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 하나는 오해를 사기 쉽상이다.
앞 이야기
에 이어 계속됩니다.
"너희도 연애 오래 한 거 같은데, 직장만 바로 잡으면 결혼까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친구들이나 형들과 술을 마시게 되면 그런 이야기가 곧잘 나왔다.
그녀는 대학생이 되고서야 만나게 되었지만, 단아한 느낌에 끌려 마음을 전한 게 그대로 이어졌다. 남중 남고에 나오다 보니 여자 앞에선 숙맥이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놈이, 어떤 용기를 내고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도 상상이 가질 알았다.
그래서 그 점에서 용기를 준 게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어떤 신이 존재하든 감사하고 싶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날이나, 둘이 함께 있고 싶을 때에는 그저 본능 같은 거에 맡겨서 그녀를 안고 체온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늘 제어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
그녀는 나와의 관계가 행복하다기보다는 괴롭다는 느낌을 전해 받았다.
그녀의 성욕은 상당히 낮은 편이었고, 관계를 하는 도중에도 고통을 참으려고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런 얼굴을 볼 때마다 오히려 내가 괴롭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고 도중에 그만 두기 일 수였다.
그건 고민 중에서도 큰 고민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다른 형들이나 동생에게 할 수 없었고 혼자 계속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의 남자들이라고 확정 짓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남자들에게 그런 상담을 하고 싶진 않았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음란 패설은 물론, 성욕구의 해소를 위한 성관계를 막무가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나의 고민으로 털어놓을 때, 나의 이야기로 인해 내 소중한 여자로 이상한 망상이라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쳐 죽일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 점은 나만의 판단이 아니라, 모든 남자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정상적인 남자라면 말이다.
정상적인 남자라면, 다른 남자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관계를 어땠는지 설명하며 다른 남자들 머릿속에서 그런 모습을 상상하게 끔 만들 리가 없다.
자신의 여자의 벗은 모습을 그 누가 상상한다고 해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관계가 원활하지 않다고 해서 그녀가 싫은 건 아니었다.
분명 부부관계나 깊은 연인들 사이에서는 속궁합으로 헤어지는 커플도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녀가 싫다면 나 또한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그 사람을 안고 싶은 거지.
안고 싶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반대로 생각해 볼까 싶었다.
아는 여자가 그녀와 엄마를 포함해서 4명밖에 없었지만, 남자와 상당할 수 없다면 여자와 상담하는 건 어떨까 싶었다.
그녀와 엄마를 제외하고, 다른 두 명의 여성.
한 명은 연하에 어린애 같은 게 왠지 상담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고, 다른 여성은 연상에 운동선수 출신에 털털한 성격이었다. 아무래도 후자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털털한 성격을 가졌다는 건 그만큼 다가가기 편하기 마련이니까.
이 사람들 아니면 나는 여자의 입장에서 고민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럴 때는 왜 이리 주변에 여자가 없는 건지 아쉽기도 했지만, 아쉬워야 할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네. 되려 여자 쪽에서 자책감 가질 수도 있겠지."
"제가 싫어한다는 생각은 안 할까요?"
"아파한다며, 그거 할 때. 자신이 아파 죽으려고 하는데, 네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신경을 써? 좋아서 느끼다가 네가 그만두는 거면 물론 말이 달라지는 거겠지만, 네 기분을 생각할 입장이 아닐걸? 아마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면서 주눅 들어 있을 것 같은데?"
그 누나는 소주잔을 가볍게 넘기면서 시원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들이 야동을 많이 봐서 그렇지. 그거, 들어가면 우선 아픈 것부터 시작하거든?"
"그래요?"
"생각해봐. 호색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하는 것을 촬영하고 유포하고 간직하고 하지. 사랑해서 성관계를 하는데, 그 사이에 동영상이나 찍고 있겠어? 야동이 문제야 야동이."
왠지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자기 혼자서 보려고 동영상 녹화를 한다고 하는데,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건 그저 성욕에 출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뭐, 전 어떻게 할까요?"
"글쎄, 이런 부분에선 그냥 너희 둘이 까놓고 대화를 해 보는 게 제일 마음 편하지 않을까? 서로 벗고 볼 건 다 본 사이인데, 까놓고 대화도 못해? 그런 걸 말하는 것도 낯부끄럽지도 않을 거고. 그럴 필요도 없잖아."
뭔가 답이 아주 시원하게 나와서 딱히 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어려운 고민을 하고 있던 건지 조차도 헷갈렸다.
"성관계하는 데 아파서 그러는 것뿐이라면, 성인물품을 써서 케어할 수도 있는 거고. 방법은 많을 거야."
"안 그래도 이번에 데이트 겸으로 해서 콘돔도 사곤 했거든요."
나는 가방에서 일전에 산 콘돔 박스를 보여주었다.
"뭐야. 할 건 다 하고 있잖아. 좀 더 생각하고 해봐. 생각보다 별거 아닌 고민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 누나는 내 콘돔 박스를 뺏어가 하나를 보상이랍시고 챙겼다.
"뭐든지 대화가 중요해 대화가. 싸우고 할퀴고 때린다고 해도 대화를 해야 돼. 서로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그런가요. 아무튼 고마워요."
그렇게 콘돔 박스 안에 콘돔은 줄어들었다. 살짝 뜯긴 것 또한 못쓰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과 도움으로 인해서 이런 식으로 오해를 만들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분명 오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가 가지고 있던 콘돔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줄어들었으니, 그리고 그 누나의 말처럼 성관계에 자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더 짙은 오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팔을 손톱으로 긁어내 피가 나올 정도로 그녀는 나와 마주하지 않으려고 뿌리쳤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집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도 나와주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세하게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그럴 기회도 주지 않고 있었고, 설명을 한 듯 받아들여줄 거라는 느낌도 잘 들지 않았다.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을 알아야 오해를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그때 왜 굳이 그런데를 들어가선!"
이게 다 콘돔 하나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겼다는 점에서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 오해의 원인이라고 해야 할지, 조언자라고 해야 할지, 그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 누나는 사정을 이야기하니, 사과 먼저 해왔다.
"… 나도 그런 식으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갈 줄은 몰랐네. 미안해서 어떡해?"
"사죄를 받고 싶은 건 아닌데, 그저 이럴 땐 어째야 할지 몰라서요."
"오해도 오해이긴 한데."
단호하게 답을 줄 것 같은 누나도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행동 하나로 인해 생긴 오해다 보니까, 자신이 직접 나서서 오해를 풀려고 나선다고 하더라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생각을 해봐. 내가 너희들 앞에 나타나서 콘돔 봉지를 보여주면서 '그냥 받았던 것뿐이에요.'라고 말하면, '아 그렇군요.' 하고 납득을 해 줄 장면이 상상이 돼?"
그렇다고 도와주지 않는 것 또한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 전화를 하고,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다가가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했다.
결국 뭐든지 이야기를 나누어야 오해를 풀든 말든 할 것이었다.
일을 하러 가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워야 했고, 퇴근 후나 쉬는 날이면 그녀의 집 쪽으로 찾아갔다. 분명 그녀 또한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 집을 나와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집에서 나온 틈을 쫓아 억지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억지로 대화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오해의 소지를 준 만큼 그녀가 대화를 할 준비의 시간을 주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8일이라는 시간이 소요가 되었고, 그녀가 문자에 답을 해주고 나서야 대화가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그녀의 회사 근처로 달려갔다.
그녀는 마음 정리라도 한 건지, 무뚝뚝한 얼굴로 내 앞에 자리했다.
어떤 말부터 시작할지 고민을 하다가, 사과부터 했다.
"오해를 만들어서 미안해. 화가 나겠지만, 내 얘기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 없이 있다가, 먼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
그녀는 혼자 생각하는 8일 동안, 분노와 슬픔, 후회와 자책으로 매일 같이 반복했다고 한다.
나에 대한 배신감으로 분노가 시작되어, 버려졌다는 슬픔과 후회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으로. 그러다가 다시 나에 대해 화가 났다고 했다.
그렇기에 얼굴은 잠을 잘 잔적이 없는 것처럼 척척해 보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해? 내가 잘못한 건데."
"원래 믿음이 강했던 만큼 크게 배신감이 느낀다고, 한 번의 의심이 아무렇지 않게 다 깨져버린 것 같아."
그리고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동안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항상 아프다고 소리치기에 바빴으니까. 그래서 내가 싫어진 게 아닌가, 내 잘못을 네 탓으로 돌리는 건 아닐까 했어. 그도 그럴게 콘돔이 하나 사라졌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
그녀는 아직도 반복하고 있었다.
여전히 슬프고 분노하고 자책하다가 다시 분노했다.
내 탓이 없다고는 생각을 절대 안 한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화가 나는 이유는 배신감보다는 여자로서의 자존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배려한다는 게, 자존심에 상처 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스스로에게 매력이 없는 게 아닐까 하면서 깎아내릴 줄도 몰랐다.
그리고 그 마음을 분노를 하면서도 나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진즉에 그녀와 이렇게 대화를 했어야 했다. 그저 그때 그렇게 그러려니 하고 배려한다는 듯이 넘어가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는데 나는 내 마음을 나만 간직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 그녀에게도 모든 걸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저 배려한다는 것이, 그녀가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나 스스로 착각을 했을지 몰랐다.
나는 다시 머릿속에 떠올렸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그 사람을 안고 싶은 거지.
안고 싶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을 해야 했다. 분명 오해가 잘 풀리길 바라면서.
'#5. 혼전순결과 엄마의 빈소'로 별개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