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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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의 피해가 있었던 그녀, 그녀와의 성관계는 너무나도 조심스러워야 했고, 그런 마음을 너무 드러내서도 안되었다. 혹시나 트라우마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정말 얇은 유리를 껴안아야 할 것처럼 그녀는 너무나도 약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너랑 같이 있는데, 그때의 일이 떠올려질 리가 없잖아."라고.
남녀와 함께 있으면서 충동적으로 그런 때가 있다.
"집에 보내주기 싫다."
"집에 들어가기 싫다."
그 순간에 둘 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한쪽, 되도록이면 남자 쪽이 여자를 붙잡으면서 집으로 보내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남자의 당김에 여자는 수많은 생각을 오가며 밀지 당길지도 고민하기도 하며, 수많은 고민을 하기도 한다.
남자의 입장에서, 남자는 언제나 여자와 함께 보내는 밤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 여자는 여기저기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라, 지금 바로 옆에 있어주는 사랑하는 여자를 말한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여자는 항상 준비시간이 길었다.
목욕을 할 때도, 옷을 입을 때도, 화장을 할 때도, 언제나 평균적으로 남자보다 충분한 준비가 필요했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충분히 시간을 가진 후에 나타났고, 그 어떤 것이라도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하룻밤을 보내려는 타이밍도 여자에게 시간을 주어야 했다. 준비할 시간을.
남자는 그것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도 내 마음을 받아 줄 거라는 생각에 그녀를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결국 여자에겐 갑작스러운 일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고, 마냥 거부하기도 그렇다고 냉큼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잘 생각해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마냥 잠자리를 갖는 게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아닌 사람인 이상.
[(#7. 여자친구가 성폭행을 당했던 걸 알게 되었다.)의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나 다음 주에 여수 여행 가려고 해. 그리고 호텔도 예약했는데... 같이 갈래?"
나의 타이밍은 그랬다.
아직 그녀와 성관계를 가진 정도의 진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와 빨리 진도를 빼서 갈 때까지 가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느긋이 진도가 나가든 말든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와의 사랑의 종점이 성관계가 되는 게 싫었고, 그저 과정 중에 지나지 않길 바랐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물론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악몽 같은 과거로 인해 성에 대해 더 예민한 편이었고 겁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단순하게 그날 밤 함께 있자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혼자 여행을 하려고 하던 도중 얻게 된 호텔 예약권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큰 평수에 혼자 쓰기는 아깝다는 생각 도중 그녀를 떠올렸다.
"같이 갈 수 있다면 좋긴 할 텐데."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과거의 문제로 평소와 다른, 평범한 과거를 가진 사람과 다른 대우를 해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녀 남들과 똑같이 그저 연인으로서 함께 할 수 있으면 만족한다고 했지만, 그건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망설이기만 하면 언젠가 혹은 지금도 뭔가 정체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더 불안했다.
"그녀는 나와 함께 가려고 할까?"
좋다고 할 순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에게 동의를 구한 시간을 주어주는 것보다는 내가 거절을 당할까 봐하는 생각이 앞서기도 했다.
즉 나는, 단순하게 그녀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려기 보다는, 나는 그녀에게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시간을 주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러 다녀오지 않겠냐고.
그건 나의 겁을 밀어내 준 용기였다,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떠넘긴 건 아닐까 하면서, 되려 걱정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틀 후에 연락이 왔다. 그 이틀 동안 얼마나 전화 화면만 계속 들여다봤었는지, 너무 답답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봤더니 전화기가 꺼져있기도 했다. 그 전원이 꺼져있다는 말에 나는 "완전히 망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와 사귀기 시작하고 연애 기간이 늘어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연애의 시간은 충분히 길어지고 있었고 성관계를 아직도 안 가졌냐고 하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길기도 했다. 혹시 남자에게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그런지, 그가 나에게 거기까지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했고, 혹시 나의 옛일 때문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성관계가 무서운 것도 있지만, 그와 함께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나의 악몽 같은 과거를 말하는 순간, 나를 받아준 순간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다 맡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항상 타이밍을 맞춰야 할 때가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었고 갑작스러운 다가옴에 내가 제대로 반응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일단 콘돔이나 피임약 같은 걸 따로 구입해 두는 게 좋으려나? 남자는 따로 콘돔을 챙기겠지? 없이 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마냥 남성용 피임기구를 내 가방이나 지갑에 넣어 놓고 다니며 나름의 준비를 했는데 마냥 어색했고 평소에 있던 게 아니라서 그런 건지 혼자 훔쳐보듯 가방이나 지갑을 살펴보게 되기도 했다. 괜히 남이 볼까 하는 부끄러움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안에 콘돔을 빼고 다닐 순 없었다. 언제 어떤 시간에 갑작스러운 타이밍이 나설진 모르니까.
처음은 항상 중요하니까.
그 남자와의 첫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그리 실망감을 주고 싶지도 않은 건 물론, 아무리 그를 좋아한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허락해 주고 싶지도 않기도 했다. 이런 것도 밀당인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나 다음 주에 여수 여행 가려고 해. 그리고 호텔도 예약했는데... 같이 갈래?"
이건 그 뜻을 의미하는 걸까?
나는 한순간을 멍하니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 그날 밤 같이 있자고 했다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대응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치기를 한다고 호텔을 예약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모텔도 아니고 호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혹시 내가 지금 착각을 하는, 음란마귀가 씌어 나만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하지만 그 말을 헛소리로 듣고 싶지 않은 게, 나도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려고 한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날에 타이밍을 맞춰야 할지, 어떤 분위기에 이끌려야 할지 예상할 수 있었고, 마냥 낯설지 않게 그와 함께 나란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정말 나를 배려하여 한 말인지는 솔직히 몰랐다. 솔직히, 나에게 허락을 구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같이 가자고 말해주지 않을래?'라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나에겐 고마운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것만큼 난감한 것은 없으니까.
그리고 왠지 귀여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바로 답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솔직히 그 사람의 그런 시도는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남들과 다름없이 평범한 과거를 가진 여자로, 연인으로 대해 달라고 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 같은 것에 괜한 장난, 심술을 부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그동안에 얼마나 화면을 보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는지, 일부러 전화기를 꺼놓기도 했다.
결국 3일 후에 보내려던 것을 이틀밖에 참지 못하면서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응, 그래. 좋아 같이 가자. 고마워."
너무나 어린 시절에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성인이 돼서 성관계가 너무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제대로 치유가 되지 않으면 그때의 당시의 일이 떠올라 비명을 지르거나 트라우마를 일으켜 정신적 질환으로 크게 번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런 과정으로 결혼 생활을 이어가지 못해 가해자를 피해자가 살해를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가해자의 한 순간의 잘못된 욕구가 가해자 피해자를 엉망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피해자가 더 괴로운 건 당연하죠.
평생을 잊지 못할 악몽 같은 기억이기에, 그건 누군가가 함께 평생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그만큼 서로를 더 소중하게 느끼고 조심스러워야 하기에 사랑해도 어려워질 수 있기도 합니다.
성폭행으로 상처를 입었던 그녀에겐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관계는 큰 시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혼자 나누는 게 아니라 서로 나누는 거기에 외롭지 않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고통을 잊고 행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흔한 비유로 '사랑은 행복의 마취제'라고 하는 것처럼.
비록 연인이 아니더라도 가족, 친구 다른 사랑을 나눠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자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누구나 사랑받을 수 있다고, 사랑받고 살아가고 있다고 잊지 말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이 글은 아래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지만, 수번의 교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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