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가지를 지켜주는 사람.
이 글은 아래의 도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지만, 수번의 교정이 진행되어 출간된 도서의 내용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엄마의 사망 소식은 그다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6개월 전부터 건강악화는 계속되어 왔던 상황이었고, 이미 다른 친척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례 진행비를 이미 납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엄마를 떠나보내는 데에는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한 상태였고, 혹시나 장례식에 오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지 몰라서 미리 연락을 해 두었지만, 아버지는 오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내 가정이 있으니까, 네가 고생 좀 해줬으면 좋겠다."
하면서 통장에 위로금이라도 치려는 건지 돈을 입금하는 게 끝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다면, 아버지는 찾아 올 건지 물으려다가 말았다. 그저 반항이 될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빈소는 나 혼자 지켰다.
다른 친척분들은 상주의 이름을 누구로 정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내가 상주 역할을 맡겠다고 했지만, 사촌분들은 삼촌도 있는데 뭐하러 여자애가 완장을 차려고 하느냐고 하셨다.
"여자고 뭐고, 그게 뭐가 중요해요? 혈육이 나 혼자인데."
여자라서 상주 역할을 맡길 수 없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에 자신들은 어떤 책임감이라도 가지고 있기는 한 건지, 구석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사실 삼촌도 큰삼촌이 있고 작은 삼촌이 있었는데, 그중 작은 삼촌도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래서인지, 엄마까지 이렇게 돌아가시고 나서 친척들은 수근 거림이 많았다.
명운이 안 좋으니 어쩌니.
들리지 않게 조근조근 얘기하는 모양이었지만, 작은 장례식 장안에서 조그마한 울림은 다 들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삼촌은 오지 않았다.
타 지역에 있다 보니, 하루가 지나거나 새벽쯤이 되어서야 도착을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조문객을 맞이했고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는 장례식을, 장례식 도우미 분들에게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1년 7개월 동안 연애를 해 온 남자 친구가 빈소를 찾아 준 것이었다.
"삼촌 분이 상주로 계실 거라더니?"
그는 내가 혼자 빈소를 지키는 것을 보자마자 어리둥절해하면서 말했다.
"조금 늦으신대."
집안 사정이나 형제가 없는 것을 아니까, 엄마의 소식을 듣고 누가 빈소를 지키냐는 말에 삼촌이 있다고 말을 했지만, 현재로선 이런 상황이었음을 알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납득하지 못했다.
친척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의 연인이라서 그런 건지, 그저 여자 혼자가 빈소를 지키는 게 안쓰러웠던 건지 한숨을 쉬며 못마땅해했다.
그 사람은 먼저 엄마에게 인사를 올렸다.
정성스럽게 두 번 절과 반절을 끝내고 나에게 한번 절했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다시 들땐, 그는 여전히 나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다 말고 그 모습을 지켜봤지만, 그는
"그만 일어나."
라고 말해야 일어났다.
"미안, 괜히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도 한 달 전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이었다. 입장이 같든 다르든 소중한 사람을 잃은 건 똑같았다.
그리고 이어서 혼자서 다른 친척분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길어지는 것 같아서 확인해 보려고 하니 무슨 허락을 구하는 것 같았다.
그 허락이란, 다른 친척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위의 신분으로 상주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말이었다. 친척들은 별다른 반론을 하지 않고 허락을 했고, 그는 삼촌이 입을 상복을 대신하여 입었다. 그리고 도우미 분들에게 추가로 미리 남자 상복을 한 벌 더 준비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래도 괜찮아? 일은?"
"괜찮아. 이렇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원래부터 같이 있어주려고 며칠 휴가 내고 왔었어."
고마웠다.
그러지 말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 주길 바랐으니 그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영정 사진을 두고 그 옆에 나란히 쭈그려 앉은 게 왠지 애인이 있다기보다는 형제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의 기정사실을 만든 거 같은 느낌이네. 사위 역할이라니."
나는 그렇게 말했다.
"허락해 주실 줄도 몰랐어."
"저분들은 나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시는 분들이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러면 내가 섭섭하잖아."
"그래? 미안해."
애인이 이런 때에 함께 있어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조문객이 많은 게 아니라서 일손이 부족한 건 아니었고, 그저 나를 다독여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해 줄 사람은 애인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고마운 게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
사실 이렇게나 오래 연애 기간을 늘려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리들의 사이는 스킨십의 부분에서는 큰 진전이 없는 편이었다.
연애의 기간이 1년 7개월이 넘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 번도 성관계를 가져 본 적도 없었고, 농염하다고 할 만한 키스를 한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보면 그저 같이 노는 걸 좋아하는 커플 같다는 느낌을 받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항상 내가 경계하는 부분이 많았었고, 가벼운 키스로만 끝내려고 하는 것도 충동적인 욕망이 생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사실 그건 되려 악영향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언젠가 이 사람이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나는 혼전 순결을 지키고 있던 도중이었다.
그건 누군가의 강요는 아니었다.
일찍이 가정이 망가지고, 아버지가 다른 살림을 차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엄마를 내버려두고 집을 나왔다.
언젠가는 성인이 되기 전, 고등학생 2학년 때쯤인지 3학년이 될 때쯤인지, 아버지는 내 앞에 한 아이를 데려와 보여주기도 했다.
그 아이는 나의 엄마와 아버지의 아이가 아닌, 아버지와 다른 여자의 아이였다.
나는 사람들이 나보고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하는 게 싫었다.
그건 그 아이를 보고 나서 더 싫어졌다.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아버지의 아이를 보는 게 역겨웠다.
결국엔 나도 아버지의 딸이기에, 내가 부정하고 싶어도 아버지를 닮은 부분이 있을 만큼, 그 부분 또한 그 아이가 닮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고 느껴서 소름이 끼쳤다.
'우리 가족을 배신한 사람이, 다른 여자랑 놀아나서 나랑 같은 여자애에 나랑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면?'
그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니 귀신을 마주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계기로 시작해서, 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성(性)이란 것 자체에 부정적인 감정이 많았다.
아버지는 엄마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을까. 결혼을 하고도 왜 원만하지 않았을까. 왜 엄마를 내쳤을까. 왜 다른 여자의 곁으로 갔을까.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이 강하고 계속 이어지다 보니 내가 미래에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다면, 나를 닮아 아버지의 다른 아이를 떠올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했었다.
그러다간 미래에는 아이도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성 자체든 성관계든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워져 가고 있었다.
혼전순결을 여러 가지 이유로 지키는 사람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종교적인 문제나, 자신의 신념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이유, 하지만 나는 그런 축에 들어갈 순 없었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혼전순결은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마음의 병에 가까웠다.
그 마음을 그에게 전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의 마음을 알고서도 멀어지지 않았고 나에게 강요하지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스스로 사위 노릇을 자처하기도 했다.
"만약에 이 상황에서 내가 감동해서 결혼하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나는 그렇게 물었다.
"네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결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데."
"언제부터였지? 네가 나를 누나라고 안 부르기 시작한 건?"
"글쎄, 한 반년이 지났을 때쯤이었나? 그때는 처음부터 그냥 누나라고 부르지 말걸 그랬다고 생각했지, 호칭을 바꾸려고 하니까 힘들더라."
나는 괜히 결혼 수락을 누구에게 받아야 하는 건지 생각해 봤다.
엄마는 이제 자리에 없고, 아버지에게 허락을 요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친척들에게 말하는 건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젠 내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짙어졌다.
"나, 너랑 자지 않을 거라고 말했을 땐, 실망하지 않았어?"
나는 물었다.
"처음엔 그렇게 말을 하니까 오해를 했지. 내가 싫다는 줄 알았으니까."
"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해결해? 야동이라도 봐?"
"혼전순결을 지킨다면서, 그런 말은 참 직설적으로 잘하더라?"
그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사실 성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하면, 서로에게 경험이 없는 만큼 조심스러운 건 분명 있었고, 그는 더불어 부끄러워 하기도 헀다. 사실, 나 때문에 성욕을 억누르고 불만이 계속 쌓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모습은 미안하기도 하면서 고맙기도 했다.
그래도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바람난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그도 그럴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엄마의 빈소에서 2박을 함께 했다.
엄마는 인복이 그리 많지는 않았는지, 조문객이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는 조문객들 마다 그 사람은 사위라고 소개를 하면서 직접 인사를 다 받아냈다. 그중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의 지인들이 조문을 해 주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나는 반대로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네."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에게 하는 말이었다.
엄마를 발인하기 전까지는 씻으면 안 된다는 고지식한 말을 하면서, 머리에는 기름기가 흐르다 못해 이미 기름에 젖어 있을 정도였다.
정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세수도 그저 물에 몇 번 씻고 휴지로 닦고 끝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와 엄마의 빈소를 지켰다.
"고마워, 너는 나도 우리 엄마도 지켜주는구나."
아버지가 하지 않았던 것을, 그가 해주고 있었다.
분명 나는 이 순간 때문에 그 사람에게 다시 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정말 기정사실이 만들어진 것처럼 결혼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젠 누구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는 말했다.
"다음에 아버님 뵈러 가자."
"뭐? 왜?"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가야지."
"그걸 왜 그 사람한테 받으러 가?"
"너, 그거 혼전순결 지킨다는 거, 아버지한테 반항하려 하는 것 같아 보여. 내가 아버지가 미우니까 이러는 거다 이렇게."
"트라우마 같은 거니까. 나라고 그러고 싶은 줄 알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버지를 만나고 승낙을 받아야 하는 거야."
대체 이 사람은 나보다도 어리면서, 어떻게 이런 인생공부를 해 왔던 건지 믿음직스러웠다. 등이 커 보인다고 할까, 그만큼 신뢰가 쌓인 건지 뭐든 잘 해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해결이 안 되면, 언젠가 또 괴로울 거야."
이런 사람이 뒤에서 다른 여자랑 놀아나던가, 다른 짓을 꾸미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가지 않았다.
그가 나를 기다리는 만큼, 내가 믿어주는 게 보답이었다.
애초에 그것 말고는 우리 사이가 유지되는 게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사랑을 하더라도, 몸이 얽히는 사랑 또한 하지 않으면 뭔가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리고 나쁜 쪽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있기에. 연애기간 동안에 성관계를 갖는 게 좋은 점이 많다고 말을 해 주었다.
나는 그 점에 공감이 될 것 같기도 했었다.
분명 서로를 느끼는 과정의 끝까지 도달하게 된다면, 감정적이든 무언가가 새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기에 우리 두 사람은 서로가 모르는 게 사실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의 빈소를 지키는 2박은 그런 하룻밤보다 더 많은 걸 알게 해 주었다.
분명 친구의 말대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서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나와 엄마의 빈소를 지켜주는 남자를 믿지 않고서야 뭘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 네 말대로 하자. 대신 꼭 같이 가야 해."
그는 내 손을 덮어주듯이 감싸주었다.
"그럼. 당연하지."
그 손은 유난히 크고 두꺼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속으로 남겼다.
그렇게 우린,
엄마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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