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Jun 06. 2018

#3. 남자친구의 콘돔의 개수가 줄어들어 있었다.(女)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미리 앞서 나가서 고민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건 연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제일 크게 걱정하는 것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권태기 같은 게 오지 않을까 하는 고민.

 그건 여느 때와 다름없는 데이트라는 것을 느껴버리는 순간 더 크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흔한 코스로 밥을 먹고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그런 것처럼.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은 행복할 일이지만, 만나서 이전과 다름없었던 시간을 계속 보낸다는 게, 어째 의무적인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즉 신선함이 필요하다고 할까.

 여름이 되면 바다에 놀러 가기도 하고, 겨울이 되면 스키장에 놀러 가기도 하지만 늘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서로의 시간이 허락되는 순간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워터파크나 바다, 스키장 같은 특수한 곳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장소를 발견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때도 있었다.


 우리는 혼자서는 절대로 들어가지도 못할, 한 가게를 발견했다.

"저쪽에, 밖에서도 볼 수 있게 성인용품점이 생겼다던데."

 나는 그런 곳을 어떻게 들어가냐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의 지인들이나 인터넷에서는 그 점이 오히려 데이트하기 좋다는 말을 들었고, 그건 내가 너무 꽉 막힌 생각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 둘 사이에서 성관계가 하나의 문제라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래서 이런 곳에 놀러 가 보자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성인용품점의 안은 생각보다 신선했다.

 물론 경악스럽다고 할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지 할 정도로 괴이한 물품도 있었고, 그런 물품들을 보며 괜히 장난감을 다루듯 구경을 하기도 했다.

 성인용품점이라고 하면, 안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1층은커녕 한 건물에 위 층에 꼭꼭 숨어 있듯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게 된 곳은 바깥에서도 훤히 들여다 보이는 성인용품점이었는데, 바깥에서 보이는 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어떤 곳에는 여성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고 통제를 하기도 했다.

 그 건물에 대한 체험은 색다른 데이트이기도 했다.



 올라가는 계단에도 하룻밤을 연상시키는 문구도 있었고, 괜히 웃기기도 했다.

  커플마다 가지고 있는 성관계의 기준이 따로 있을 것이고, 성인용품이란 게 왠지 얼굴을 낯 뜨겁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저쪽에서 대놓고 환영하니, 그리 낯 뜨거워 할 것도 없었다.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기념 삼아서 물품 하나는 구매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언제 어느 때나 피임이 중요한 법이니까,  나는 그곳에서 제일 인기 상품인 0.01mm의 콘돔을 구입했다.

 어째 메이드 인 제펜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처음 본 것 같은데, 괜히 신용성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걸 왜 자기가 사? 나 선물이야?"

 그는 그렇게 말했다.

"자기 건 자기가 따로 챙겨야지. 콘돔은 항상 각자 챙겨야 해."

 둘 중 하나가 혹시라도 챙기지 못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 외적으로 지급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피임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피임도구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나와 똑같이 똑같은 콘돔을 하나 샀다.

 그 작은 박스 안에는 5개의 콘돔이 들어가 있다고 일본어로 적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성관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남자 친구 쪽이 성욕이 활발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건 아니었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 사람을 껴안고, 키스를 하고 체온을 느끼고 싶기도 하면, 잠자리를 갖는 것도 자연스럽게 원하고 싶어 질 때도 있었다. 그건 욕망이 번지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좀처럼 시간을 가지고 횟수를 거듭해도 잠자리가 좋다고 느끼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저 고통뿐이었고 침대 시트에는 늘 피가 묻어날 때면 분위기가 싸해지는 게, 모든 걸 망치고 있었다.

 그럴 때면 그도 그저 서로 스킨십만 하고 끝을 내지만, 그게 과연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 들지 않았다.

 항상 아픈 느낌이 가시지 않는 편이어서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어떨 때에는 방 밖에 까지 나의 비명소리가 들릴 정도이기도 했다.

 그러니 성관계를 하는 게 잦은 일은 아니었다.

 되려 더 조심스러웠고,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배려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반면에는,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 사람의 입장에선 성관계 시에 매력 없다고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그 처지가 내 처지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 남자 친구는 30대 중반이다 보니까, 힘이 좀 딸리나 봐."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보통 그 나이 때쯤부터 그런 거야?"

"사람마다 좀 다른 거 같은데, 그 사람은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까."

"아, 나는 솔직히 못하겠더라. 아프기만 하고, 그러다가 그만두면 이젠 미안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당연히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아프기만 한 건데, 되려 남자가 그런 모습을 즐긴다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런가, 참으려고 해 봐도, 참지도 못하겠고."

"그러면 젤을 써 보던가. 얼마 전에 성인용품점에 놀라 갔다면서. 근데 왜 그런 걸 살 생각은 안했냐? 직원에게 골라달라고 했어야지"

 그런 점을 생각해낸 건 아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직원에게 우리 커플 사이의 성관계의 문제를 알려주는 것 같아서 싫을 것 같았다. 아마 지금이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친구는 사용해 본 것 마냥 유식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치 그때 그 성인용품점에 있던 기구들을 전부 써 본 것처럼.




 우리는 데이트 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서로 일을 하러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것도 있었고,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보니 주말이 아니면 서로 기다리지 않는 이상 얼굴을 직접 마주 할 때가 별로 없었다.

 그 사람은 나와의 데이트에는 늘 가방을 잘 들고 다녔다.

 나와의 데이트이기에 그런 게 아니라, 일상의 습관이었다.

 크로스백이나 백팩이나, 어릴 적부터 지갑이나 소지품을 잘 잃어버리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물건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보관하기 위해서 가방을 들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던 것이다.

"성인용품점에 다시 가자고? 왜? 뭐 구경할 거 있어?"

"아니. 살 게 있어서."

"살 게 왜 있어?"

"필요한 게 생겼어. 잠시 가방 줘봐."

 그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러곤 가방을 받고 그 안에서 그 사람의 콘돔 박스를 찾았다. 다행히 내가 말한 대로 들고 다니고 있어서 합격점을 주었다.

"그래. 이렇게 들고 다녀야 해. 알겠지?"

"그래. 언제 덮칠지도 모르니까."

"야."

 그는 하지도 않을 것을 장난으로 했다.

 그리고 그대로 콘돔 박스를 한 번 열어보았다. 나도 사긴 했지만 안의 내용물을 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좀 이상했다.

 콘돔의 개수는 분명 5개였을텐데, 그 사람의 것에는 3개밖에 없었다.

 콘톰이 두 개 비어 있었다.

 심지어 콘돔 봉지를 나누다가 살짝 뜯긴 것도 있었다.

"이게 왜 줄어 있어?"

 나는 그렇게 물었다.

 의심이… 들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콘돔이 줄어들어 있다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물었다.

 나는 그가 확실하게 납득을 할 수 있도록,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왜 줄어 있냐니깐?"

 그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나에 대한 낮은 자신감으로 의심이 더 증폭되고 있었다.

"너,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야? 잠깐만."

 그는 나에게서 가방을 다시 가져가더니 그 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의 콘돔 봉지를 꺼냈다.

"자, 여기 있잖아."

"다른 거 하나는?"

"아, 그건. 친구 줬어. 하나 달라고 해서."

"친구? 친구 누구?"

 내가 이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확하게 증거를 대지 않는 이상 의심이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역시 그건, 그동안 나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어째 그 사람에게 해명을 구하는 동시에 머릿속에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정말 더럽고 짜증 나는 그림이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그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고, 한 번 거짓말이 들통나고 진실을 말했다.

 그의 진실은 더 어이가 없었다.

 하나는 자신의 지갑에 하나는 타인에게 주었다고 하는데, 그 타인이 그냥 친구나 동성의 사람도 아닌, 다른 여자에게 줬다는 점이었다.

"그거, 네가 그 년이랑 잤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냐?"

"아니. 진짜로 오해할까 봐 말 못 한 거야. 그냥 진짜 준 것뿐이야."

 그는 어쩔 줄 모르듯이 팔을 저으며 나를 잡았다. 나는 그의 팔을 손톱으로 긁어내서라도 놓게 만들었다.

 나 또한 자존심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자존심의 뒤통수를 후려갈겨질 줄은 몰랐다.


 그는 끝까지 나를 잡으려고 들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도 듣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힘으로 나를 잡으려고 하는 게 더 거부감이 들게 만들었고, 나도 모르게 그의 팔을 손톱으로 긁어내고 나서야 뿌리칠 수 있었다.

"끄악!"

 그는 짧은소리를 내며 자신의 팔을 감쌌다.

 나도 잠시 내 손톱과 그의 팔을 번갈아 봤지만, 다시 가방을 고쳐 매고 발길을 돌렸다.



 나는 그날과 그다음 날 악몽을 계속 꾸었다.

 그가 다른 년과 함께 잠자리를 가지는 것을 바라보는 꿈을.

 그때 성인용품점에 들렸던 게 잘됬던 건지, 실수였던 건지. 그저 지금은 배신감에 울기 바빴다.





 #4에서 남자의 시점에서 뒷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