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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un 22. 2018

#6. 정작 본인은 연애를 못하는 주제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어린 시절에서부터 알고 지냈다고 하더라도,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나의 일에 대해서 하나하나 캐묻기도 했다.


 그건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다.

 엄마끼리 예전부터 아는 사이다 보니까, 우리 두 사람은 성인이 되서라도 엄마들 때문에 '소꿉친구' 또는 '파이어에그 친구'라는 호칭을 붙여지기도 했다.


 사실 그렇기에 서로에 대해 아는 건 많았다.

 딱히 서로로 인해서 무언가에 방해를 받거나 불이익을 받은 건 없었다.

 유치원생 때나 초등학생 때 정도쯤이야, "둘이 낭중에서 커서 결혼시켜야겠네~"라는 식으로 부모님들이나 주변 아줌마들이 장난을 쳤을 뿐이지, 지금 와서는 그런 것도 없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서로에게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대학 등록금 때문에 타 지역의 공립대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가장 컸다. 하지만 그것조차 그 녀석을 태클을 걸어왔다.

"자연 동물… 뭐? 무슨 학과?"

 그 녀석은 이과생 출신이었고, 나는 문과생 출신이었다.

 공립대학교를 가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공과대학을 선택하는 것도 사실 웃기는 일이었고, 거기에 합격한 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쁠 건 없었다. 딱히 가고 싶은 학과도 없었고, 등록금을 아끼거나 공립대학이라는 타이틀을 단다는 게 마냥 나쁘진 않았다.

"그런 곳에 가도 괜찮아?"

"그런 곳이라니? 넌 뭐 어디 좋은 대학 가길래 그딴식으로 말하냐?"

 알고 보니, 수능 때 수리영역에 1등급을 받아서 장학금을 받아 가면서 사립대학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재수 없어. 

"이제 그냥 각자 대학 생활하고, 참견 좀 그만해라."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일주일 뒤에 기숙사로 떠났다.

 그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특별했다. 엄마나 아빠의 감시는 없고, 친구들끼리 마음대로 놀러 가기도 하고, 기숙사의 규율을 깨면서 밤새 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아보기도 했다. 그게 마냥 서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학과에서 분위기를 몰아가는 느낌이었다.

"사귀어 보지 그래."

"사겨 그냥."

"쟤 괜찮던데. 잘 어울리겠다."

"CC 탄생이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분위기로 몰아가더니 정말 사귀게 되기도 했다.

 시작은 그저 문자메시지로

[사귀어 볼래?]

[그래]

 그런 식으로 가볍고 가볍게 시작했다.

 딱히 반했다던가 호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그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인지, '사귀어도 괜찮지 않을까?' 로 시작했을 뿐이었다.


출처 pngtree


 비록, 시작이 그렇게 가볍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시간을 공유한다는 게, 조금씩 가치관을 바꾸기도 했다.

 집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기숙사에서 지냈기 때문에 집에 잘 들어가지 않는 남자친구는 그저 나와 함께하길 원했고, 매번 같은 수업에 같은 교실에 같은 자리에 항상 위치했다.

 그는 학교 건물 복도에서나 어디서나 간단한 키스라도 하려고도 했고, 그에게 맞춰주지 못하면 나를 비난하는 것 마냥 만들었고, 그에 따라 입을 맞추어 주거나 했다.

"작작 좀 해라."

"너무 좋아라 하네."

 그런 비아냥을 대기도 했지만, 악의는 없는 듯 들려왔다.

 한 번은 내가 머물고 있는 여자 기숙사에 놀러 가겠다고 하길래 나는 거부했다.

"안 돼. 그리고 언제 무슨 허락한 것처럼. 말해?"

"왜. 같이 있고 싶으니까. 그렇지."

 어째 속이 뻔히 보이는 것 같았다.

 연애라는 게, 서로의 마음을 잘 알지도 못하고 밀당하는 것 마냥, 또는 꽁냥꽁냥 하는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때는 아직 그와의 연애가 그런 것인지, 연애라는 게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첫 연애이기 때문인지, 정말 이 남자가 좋아서 시작한 연애여서 그런 건지, 아직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해 보면, 그는 분명 내가 처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고, 여자를 잘 다룰 줄 안다는 느낌이 많이 들게 했다.


 그래서인지 가볍게 시작한 연애였던 만큼 가볍게 끝나는 것 또한 똑같았다.

 어쩌면 그 과정도 가벼웠던 것 같았다.

 그는 점점 나에게 감추는 일이 많다기보다는, 아예 대놓고 의사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떤 경우에는 강요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그의 소지품에서 피임도구를 보고선, 어째 배신감이 느껴졌다. 분명 성인이 된 만큼 피임 도구를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타이밍은 결코 좋지 않았다.

 언제나 조심을 한다는 것인 좋지 못한 쪽으로 해석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방학 동안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에 다른 년이랑 놀아나는 것을 들켰고, 그 변명으로 "군대를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래서 놀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어."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했다.

 피임도구는 다른 여자에게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녀석이었으면 군대를 기다려줄 필요도 없이 진즉에 헤어져서 다행이라고 자기 위로를 하면서 다독였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군대나 가버리라고 생각했고 학기 중에 다시 만나는 게 싫증이 나기도 했다.

 별로 이별을 했다는 것에 슬프거나 배신감은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화는 났지만 우울함으로 번지진 않았다.

 나도 그 녀석만큼 그리 좋아하지 않았나 보다.

 나는 고향 친구들과 함께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술을 먹거나 여기저기 놀러 가자고 권유했다.

"술? ok!"

 술은 받아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디를 놀러 가는 경우는 없었다.
"그럼 너도 같이 가자."

"그래 같이 가자~"

 이미 친구들은 방학이전부터 다른 친구들과 계획을 짜 놓은 상태였고, 친구들은 같이 가자고 권유를 했지만, 그 사이에 억지로 끼어드는 게 어째서인지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다.

 그 대신 매번 친구들 사이에 늘 술을 끼워 밤을 보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또 마시고, 토하고 다음날 또 마셨다.

"야 너 괜찮냐? 집에 어떻게 들어가게?"

"아빠 불러서 가려고."

 택시 탈 돈까지 술을 마시다 보니, 아빠를 한 번 부르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어쩌면 아빠도 그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제멋대로 생각을 했다.

 다 큰 딸내미가 모텔이나 길바닥에 자는 꼴을 못 볼 테니까.

 나는 번호를 누르다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단축번호를 길게 누르며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아빠? 나 여기 구청 앞인데, 술 마셨어. 데리러 와~"

 그리고 아빠는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머리가 아파서 내버려 뒀다. 알아서 끊고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주변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렇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다음날에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고 또 술 마시러 나가고, 또 아빠를 부르고 집에 들어오고 토하고.

 다시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가고 또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그런 반복이 1주일이 계속되었고, 술을 마시러 나가는 길에, 그 녀석을 만났다.

 어째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야. 오랜만이다?"

"어떻게 한 번을 먼저 술 마시자고 안 부르냐?"

 딱히 생각이 없던 걸까? 아니 여자끼리 놀다 보니 생각을 안 한 것 같기도 했다.

 학기 중에는 당연히 본 적이 없었고, 연락은 내가 조금씩 무시하다 보니 빈도도 많이 줄었었다.  

"뭐, 너 술 마실 줄 알아?"

"아니 잘 마시는 건 아닌데."

 그 말은 그냥 술을 못 한다는 것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저리 가라는 것 마냥 손짓을 내저었다.

"오늘도 술 마시러 가냐?"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뭐."

"작작 마셔라. 너 술배 나오겠다."

"신경 끄셔."

"아주머니 걱정 안 하시게 좀 줄여. 요새 우리 집에 와서 맨날 네 얘기해."

"아, 신경 끄라고."

"아주머니가 너 남자 친구랑 잘 안돼서 그런 거 같다고 그러 길래. 속상해서 그런가 싶었지."

"아이씨. 연애 한 번 못해본 놈이 뭔 남 걱정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노려봤다.

 그는 살며시 미안하다며 말했고, 나는 그걸 무시하면서 택시를 잡았다.

 오늘도 아주 코가 삐뚤어지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여튼 둔하고 답답한 놈."

출처 pngtree


 그 날은 또 그렇게 아빠에게 데려와 달라고 전화를 하고 필름이 끊겼다.

 집에 무사히 도착한 건 다름없었고, 아침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것 또한 다름없었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생각한 건 오늘은 누구를 불러서 술을 마셔야 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정도면 알코올 중독자 수준이네."

 정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두통을 막아 세우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내 몰골이 말이 아닐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추했던지, 내가 왜 이렇게 술에 미쳐있나 싶었다.


 그건 분명, 그런 놈이라도 좋아했고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잠시 솔직해져 보았다. 그 감정이 자존심을 무너지게 만들기도 했고 우울하고 슬프게 만들기도 했다.

 분명, 다른 사람들처럼 술에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오늘도 그 감정에 도망갈 거다.


 이번엔 누군가를 만날까 하는 생각에 SNS를 살폈고, 그다음에는 휴대폰 속 전화 등록부를 확인했다.

 근데 이상 한 게 하나 있었다.

 술을 마실 때에는 전화할 리가 없었고, 새벽이 넘어갈 때쯤 도는 새벽 2시 가까이 됐을 때쯤 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뭐야, 나. 아빠한테 전화한 거 아니었어?"

 그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먼저 아빠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었다. 다 전부 그 녀석이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아빠가 데려온 거 아니었어?"

"이게 술 덜 깼네. 아빠가 널 왜 데리러 가? 내가 하도 미안해서 맨날 걔네 집 가서 고맙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어떨 땐 네가 걔 옷에 토를 해서 세탁하기도 했고, 옷 여기저기 립스틱 묻혀와서 옷 버린 것도 있고. 내가 정말 창피해서 원."

 그리고 그 녀석이, 엄마가 자주 자기네 집에 들른다는 말을 떠올렸다.

 딱히 감추려고 한 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저 그전에 내가 심한 말을 하며 입막음했던 것 같았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취중진담이라고, 술에 취하면 본심들이 나온다는데, 어쩌면 나는 술에 의존하려고 했던 걸까 싶었다.

 그 와중에 그 녀석에게 의지를 하기도 했다.

"나, 그것도 첫 연애라고. 아닌 척하고 슬퍼했구나."

 생각해 보면 정말 미친 듯이 술을 마셨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억지로 취해갔던 것 같았다.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놀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니까. 그 순간을 즐기게 되니까,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첫 연애의 실패가 창피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씨. 연애 한 번 못해본 놈이 뭔 남 걱정이야?"

 내가 한 그 말과 그 목소리가 정말 징그러웠다.

 남에 대해서 잘 안다는 게 그런 식으로 상처를 줄 수 있는 거구나, 새삼스럽게 배웠다.


 그리고 그날 밤 12시가 되기 전, 나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엄마는 또 술 퍼마시러 가냐는 말에 설명을 했더니, 되려 심부름을 시키는 것 마냥, 과일을 쥐게 하고 나를 보냈다.

"엄마 곧 12시인데."

"그쪽 집에 아직 안 자는 사람이 있으니까 가는 거 아냐."

 그렇게 나는 검은 봉지를 건성으로 쥐고 그 녀석의 집을 향했다.

 5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곧바로 도착했고, 초인종이나 그 녀석에게 연락도 할 필요 없이, 그의 모습은 이미 실루엣으로 나타나 있었다.

 바로 집 앞에 자동차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창문을 똑똑 두드리며 그를 불렀다.

"뭐야? 오늘 술 안 마셨어?"

"뭐야. 네가 무슨 5분 대기조야? 내가 부를까 봐 그러고 있는 거야?"

 그런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본 얼굴이 피곤해 보였던 것 같았다.

 나는 다른 말 먼저 엄마가 준 과일을 건네주었다. 그는 차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문을 막았다.

"나오지 마. 내가 다시 갈 때까지. 그냥."

"왜?"

"그러라면 좀 그래라. 좀."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눈치는 여전히 없었다. 나에게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또는 생각 없는 듯한 반응 또한 여전했다.

 그리고 그런 점을 아니까 또 왠지 모르게 복잡했다.

 그건 분명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 봤다.

 그렇게 친했던 만큼 저번처럼 말을 막 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닐 텐데, 나는 과연 사과를 제대로 한 적이 있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으면서 또다시 뇌와 입이 분리되었다.

"너는 왜 연애 한 번 못하고 있냐?"

"뭐?"

"아니, 그냥. 집도 잘 살겠다. 바로 취직도 했겠다. 뭐 군대 간다고 연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학창 시절 때도 그렇고.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건가 싶기도 해서."

 그러면서 그는 웃기다는 마냥 한 번 크게 웃고 말했다.

"내가 게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냐?"

"뭐? 진짜냐?"

"진짜겠냐?"

 그리고 그 가로막던 나를 살짝 밀어내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 다시 봉지 안을 확인하더니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주변에 조명이 잘 없어서 그런지, 그 녀석의 얼굴이 어땠는지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과일 고맙다고 말하면서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들어가고 나서도 그는 다시 나와서 말했다.

"집에 데려다 줄까?"

"아니, 오늘은 됐어."

"그래? 그래. 조심히 들어가."

 나는 그가 현관문까지 열고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나는 사과 한 번 못했다.

"아, 나 진짜 나쁜년이네."

 그 녀석은 대체 얼마나 둔탱이인 건지, 앞으로 잘 살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내 일이나 걱정하며 다음 학기나 준비해야겠다고 중얼거리며,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어 집으로 귀가했다.





*사람들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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