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눈치였었다
야구를 볼 때든, 축구를 볼 때든, 올림픽을 볼 때든, 국제대회나 중요한 스포츠, 월드컵 중계 같은 것을 시청할 예정이 되면 치킨 집은 분주한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그 동시에 맥주나 소주 또는 막걸리 같은 음주를 같이 하는 경우가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술보단 탄산음료를 즐기고 있다.
술을 아예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입장은 아니었다.
치킨이나 파전을 먹을 때 입에 돌아다니는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술을 먹으면 뭔가 시원한 느낌은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술에 익숙해지지 않으면서,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술 못해?"
"이것도 못 마시냐?"
술부심이라고 해야 할까.
술을 못 마시는 것 만으로 얕보이는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도 그게 대체 뭔 대수이길래, 무슨 자랑거리이길래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을 낮아 보는 건지, 내가 아직 사회를 잘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 술을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였다.
처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을 왕창 사서 치킨과 함께 먹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도 술이 처음이다 보니, 맥주 세 통과 소주 세 병을 사놓고 정작에 마신 건 맥주 한 통과 소주 한 병뿐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아까워서 처음 먹는 술을 맥주 한 통과 소주 한 병을 마구 쏟아 넣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돌아가자마자 그때 먹었던 것을 다 토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시간 반이나 지하철에서 버텨가며 집 또한 오르막길인데, 그 길을 어떻게 버티고 집에 가서 토할 생각을 했는지, 나도 부정적인 의미로 참 대단하다고 칭찬할 법했다.
개인적으로는 술 하고 친해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신체적인 이유이기보다는 정신적인 이유가 더 앞서있었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다닐 작은 동네에서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동네 주민들끼리 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세대별이나 각기 다른 종류의 모임도 있었고, 서로 간의 친목을 쌓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 사이에는 늘 술이 끼어 있었고, 밤만 되면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부부끼리 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중에서는 단순한 말싸움이 아닌 폭력이 오가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싸움 소리도 있었다.
그렇기에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술을 먹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라는 사고방식을 뿌리 깊게 10살도 되지 않은 때에 박혀있었다.
그렇기에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골목 구석구석에 누군가가 토를 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되었고, 술을 먹는 어른들을 싫어하는 시선이 생겼었다.
'적어도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주량에 맞게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축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익숙해지는 건 어려웠고, 매번 두통에 시달리는 것 또한 참을 게 되지 못했다.
쓰디쓴 아메리카노에 익숙해졌던 것과 술에 익숙해지는 것은, 나에겐 별개였다.
그리고 항상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술은 그냥 마실 수록 늘어~"
솔직히 정말 무식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적응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기도 하기에 마냥 그렇다고 할 수도 없었다.
술을 마시면 기분 좋아지는 것은 좀 있었지만, 두통과 울렁거림은 매번 술을 먹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그런 변명을 대니 이번에는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건 네가 아직 술보다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하아...
몇 살 많다고 인생교육을 하려는 것처럼 말하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솔직하게는 되려 내 인생을 읊조려 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 사람은 대체 내가 어떤 삶을 살은 줄 알고 이딴 말을 하는 건지.
술에 취한 다는 게 이렇게 사람을 밉상으로 보이는 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이게도, 직장에서든 어디에서든 나이가 많은 상사분들도 있었지만, 술을 강요하는 자리는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그만 마시겠다면 권유하지는 않으셨고, 그냥 몇 잔만 어울릴 뿐이었다. 그때만큼은 시대가 정말 바뀌고 있기는 하구나 싶었지만, 분명 술을 하지 않으면서 의도적인 건지 어쩔 수 없는 건지 그 자리에서 살짝 겉돌게 만드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술을 마시는 자와 마시지 않는 자로.
되려 내가 분위기에 맞춰주지 못해, 몇 잔을 어울려야겠다는 생각에 술잔을 채우기 위해서 계속 빈 잔을 내밀었다.
아마 그래서 술과는 친해질 수 없는 것 같았다.
싫은 기억도 있지만, 술을 함께 하지 않으면 어울리지도 못하게 만드는 자리도 분명 있다.
그렇다고 술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고,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적응을 하는 것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 또한 술에 익숙해지지 않거나 익숙해지기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반면에 매일 밤 술을 마시는 재미로 사는 사람도 봤다.
"퇴근 후에 씻고 맥주 한잔이면 다 되는 거야."
어떤 사람은 매일 밤 자신의 기록을 세운다는 핑계를 세우고 매일 밤 술을 마시러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은 나로선 결코 가까워 지기가 쉽지 않았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그렇다면 더 씁쓸하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기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어울리는 자리에 잘 끼지 못했다.
그건 그 사람과의 관계가 가까워 지기 보다는, 내가 가까워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정말 씁쓸할 일이었다.
항상, 앞으로도 술은 고민거리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1년, 5년, 10년 후에는 이런 내가 술을 좋아해서 매일 술 한잔, 맥주 한 캔씩 먹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계기가 필요한 걸까.
술의 맛은 모르겠고, 그다지 좋다고 느끼지도 않는데, 어째 친해져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영 벗어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