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시작은 많은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나 자신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타인을 만날 때 보다 애인을 만날 때 더 힘을 주려고 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차림으로 나를 만나러 오는지 기대를 하기도 하고, 볼 때마다 뭐가 바뀌었는지 한눈에 확인하기도 했다.
머리를 자른 건지 염색을 한 건지,
오늘은 선크림을 바르고 온 건지 그냥 나온 건지,
이번에는 실수로 바지에 지퍼를 열고 나온 건 아닌지,
그러다가 얼굴을 볼 수 없을 때면, 화상통화를 하기도 하고, 졸려 잠에 빠지기 전까지 전화통화를 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한 번 카페에 자리 잡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괜히 주변에서 눈치를 받는 것처럼 시끄러워지고 이야기가 길어질 때도 많았다.
밥을 먹다가 뭘 먹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연락을 하기도 하고,
오늘은 뭐할 건지 묻기 위해 연락을 하기도 하고,
만날 수가 없다면 이유가 뭔지 알기 위해서 연락을 해야 하고,
아침에 또한 잘 일어났는지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건 시간이 갈수록 의무감을 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새벽 늦게까지 통화를 계속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도저히 잠을 참을 수가 없어서 통화를 그만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나는 그 사람이 잘 수 있게 통화를 끊고, '내 통화가 잠을 방해할 정도였나?'라는 고민을 남기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건 대체 뭘 위한 연락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하면 할수록 나만 괴롭기 마련이었다.
그 사람은 나와 대화하기 싫어서가 아닌, 졸림을 버틸 수가 없었을 뿐이니까, 거기에서 내가,
"나랑 대화하는 게 싫어? 자는 것 보다?"라고 말하면, 그저 어린애가 투정 부리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계기였던 것 같았다.
생각을 하게 된 만큼, 삐쳤다기보다는 좀 편하게 둬 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게 지속되다 보니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서로에게 보내는 톡이나 전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여전히 사랑은 하는데,
내가 그 사람을 믿기 때문인지, 그 사람도 나 또한 믿기 때문인지,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고 하루를 끝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날이 있었음을 자각할 때면,
마음먹고 다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설마, 이틀 동안 연락을 안 하지는 않겠지?"
라고, 먼저 연락을 하지 않기로 해 본다.
근데… 정말 이틀 연속으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순간,
미친 거 아냐?
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어쩌면 나는, 사실 연락을 자주 하는 데에 귀찮아졌던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전에,
연락의 빈도가 애정표현의 증거라고 칭하며, 그만큼 사랑을 주고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연락을 한다는 거에 귀찮아 진다는 건 위험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사랑하기에 많이 연락하고, 뭘 하는지 알고 싶고, 항상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이틀 동안 연락이 없자, 과연 이 사람은 뭘 하길래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 신경이 쓰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연락이 도달하자마자 답답한 마음이 풀리기는 했지만, 답답한 건 여전했다.
뭔가가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미안, 연락하지 않아서. 화났어?"
"아니, 화는 안 났어. 근데 왜 연락 안 했어?"
그 말에 그는 똑같은 생각을 말했다.
"아니, 이틀 동안 연락이 없길래, 정말 안하나 싶어서…"
왠지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연락이 없는 동안 그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연락이 없던 동안 무얼 했는지 하소연을 하듯 다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틀 동안 연락이 없었던 일은, 우리 사이에서 의무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에서 해방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틀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가 자신이 의심을 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의 일과를 줄줄이 다 보고하는 것 같은 게, 내가 정말 원하던 건가 싶었다.
충분히 의심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이 그렇게 넘어가고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을 만큼 우리 사이에는 충분히 의심을 깨트릴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이 서로 공유하는 시간과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준다고 한들,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만이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신뢰가 쌓여있는 전제조건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전제조건이 있더라도, 애정의 증거라고 생각했던 잦은 연락은 귀찮게 만든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한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좀 더 자신을 쿨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가 그 사람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니까.
여전히 사랑하는 건 똑같았다.
그저,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싫어진 건 그저 일일이 해야 하는 의무적인 연락일 뿐이었다.
"그래도 역시, 하루에 한 번도 연락이 없는 건 좀 그래."
"그렇지? 정 그러면 하루 일과 끝나고 못 만나는 날에는 집 문이랑 같이 셀카 찍어서 보내주는 걸로 할까?"
"그냥 전화를 해. 시간 많이 안 잡아먹을게."
그래도 언제든지 필요하고 원할 때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땐 듣고 싶은 마음 또한 여전했다.
믿건 말건,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건 여전한 거니까.
*여러사람들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이 글은 아래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지만, 수번의 교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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