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11일차)
한국에서 일을 할 때도, 어딘가로 여행을 할 때도 혹시 몰라 잠자리에 들기 전 항상 해놓았던 알람. 그 소름 돋는 소리가 사라진 평화로운 아침이 오늘도 계속되었다. 로마에서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 투어가 연달아 있어서 알람을 맞췄었는데 베네치아에 와서부터는 대부분이 자유 일정이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고,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보니 알람 없이 일어나는 아침이 어느새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사회와 중년생 둘 다 저절로 눈을 뜬 시각은 9시 반 남짓. 두 사람은 쫓기지 않는 아침의 기지개를 켰다.
(2023년 4월 11일 화요일)
천천히 씻고 옷을 고르고 느긋한 걸음으로 호텔을 빠져나와 향한 곳은 버스정류장. 어제 구입한 바포레토 1일권이 아직은 유효한 시간이었다. 때마침 우리가 타는 2번 버스가 속도를 줄이며 정류장에 멈춰 서고 있었다. 잠시 이곳의 버스 생김새에 대해 말하자면, 2대를 마치 지하철 객량을 연결하듯 아코디언 구조로 이어놓아 매우 길고 입구도 총 3군데나 된다. 그래서 처음엔 어떻게 타야 하는지 몰라 긴장했지만, 지금은 동네 마실 나가듯 익숙하게 탑승한다. 이용법은 너무 간단하다. 아무 곳으로나 타도 되고, 타고 내릴 때 기계에 티켓을 태그 하면 그만이다. 쨌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역시나 베네치아 본섬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면,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종탑(Campanile di San Marco)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 외에는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먹고 또, 쉬기로 했다. 종탑은 현장에 가서 줄을 서서 입장권을 사고 올라가도 되지만, 운이 나쁘면 대기 시간이 길 수도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에 우리는 미리 예매를 했다(두 장 총 24유로). 13:30분에서 2시까지 관람하는 티켓. 늦잠을 잘 수도 있고, 다른 변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 혹시나 해서 일부러 여유 있게 잡은 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광장까지 천천히 걸어간다고 해도 넉넉하다 못해 흘러넘칠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 우리는 마침 눈에 띈, 길가에 테이블을 깔아놓은 카페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정돈된 빨간색 글씨와 심볼이 어디서 본 듯도 하고 무심한 듯 펼쳐진 테이블이 부담 없이 친근했다. 나중에 검색해서 안 사실이지만 베네치아에 본사를 둔 커피 로스터 및 카페 프랜차이즈로서 로컬들에게 인기가 높은 커피 맛집이었다. 여튼, 얻어걸렸다고나 할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간다고나 할까? 카푸치노 맛은 완전 끝내줬고 함께 시킨 파이(안에 무슨 채소 다진 것이 들어갔는데 너무 맛있었던)도 바삭, 고소, 달콤한 맛으로 정말 최고였다.(총 15유로) 베네치아의 마지막 날 우연히 이 도시로부터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얼마간 테이블에 기대어 앉아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관광객 멍’을 때렸다. 멍 때린다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데 때때로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 그 비워 낸 머릿속으로 에너지가 서서히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행복했다.
사회와 중년생은 다시 일어나 안 가본 골목을 지나고, 상점의 쇼윈도에 눈길을 던지며 최대한 천천히 걸어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바라본 종탑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광장과 어우러진 탑의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화면에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무리해서 찍으면 왜곡되거나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되었다. 그래서 과감히 배경은 포기! 윗부분을 중심으로 종탑만을 최대한 살려서 찍은 것이 바로 오늘의 표지 이미지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끼워 넣는 바이다.) 우리는 광장 바깥쪽으로 펼쳐진 운하를 천천히 감상하다가 예약 시간이 다가오자 마지막으로 근처 공공화장실에 들러 몸을 가볍게 하고는 경건한 마음으로 입장 10분 전에 맞춰 종탑 입구에 도착했다. 다행히(?) 줄 선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기다림의 고통을 아는 자가 이러면 안 되는데 기분이 짜릿했다. 예매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줄 옆쪽에 서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서 티켓을 보여주자 막아 두었던 옆 라인을 열어주었다. 줄 서있는 사람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즐기는 것도 잠시. 사회와 중년생은 98미터나 되는 높은 종탑을 걸어 오를 생각에 내부로 들어서기 전부터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런데 웬걸,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역사적인 건축물 안에 엘리베이터라니! 정말 사전 조사 하나 없이 온 두 사람이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검색해 봤다. 9세기 초반 지어졌으나 숱한 화재와 지진 등으로 파손과 붕괴를 겪었고, 그때마다 보수와 재축을 거듭한 산 마르코 종탑. 1902년에 마지막으로 무너진 후, 1903년부터 1912년까지 9년간의 복구공사가 이뤄졌는데, 이때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고 한다.(100년 넘은 엘리베이터라니, 사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꼭대기로 올라가는 동안 감개가 무량했다. 이유는 엘리베이터 때문이 아니었다. 유적지라고 해서 가보면 막상 아무 흔적도 없는 자리에 ‘ㅇㅇㅇ이 있던 터’라는 식의 설명 표지판을 여기저기서 보았던 기억이 스쳤다. 포기할 법도 한데, 몇 번이나 부서지고 심지어 무너져도 계속해서 고치고 다시 쌓아 올렸던 베네치아 인들이 경이롭게 느껴져서였다. 그들에게 종탑은 어떤 의미였을까?
정상에 도착하자 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전망을 따라 둥글게 돌며 천장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종들.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지는 탁 트인 베네치아의 전경.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바다와 운하, 벽돌색 건물과 크고 작은 배들이 가득했다. 내려다본 두칼레 궁전의 정수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지상에서 보았을 땐 화려한 정면의 얼굴만을 접하게 되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궁전의 단면이 아닌 전체의 두께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우리는 정신없이 눈에 담고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이 ‘유럽의 응접실’이라며 칭송했던 산 마르코 광장의 얼굴도 밑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달랐다. 광장 바닥에 멋진 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그것이었다. 광장의 규모가 워낙 커서 지상에서는 인지조차 되지 않았던 무늬의 보석 같은 발견. 마치 신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관람 마감 시간인 2시가 되자 갑자기 귀가 아득해지고 아파왔다. 종탑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인데 관광객들은 따가워서 귀를 막으면서도 동시에 환호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종소리는 어마어마하게 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베네치아 떠나기 전에 올라가길 잘했다!” 내려오는 길에 사회가 말했다. 사실, 종탑 위에 올라가 봐야 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티켓을 살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정말 안 올라갔으면 너무 아쉬울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종탑을 뒤로하고 계획 없이 마냥 걸었다. 내일은 본섬에 들어오지 않고 우리의 다음 목적지로 바로 떠나기 때문에 구석구석을 발로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인간은 활동하면 반드시 그만큼 먹고 쉬어야 하는 동물이지 않은가? 우리는 오래지 않아 출출함과 재회했다. 그리고 상의 끝에 베네치아에서 갔던 식당 중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에 가기로 했다. 본섬에서의 마지막 식사지로 결정된 곳은 두구두구두구~ 베네치아에 도착한 다음날 우연히 들렀던 오스테리아였다. 걷기 싫어 본섬 초입을 어슬렁 거리다가 한 여행객이 햇살을 받으며 물가 테라스에서 혼자 여유롭게 화이트 와인을 즐기는 모습에 홀리듯 앉아버렸던 바로 그 오스테리아(베네치아도 식후경(6일차) 편 참조)! 여기서 가본 곳 중에 최고라곤 말할 수 없지만, 첫날밤의 중식당을 제외하고 제대로 처음 맛본 베네치아의 식당이어선지 사회와 중년생 둘 다 이곳을 택했다. 도착하니 벌써 3시 반. 늦은 점심 겸 휴식을 하기로 하고 우선 화이트 와인 두 잔을 주문했다. 메뉴는 천천히 보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빠른 주문과 빠른 식사가 당연했는데 이곳에서는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다. 온 지 며칠 되었다고 어느새 익숙해져서 이제 주문도 급하게 하지 않게 되었다. 메뉴판을 보고 모르는 것은 검색도 하고, 그래도 안 나오는 것은 추측도 하면서 우리가 고른 요리는 세 가지. 구운 문어에 감자소스를 곁들인 요리, 크림소스에 루꼴라를 올린 라비올리, 구인 대파가 곁들여진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였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먼저 빵 바구니를 가져다주던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분명한 발음의 한국말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영어였지만 반가웠다. 본인을 인도사람이라고 소개한 그 직원은 다른 식당에서 일하다가 이곳으로 옮겼는데 전 식당에서 한국인을 많이 접해서 인사말을 익혔다고 했다. 어떤 사연으로 인도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오게 되었고, 또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을지 우리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나온 요리는 너무 예쁜 담음새를 자랑했다. 안 먹어봐도 맛있음을 알법한 그런 비주얼이었다.
사회와 중년생의 기분이 1 업. 아니 3 정도는 업그레이드되었다. 우리는 있다가 호텔로 돌아가서 코인 세탁소를 꼭 가야 한다는 계획부터, 내일 기차 탈 때 캐리어 넣는 짐칸이 넉넉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와인과 요리를 즐겼다. 만족한 우리는 식사가 끝나고 결국 에스프레소와 티라미수까지 클리어했다(총 105유로). 굿바이 베네치아 기념으로 가격 생각 안 하고 주문해서인지 너무 비쌌고, 또 너무 맛있었다. 쨌든, 대만족. 그렇게 우리는 본섬을 뒤로하고 산타루치아 역에서 메스트레행 기차(총 2.9유로)에 올랐다. 참! 그전에 마트에서 골리아 캔디(1.79유로) 레몬맛을 하나 사서 먹으면서 올랐다.
비교적 일찍 호텔로 돌아왔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아까 말했던 코인 세탁소를 가야 했기 때문인데, 사실 세탁소는 어디나 있겠지만 새로운 도시에 묵은 빨래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 둘 다 싫어서 꼭 오늘 해치우기로 했다. 둘째 날 오전에 한 번 갔던 곳이라 길을 알기에 쉽게 다녀왔다(총 12유로).
호텔로 다시 돌아오니 하루종일 외면했던 피곤이 몰려왔다. 잠시 쉬자고 침대에 기댔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둘이 거의 동시에 한참을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눈을 떠보니 캄캄해져 있었으니까. 벌써 9시였다. 중년생이 이미 홀쭉해진 배를 만지며 말했다. “아이고 저녁 어쩌지? 사람 많겠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보다 저녁 식사시간이 다소 늦어 9시 경이 피크타임이었다. 그래서 사회와 중년생은 7~8시쯤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에 저녁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럼 간단하게 우리 요 위에 안 가본 중식당 갈까?” 사회가 제안했다. 점심에 큰 지출이 있었고 마침 중식당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중년생도 바로 격하게 동의했다. “간단하게 콜코로 콜콜콜!” 하지만 30분 뒤 우리는 무려 요리 5개에 칭다오 맥주 2병(총 40유로)을 주문하기에 이른다. 두부 야채 볶음, 양저우 볶음밥, 오이 무침, 군만두, 마지막으로 철판 소고기 볶음까지. 마지막 밤이라는 이유로 먹부림을 한 밤이었다.
하지만 정말 너무 맛있어서 두 사람 모두 후회 한 톨 없이 대만족이었다. 두둑한 배를 만지며 돌아오는 길에 물 한병(0.8유로)을 사서 호텔방으로 입성했다. 씻고 누워 일주일 간의 베네치아를 추억하며 뭐가 좋았는지 뭐가 아쉬웠는지 조잘댔다.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 말로 내뱉은 건 사회였지만 중년생도 속으로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베네치아를 충분히 만나고 느꼈다고 생각해서인지 두 사람 모두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다음 도시가 기다린다는 사실에 벌써 설레고 있었다.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얼굴 위로 들어 기차표의 시간을 확인해 봤다. 내일 오전 11:38분. 역이 코 앞이니 체크아웃하고 가면 딱이었다. “역시 알람은 필요 없겠네.” 중년생이 안도하며 말했지만 사회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눈을 감은 채 벌써 숨을 고르게 내뱉고 있었다. 중년생은 손만 움직여서 머리맡 충전기에 스마트폰을 꽂고 전등 스위치를 눌러 껐다. 거의 동시에 의식의 스위치도 꺼졌다. 이제 검은 방 안에는 침대 바닥을 뚫고 무서운 속도로 가라앉는 깊은 잠의 세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메스트레의 마지막 밤이 점차 고요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