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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un 25. 2018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들.


 카페에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커피가 주종이지만, 브런치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식사를 내는 것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고, 바로 창가에 음식을 내보내는 것과는 달리 커피를 제조하는 테이블 쪽에 가져다주는, 다소 미흡한 동선으로 꾸며져 있었다.

 예를 들면, 일반 식당은 주방에서 음식이 완료되면 그릇에서 엎어지거나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바로 서빙이 받아 갈 수 있도록 요리대 앞에 선반을 두는 편이다. 그러면 요리사가 걸을 필요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요리사가 음식을 나르다가 자잘한 실수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요리를 내는 동안에는 내 몸을 완전히 밖으로 나와 건네주곤 했는데, 커피를 제조하는 아르바이트생이 곤란해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이그, 할머니라고 생각해서 이런 것도 못줘?"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다시 보니 한 할머니가 손님으로서 커피를 마시고 계시다가 카페에 진열되어 있는 컵 하나가 마음에 들었는지 선물로 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전시용이 아닌 판매용이었다. 애초에 전시용이라고 해서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는 고집을 부리는 것 처럼 보였다.

"손님, 그건 판매품이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르바이트생은 양손으로 컵을 감싸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했고, 마침 사장님 또한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음식을 내밀었다.

"자, 이거 마무리 좀 부탁해."

 나는 아르바이트생을 대신하여 그 할머니와 대화를 시도했다.

"손님, 그건 엄연한 판매품이에요. 직원인 저희들에게 달라고 하셔 봤자, 어떻게 해 드릴 수 없어요. 구매하셔야 하는 물품입니다."

 자그마치 컵 하나에 1만 5천 원이었다.

 컵 하나에 비교적 비싼 가격이긴 했지만, 사장님이 수작업으로 만들었기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매긴 가격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의 입장으로 2시간 이상을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걸 아르바이트생에게 달라고 하면 하루에 4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2시간은 어디로 사라지는지 뻔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할머니도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신 이상 그런 행위는 계속 이어졌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감싸고 있던 머그 컵을 높게 들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팽겨 쳤다.

 당연히 가게 안에는 머그 컵이 깨지는 소리로 울렸고, 여기저기 파편들이 퍼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할머니의 괴음이 발산되었다.

"아니, 네가 지금 저 애한테 말하고 있는데, 넌 뭐야?" 나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그 행동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할머니의 말이든 뭐든 귀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되려 사방팔방에 흩어진 파편들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그저 그 생각이 하나 들 뿐이었다.

"너희들 엄마, 할머니도 없냐? 할머니 같아서 컵 하나 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돌아가면서 상대질이야?"

 정상적인 사람의 기준에서,

 '아, 이 사람 문제가 있다.'

 라는 기준이 생겨서 어떤 두 사람 사이에서 끼어들었다면, 당사자는 분명 기분이 나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할머니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좋을 대로만 받아들이고 말고 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적어도 할머니 처럼 무례하게 구시고 떠나시지 않으셨어요."

 그 말은 똑똑하게 했다.


 어딜 가든 잘못을 하면 사과를 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은, 고집쟁이인 나에게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머리에 깊게 박히게 만드셨었다.

 하지만 하고싶은 말만 해대는 그 할머니에게, 나 또한 내가 할 말은 해야 했다.

 당연스럽게도 우리 둘은 서로 할말만 할 뿐 대화자체가 성립대지 않았고 화만 낼 뿐이었다.


 일반 카페나 음식점이나 다른 사람이 쓸 사람 생각도 안 하고 자기 좋을 대로,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누릴 권리는 다 누리고 더 바라는 손님은 수도 없이 봐왔다. 심지어 한 커플이 식사 도중에 다툼이 시작되고 여성분이 화가 나 식당을 나가고, 남자 친구도 따라 나가면서 무전취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다시 와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무엇보다 안쓰러웠던 것은,

 그런 분이 할머니였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세월을 겪고 수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임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어딘가에 늘 존재한다.

 그건 나에게 어른은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좀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어른들,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거의 무조건 적으로. 나도 그래 왔다.

 하지만, 어른들은 늘 옳지도 않았다.

 보고 배우는 어린이 앞에서도 늘 옳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어른들도 있기 마련이고, 대우를 받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젊은 사람에게 하대하는 노인도 있다.

 지금 이 상황만 봐도 어른들이 늘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경하라고 강요한다. 그래서 반발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 여기서 문제.


 결국 그 할머니는 컵 값을 계산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저 컵 계산을 왜 해?"

 이젠 나에센 컵도 아니고 쓰레기에 불과한 유리조각에 관심이 사라졌버렸다.



 과연, 이 컵의 값은 누가 메워야 할까?

 아르바이트생?

 나?

 사장님?


 왜 애꿎은 사람들이 고민해야 하는 건지,

 그저 씁쓸해질 뿐이었다.


 처음부터 대화는 성립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더 씁쓸한 건,

 그 할머니는 여기뿐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저런 행위를 할 수 있는 건 본인이 잘못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기에.


 그런 사람은 적어도 타인에게서의 그런 태도가 변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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