Digitale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는 시스템이 확실했다. 역사의 땅 위에 펼쳐진 미래 기술이라니. 멋진 공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는 Spritz Aperol, 중년생은 Spritz Campari을 주문했고 곧이어 서비스 포테이토 칩과 함께 서빙되었다. 서로 말이 없었지만 서로 행복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탈리아로 떠나오기 전에는 쉴 때도 뭔가 알차게 쉬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었는지 언제나 끊임없이 대화 주제를 찾고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었는데 이제야 진짜 휴식을 보내는 기분이었다. 육체는 물론, 정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진정한 쉼. 시간이 지날수록 온전한 충전이 되고 있었다.

스프리츠에 감자칩이어도 아니어도 좋네 (feat. 하얀 햇살)

얼마나 쉬었을까? 이제는 슬슬 리도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바다를 보며 조금 걸었을 뿐인데 갑자기 녹색 잔디밭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일광욕을 하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만들어진 섬이기 때문에 공간이 귀해 녹지대가 보이지 않는 베네치아인데 섬 끝에 이런 공원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찾아보니 리멤브란체 공원(Parco delle Rimembranze)으로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일몰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여유로운 휴식을 하기 그만인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공원 앞의 S. Elena 선착장에서 바포레토를 타고 리도 섬으로 들어갔다. 리도(Lido)는 베네치아 본섬 오른쪽 끝에서 아주 살짝 떨어져 있는 섬으로서 아래로 아주 길쭉하게 늘어진 구조를 가졌다. 이탈리아어로 해안을 뜻하는 리도(Lido)라는 이름만큼이나 섬 전체가 모래사장이 깔린 해안가로 이어져 있는 곳. 워낙 길어서 지도상으로 보면 마치 기다란 갈비뼈 하나가 놓인 것 같이 보인다. 그리고 리도 섬의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매년 이곳에서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열린다는 점이다. 이 내용을 검색해 보면서 두 사람이 이탈리아에 대해 얼마나 지식이 미천했는지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중년생이 말했다. “그 베니스가 이 베네치아였어?” 항상 뉴스를 통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누가 후보에 올랐고, 수상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었는데, 그 베니스가 여기 베네치아의 영문식 발음이라는 것도 몰랐으니 잠시 동안(솔직히 말하자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사회도 찔리는지 화를 내듯 위로했다. “모를 수도 있지. 뭐, 꼭 다 알아야 해?”

1932년부터 개최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자 세계 3대 영화제가 매년 8월 말에서 9월 초순 사이에 펼쳐지는 섬. 워낙 정보 없이 온 여행인 탓에 하마터면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가져온 이탈리아 여행 책자의 베네치아 편을 보면 리도는 아예 빠져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리도에 내려보니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축제를 하지 않는 시기의 리도섬에는 그야말로 해안가와 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고급스러운 별장들 밖에 없었으니까.

볼거리가 아쉬울 땐 먹거리! (내추럴(?)한 비주얼의 리도 젤라또)

평소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리도 입구에서 2스쿱짜리 맛있는 젤라토를 하나씩 사서(총 6.6유로) 할짝할짝 핥으며 그 한적한 여유로움을 즐기며 만족했지만 그것이 전부였기에, 여행 패키지나 여행 책자에서 다루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우리는 긴 해안가의 일부를 천천히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즐기다 천천히 내렸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이쯤 되면 에스프레소가 당기는 것은 인지상정. 사회와 중년생은 눈빛 교환만으로 의견 일치를 확인하며 선착장 근처의 적당한 커피바로 들어가 에스프레소를 한잔씩(총 2.4유로) 마셨다. 커피에 황설탕을 넣어주는 것은 이제 당연지사. 그리고 그 사이에 화장실을 이용해 주는 것은 어느새 필수코스였다. 커피바를 나오자 이미 기울어진 해가 리도를 떠날 시간임을 알려주었다.

리도의 어느 해수욕장(좌)과 해안가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산책로(우)

베네치아의 동쪽 끝이 평화롭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섬과의 작별. 우리는 선착장에서 돌아가는 바포레토를 탔다. 작은 팁을 하나 말하자면, 시간이 충분할 경우 1번 배(2023년 4월 기준)를 타자. 그리고, 리도가 종착역이자 시발역이기 때문에 혹시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배 하나 정도를 보내고 타는 것이 좋다. 이 배는 산타루치아까지 가는 동안 모든 정류장에 정차하기 때문에 자리에 앉기만 한다면 여유롭게 천천히 투어 하듯 경치 감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당을 차지하면 가는 시간은 길면 길 수록 좋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또 하나! 리도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시각을 해가 떨어질 때쯤으로 맞추면 배 안에서 어마어마한 석양을 즐길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해보시길 강추드리는 바이다.

우리는 바포레토에서 내린 후, 산타루치아 역 쪽의 despar 마트에 들러 저녁 장을 봤다. 프로슈토는 필수(이제는 당연한 듯 정육코너로 직행해서 여유롭게 주문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사회가 말했다.), 방울토마토도 필수, 올리브와 치즈도 필수, 물 한 통 역시 필수, 쌀이 들어간 샐러드까지 하나 사서(총 21.61유로) 버스를 타고 호텔 앞에서 하차했다.

이거시 식탐이다! (호텔로 돌아와 펼쳐둔 먹거리들)

“어? 대박! 와인을 안 샀네.” 치명적인 실수를 발견한 중년생이 자책하듯 외쳤다. “들어가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다. 아무 데서나 아무거나 사자!” 사회가 위로하듯 말했다. 근처 미니 마켓에 들러 5.9유로짜리 레드와인을 하나 집었다. 로마에 있을 때 가이드 분께서 와인을 잘 모르면 가격이 10유로를 넘는 것을 사면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던 일이 생각났지만 아쉽게도 그 마켓엔 저렴한 종류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의 얼굴은 싱글벙글했다. 평소 와인에 무지한 두 사람이었기에 사실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면 모든 경험은 하나하나 나름대로 다 가치가 있으니까. 사회와 중년생은 이름 모를 와인을 사들고 호텔 방으로 귀환했다.

띠리릭-

카드키로 방문을 열고 들어와 처음으로 보인건 테이블 위 메모지였다. 아침에 두고 나간 5유로짜리 지폐는 없었다. 드디어 팁을 가져가신 모양이었다. “어? 여기 봐! 대박!!!” 소리치는 사회의 말에 중년생이 다가가 메모장을 확인했다. 우리가 남겨둔 메모 아랫부분에 직원분이 ‘GRAZIE’(감사합니다)라고 또박또박 써놓으신 것이 보였다. 작지만 돌아온 답변에 감동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빠르게 씻고 저녁 만찬을 펼쳤다.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 접했던 프로슈토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메뉴가 되었고, 와인은 저녁식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가 되었다. 이름 모를 와인의 이름을 기억해 두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라벨 사진을 찍어서 저장했다. 지금은 귀찮고, 귀국하면 검색해 봐야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베네치아, 그러니까 베니스에서의 또 하룻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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