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Jul 14. 2018

#8. 의부증이 아니야, 그냥 사랑한 거야.


 호텔에 대해서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호텔이라고 하면 나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 안에서 사랑했던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근사한 호텔만큼 앞으로 새롭게 나아갈 결혼 생활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 남자는 거창한 것을 좋아했고 그게 나를 위한 것이다 보니 부담은 되기도 했지만, 순수하게 자신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좋았다.

 처음에는 22일 기념일, 즉 투투데이를 챙길 때에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어린 커플들이 챙기던 그런 기념일까지 챙기려고 들 줄은 기대도 안 했고 바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성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일지, 그것은 그의 표현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원치 않던 이벤트들도 하고, 굳이 할 필요 없다고 한 약혼식도 올렸다. 

 약혼식 또한 가족끼리 모여서 하면 되었을 일을 굳이 친구들까지 끌어들여서, 그때는 내 입장이 조금 곤란하기도 했었다. 친구가 그리 많고 인덕을 쌓아둔 편이 아니었기에, 그 사람과 좀 대조적인 부분이 나타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을 약속한 식을 올리는 순간, 점점 현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혼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니 예행연습이라고 할까, 나는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부부생활을 하게 되면 생계비가 얼마나 들지 예측해 봐야 하고, 오빠 생활비도 조절해야 하니까. 오늘부터 다음 달 까지 그 부분을 염려하고 생활을 한 뒤 결제내역으로라도 계산을 해 보자."

 그 사람은 나보고 신부수업이라도 하는 거냐고 웃었다.

 나도 돈을 벌어야 하고, 그도 돈을 벌어야 하고, 이제 한 가족이 되는 만큼 미리 서로의 지출을 감안하고 계획을 세워 두는 게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로서는 신부수업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 사람은 카드 내역서를 나에게 넘겨주었고 나 또한 넘겨주었다. 우선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어떻게 지출하고 있는지 나름의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하나하나 얼마를 어디에 썼는지 알아봤고, 카드의 사용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때에는 일일이 찾아보고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몇 번에 호텔에 출입한 흔적이 있었다.

 그곳은 나와 함께 한 것은 아니며, 내가 아는 곳도 아니었다.

 조회하면 뻔히 알게 될 것을 아무런 말도 없이 공개하는 게, 내가 의심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따졌지만, 그 사람은 회사에서 접대를 하다 보니 상사분들을 모신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걸 이해를 해 줘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회사원의 남편을 가진 아내분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라고 하는 영업상 접대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당연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제 곧 결혼하게 될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결혼 후에는 어떻게 변할지 무섭기도 했다.

 사실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뒷조사를 시작했다. 

 그 사람 말대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상사를 데리고 호텔을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나올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내 차 안에서 3시간을 기다렸고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지, 그가 다른 여자와 나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이게 바람이구나 확신이 들었다.


 그 남자는 딱 한번 그런 거라고 미안하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거짓말을 한 건 다름이 없었다. 그 거짓말이란, 설령 이 앞에 접대를 했을 때 여자가 있던 없던,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다는 건 나를 속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점과 언제든 약속을 어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부부가 될 사이에서 쌓일 신뢰의 바닥이 무너졌다.


 나는 대체 여기서 무얼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이걸 다 엎어야 하는 건지,

 배신감에 머리털이라도 다 뽑아내야 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건 먼저 옆에 끼고 있던 여자가 도중에 사라져 버린 것이 크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긴 손톱이 주먹을 쥐다가 손바닥 안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앞에 있던 그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아채 휘두르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되었다.

 내 남자였던 사람의 품에서 어떤 신음소리를 내었을지, 그것을 비명소리로 바꾸면서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그와 그 문제로 다투고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카드 사용 내역서 보여달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너 그거 의부증이야! 병원에 가봐."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너질 수도 있는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호텔만 보면 그때 그 생각이 난다.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밤이 되고 창밖 넘어서 네온사인으로 환하게 자신이 호텔임을 알리는 건물이, 매일 밤 보였다. 


출처 pngtree


 지금 만나는 사람도 그런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마주하기로 했다.

 그에게 아쉬운 것은 그의 직업 때문에 만날 시간이 좀 부족하다는 것뿐이었고, 공부와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 연애에 완전히 잼병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히려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 자신만을 바라봐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과연 여자의 경험이 없다고 해서, '그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장점이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흔히 여자와 놀 줄 모르면 바람을 피우지 않게 되어 있다고 하지만, 여자와 놀 줄 알게 되면 바람기가 생기는 게 그런 사람이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후우…"

 그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었다.

 그 부분만 계속 염려하고 지켜보게 된다면 그게 바로 의부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했다.

"정말 어렵게 사네."

 스스로에게 '쯧쯧'하며 혀를 찼다.



 그리고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여전히 지긋이 웃을 줄 아는 게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그 사람은 나의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잘 들어주며 호응도 해 주었다.

 내 얘기를 잘 들어줄 줄 알고 잘 맞춰 줄 줄 안다는 게, 정말 여자를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가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의 그 사람처럼 이벤트니 뭐니 챙겨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애초부터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처럼 눈앞에서 나를 바라봐 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이 되어주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요? 오늘 가족끼리 호텔에 가서 식사를 하신다면서.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각이 났나요?"

 그는 말했다.

"제가 그런 말을 했던 가요?"

"옛날 일이 생각나서 기분이 나쁘다고 했잖아요."

"아, 그래요?"


 그런데, 최근에는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내가 방금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마치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 뭘 하려는 지 까먹는 건망증처럼 자꾸 뭔가를 까먹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그럴 때면 되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했었던 거지?'

 그러곤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아!

 하고 나는 머릿속에 느낌표를 세웠다.

 나는 내 바지가 구겨질 정도로 강하게 꽉 쥐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더 경직되게 뻗어져 갔다.

"그 사람은 안 왔어요? 날 언제 여기서 대려온데요?"

 나는 물었다.

"그 사람이요?"

 그는 되물었다.

"그 사람이요. 제 약혼자. 이제 곧 결혼할 사람이요. 의사 선생님. 전 대체 왜 여기에 있는 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얀 옷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환자분은 이미 파혼했잖아요. 본인이 직접. 기억나지 않아요?"

"그 사람이 잘못한 건데, 왜 내가 파혼을 해요? 용서를 구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뭔가를 적는 듯했다.

 이제는 뭔가 나를 위해서 지긋이 웃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잘 이해를 하지 못한 채, 하얀 옷의 남자는 나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낭중에 가족들 오면 면회 잘 다녀와요. 오히려 더 머리가 상쾌해질 거예요."

 라고 말하면서.




"선생님, 환자분의 상태는 여전한가요?"

 문 밖에서 대기하던 간호사는 의사가 나오자마자 물었다.

"애초에 부정 망상은 완쾌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히 완화를 시키는 수밖에 없어요. 한번 커져버린 부정 망상은 아무리 행복해도 의심이 생기는 순간에 바로 켜져 버리거든요. 부부생활에는 그게 힘든 겁니다."

"눈 앞에 안 보이면 불안하고 혼자 아무런 상상을 하게 되니 말이죠. 근데 역시 이렇게 환자 병실에 두는 것도 좋지 않은 거 아닌가요? 자기만의 상상이 계속될 텐데."

"저 환자는 이전에 파혼한 남성분이 입원시킨 거예요."

"파혼을 했으면서도?"

 간호사는 끝까지 여자를 신경 쓴 것에 대해 의외라고 생각했다.

 정신적인 문제로 이 병원에 들어온 만큼, 그 사람들의 사정은 알고 싶지 않더라도 귀에 들어오게 되는데, 듣던 것보다는 최악은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완전히 버릇이 된 것 마냥 고개를 다시 저었다.

"되려 무서웠던 거죠. 본인도 잘못했지만, 바람난 여자에게 눈썹 칼을 휘둘렀다는데, 본인도 무서운 거죠."

"계속 깜빡하는 건 뭐죠?"

"애초에 의부증과 의처증의 부정 망상이란 게, 어떤 근거를 세워도 의심부터 시작하는 거라서. 기억을 마구 뒤집어 만들고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는 기억력에 대한 질병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알츠하이머의 환자에게서 자주 나오는 현상이기도 하니깐요. 뭐. 완전히 뒤죽박죽의 기억력에 지배당하는 거나 다름없죠."

"그래서 그랬군요?"

"네?"

 간호사는 의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환자가 오늘 소개팅한 남자 만난다고 했었거든요."

"아... 그게 나예요?"

"그런 거 같은데요."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바람피운 그 사람과 그 여자가 잘못한 것일 텐데. 내가 왜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게 갇혀있는 것 마냥 있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아... 정말...

 내가 당신을 의심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잘못한 거잖아.

 의부증이 아니야.

 정말 나에게 왜 이러는 건지.

.

.

.


 아. 다시 생각이 났다.

 오늘은 그 남자 말대로 외출을 하는 날이다.

 호텔에는 좋은 추억이 있다.

 그 사람과 이벤트를 하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그 사람에게 안겨서 서로의 체온을 공유하는 느낌이 좋았던 곳이다. 

 분명 나를 만나러 올 때쯤이면, 뭔가 또 이벤트를 준비했을지도 모르겠다.

 아, 정말 애도 아니고.

 결혼할 때쯤이면, 생활비를 어떻게 쓰는지 조절하기 위해서 씀씀이를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이라고 할 것까지 없는 부정 망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매거진의 이전글 #7. 결혼하는 날 첫 사랑을 만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