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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an 27. 2018

#7. 결혼하는 날 첫 사랑을 만나기로 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그녀는 드라마를 좋아했다.

 동화 같은 결말을 늘 동경해 왔었다.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해야할지, 새로 하는 드라마를 보면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드라마는 분기마다 바뀌다보니 분기마다 남자 연기자에 대한 애정어린 수다를 들어 줘야 하기도 했다. 어떨 때에는 로맨스소설을 읽고 와서는 갑자기 감상을 말하곤 했다.


 귀찮은 건 분명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녀가 싫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드라마 타령을 계속 늘어놓으면 어쩌나하는 생각은 하긴했다.

 그녀가 드라마나 소설을 읽으면서 결혼생활에 지장을 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직장을 계속 다닐 것이고 아이에 대한 것도 몇년 후로 낳기로 계획을 미리 세우기도 헀다. 그래서 늘 관계를 가질때는 조심스러웠다. 그건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다름 없을 것이고, 결혼 후가 더 조심 스럽고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즉, 결혼 전 부터 큰 환상을 가지지 않으려 조절하는 중이었고, 안그래도 꿈이 많은 사람이, 알고는 있었다고 한들 결혼 생활이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면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다 견뎌낼 수 있도록 잘 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건 그저 그녀의 성향을 떠나서 앞으로 수십년을 함께할 결혼생활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아니 나는 함께 살기로 한 용기가 아직까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미 약속을 잡은 결혼식은 다가왔다.

 이날은 분명 모두가 우리를 축복해 주는 날이었다.

 그녀는 공주 같은 하얀 드레스로, 나는 그녀를 지킬 왕자 같은 검은 턱시도로.


 동화속의 그림을 그리듯, 오글거리더라도 환상적으로 상상의 그림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세 시간 후면, 우리 두 사람은 수많은 축복 속에서 하나가 된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었다.



"너와 결혼을 하고 싶어, 정말로. 나에겐 너 말고는 다른 누군가에게 미래를 맡길 사람이 없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누가 들으면 귀를 틀어막을 것 같은 말들이었지만, 그런 말 하나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고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나에게 없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기 세 시간 전이다.

 결혼식 예정에 맞추려면 신부는 특히나 더 준비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세 시간으로는 솔직히 모자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결혼식장에 있지 않았다.


 우리는 한가지 제안을 성립했다.

 그녀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 첫사랑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살짝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나는 수락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녀는 마음대로 모습을 감추었고 지금 만남의 장소로 간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동동동동'

 심장은 생각보다 두근 거렸는데, 이게 어떤 감정으로 두근거리는 건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요하게 뛰는 것 같으면서도 되려 불안했다.


 나 또한 지금 운전 중이었다. 그녀에 대한 복수심이나 반발심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가 되었다. 나도 마지막으로 첫사랑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분명 양측 부모님이나 지인들이 앞뒤의 사정을 모르고,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예비부부인지 하고 말이 많겠지만, 그러든 말든 상관없었다. 문제 될 건 없었다.



 나는 첫사랑과 이별을 했던 바닷가로 향했다. 그때 우리는 마냥 서로가 이해를 해 줄로만 알았고, 서로 사랑만 한다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던 시기였다.

 끝내 도착한 그곳에는 이제 막 해라도 뜬 것처럼 수평선과 어울려 잔뜩 빛내고 있었다. 그 빛을 등에 두고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그때와는 달리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좀 더 살이 빠져 있었고 지금이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 그런지, 태양 조명에 드러난 그녀의 실루엣은 원피스가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용케, 여기로 올 생각을 다했네?"

"여기에 있었던 일을 제일 후회하면서 잘했다고 생각한 거였으니까."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말대로 그땐, 정말 다 잘될 줄로만 알았지, 사랑해서 뭐든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지. 현실은 달랐지만."

 그녀와 나의 사랑은 꽤나 오랜 기간을 가졌었다.

 학창 시절 때부터 시작해서 군대를 다녀와서도 언제나 나를 기다려 준 사람이었다. 그 시간은 7년이나 되는 긴 시간이었다. 그렇게 오래 시간을 가지면서 우리는 더 강해지며, 불에 달궈지는 강철처럼 버텨낼 줄 알았지만, 오히려 달궈지다 못해 녹아 흘러내려가 버렸었다.

 처음으로 사랑했기에, 사랑을 배우면서 사랑을 했고, 상처를 주고받는 줄도 모르고 사랑으로 무마했다. 첫사랑은 달콤한 만큼, 다음 것이 더 달콤하지 않은 이상 씁쓸함만 더 새기기도 했다.



"이제는 좀 다를려나?"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을 좋아했다. 가녀리게 옆으로 뻗은 어깨선은 그녀의 여성스러움을 더 돋보이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긴 머리를 앞으로 내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때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는 당연하게 다르다. 더 이상 그때의 그녀를 그리워 해선 안된다.

"저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잠자코 질문을 계속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왼쪽 뺨 쪽에 손을 가져다 데려다가 그저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부근에 있던 점은 왜 뺀 거야?"

 나는 온몸에 점이 그다지 없는 편이었다. 등 쪽에는 모르지만, 내가 내 몸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점은 왼쪽 눈에서 대각선으로 떨어지는 부근에 점이 하나였다. 흔히 눈물점 같은 거였다.

 나는 그 부근을 어루만졌다.

"흉점이라고 하더라고,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그런 말을 들어서 슬픈 이별을 하게 만들 점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뺐어."

 두 번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싫다는 나만의 표현이었다.

"그런 건 상대에게 잘 알려줘야지 그 상대도 기뻐하는 법이야. 이제는 더 이상 혼자 해나가야 하는 삶이 아니니까. 결혼을 하면, 이젠 십 년, 수십 년을 더 강하게 버텨내야 할 사람이 돼야 하는 거 알지?"

 그녀의 말에는 경고를 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결혼을 해서 잘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냐는 말인 건지, 묻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이렇게 만나는 건, 너도 나도 마지막이야. 알겠지?"

"그래."

"나는 그때도 너를 정말 사랑했어. 그건 잊지 마."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내 두 손을 쓰다듬었다.

 순간 그녀의 온기가 담긴 손길에 더 끌어당기고 싶어 졌다. 하지만 억지로 주먹을 꽉 쥐어내며 참아냈다.


 그녀는 먼저 자신의 차로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차가 사라져도, 한참 후에 자동차의 시동을 켰다. 

 운전을 하면서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도 너를 정말 사랑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잊을 수도 없었기에 그때의 그녀를 만나러 온 것이다. 7년이라는 함께 한 시간을 쉽게 잊어버릴 수 없다. 평생을 기억하게 될 기억이었다.

 하지만 정말 서투르고 실수가 많았던, 상처를 많이 남겼던 연애 기간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흉터를 남길 수 없고 견딜 수가 없었기에 헤어졌었다.

 그래서 나는 신부와 약속을 했었다. 신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시절을 기억하며, 그때의 모습으로 만나서 같은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자고.



 신랑으로서의 준비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준비되는 대로 신부를 찾아갔을 땐, 준비가 다 끝날 무렵이었고 대기실로 이동 중이었다. 나도 그 말에 따라 신부대기실로 이동했다.


 근데, 신부인 그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래 가슴까지 앞으로 내려놓던 긴 머리카락을, 결혼식날, 지금 단발머리로 잘라냈다. 어깨선이 가련하게 보이도록.

 그건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신부, 그녀는 말했다.

"언젠가 머리를 자르려고 했어, 예전처럼. 그런데 아까 네가 눈물점을 지운 이유를 듣고 나니, 역시 이런 모습으로 있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어. 이제 흉점도 없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흉점을 지운건 그저 내 결심을 보이려는 핑곗거리에 불과했다. 스스로의 마음가짐일 뿐이다.

"그때와 지금의 우리가 달라진 건, 서로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사랑만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야. 그게 무슨 말인 줄 알아?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말이 거짓말인 것처럼, 작은 한 마디라도, 사소한 거라도 알려준다면, 나는 너를 위해서 신부로서 뭐든 할 거야. 그러니까 결혼하는 거야."

 그런 결심이었다.

 여자는, 그녀는, 나의 신부는 더없이 강해진다. 더없이 아름다워진다.

"어쩌면 우리가 이러는 것도, 말하는 것도 드라마나 소설 같을지도 모르겠네. 나 역시 결혼에 많이 환상 가지고 있나봐."

 그녀는 머쓱하게 웃었다.

 얕은 거 같으면서도 뽀얀 화장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앞으로 우리의 결혼생활이 어떤 현실에 부딪혀서 또 아플지 모른다.

 드라나마 동화, 소설 같은 사랑은 희망 가득찰지 모르지만 현실의 사랑은 녹록하지는 않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픔에서도 다시 서로를 구원한 게 우리들의 사랑이었다.

 분명 마냥 아프기만 하는 게 아니라 행복한 것도 있다.

 거기에 져서 행복한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냐. 그래도 괜찮아.



 나는 역시, 첫사랑이었던 지금의 신부인 그녀와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서로가 첫사랑이었지만, 첫 사랑때의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지금의 이 사람을 사랑한다.




*소설이라고 할 것 까지 없는 그저 사랑이야기 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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