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나의 옛사람들.
2년 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주 간소하게 친구 이름 두 글자가 폰 화면에 띄워졌고, 나는 잠시 전화를 받기 망설였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여전히 친구라고 생각은 하지만, 2년이나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왜 전화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망설여지는 것이 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자면, 단순히 연락을 하는 것을 떠나서 무언가의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들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오랜만에 연락 온 다른 지인에게서 돈을 빌려달라는 명목으로 전화를 받아 봤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좋았던 기억들을 남겨주었던 사람들이 돈이나 개인적인 목적으로 인해 전화를 거는 것 만큼 씁쓸한 것 또한 없었다.
하지만 2년 만에 연락 온 친구의 대화에는 그동안의 안부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는 인사가 전부였다. 목소리의 톤이 꽤나 높았고 조금 정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했었다.
그 친구를 알게 된 지 10년이 넘었었지만 최근 2년의 공백 때문인 건지, 아니면 내가 다른 의구심 때문에 경계를 했던 탓인지 친했던 친구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색한 대화가 형성되기도 했다.
2년 만에 연락은 준 친구는 전화를 준 당시에 사실 술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나와 전화 통화를 끝으로 또다시 술을 마셨다고 했다.
나에게 전화를 건 순간은, 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이 술을 사러 간 사이에 혼자 무언가의 허무감을 느껴서 친구들 전화번호를 살피다가 나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술김에 전화를 한 만큼, 그동안 하고 싶어도 전화 한 통 걸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번엔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보았었다.
역시 이전과는 달리 조금 목소리 톤도 낮고 진지한 느낌이었다. 낮이었던 만큼 맨정신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맨 정신을 차려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밤에는 술로 버티는 듯한 말을 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대화에 그는 말했다.
"전화 줘서 고맙다."
사실 그 친구는 몇 년 전에 이혼을 하고 혼자 계시게 된 어머니가 시력 문제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원래는 마산에서 가족과 함께 식당을 운영을 하고 있었으나, 눈앞이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었고 수술을 받아야 하다 보니, 그 주변에는 늘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시간이 날 때마다 옆에 있던 게, 아들인 그 친구였다.
그에겐 누나도 한 명 있었지만, 생계유지와 수술비를 위해서 따로 살고 벌고 있었다. 그 또한 원래는 마산에서 살고 있었지만,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생각을 해 봐. 주말도 출근하라면서 돌려가면서 주는 월급이 월 120만 원이야. 그게 말이 되냐?"
친구는 그런 하소연을 했고, 마산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친구는 술김에 나뿐만이 아닌 오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그중 다시 회신이 온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서 세상이 무섭고 겁을 먹다 보니, 유치하게 놀던 친구들에게도 연락 한 번 하는 게 낯설고 망설여졌었던 모양이었다.
"야, 우리 본지 몇 년이 됐냐?"
"연락도 연락이지만, 얼굴 본 지는 5년이 넘은 것 같은데."
"얼굴 한 번 봐야지."
"내가 그쪽으로 내려가면 다시 연락할게 그때 보자."
"그래 그땐 정말 보자."
아직 그 통화 약속의 결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9월 20일.
4일 후면 추석이 오는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폰 안의 전화번호 기록부를 살피며 어른들에게 추석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전화를 드리는 게 추석이나 설 명절 때만 했었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서로의 안부를 직접 듣는 게 아닌, 그저 타인에게서 타인의 안부를 듣는 게 전부였을 것이었다.
그러다가 고모의 전화번호를 찾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사촌 어른들에게 전화를 하는 게 아니라 사촌 형제에게 전화를 하는 게 어떤지.
그 생각이 들었던 것은, 생각해 보면 한 번도 사촌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본 적이 없었다. 카카오톡에서도 단체 방에서 여러 명이서 톡을 주고받고 이야기를 할 뿐,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사촌형제에게 전화를 하고 어른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상대방이 "얘가 왜 전화를 했지?"라는 생각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어째.
어른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보다, 사촌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는 게 더 어려웠다.
그건 그저 그 사람이 어렵다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연락 자체를 하지 않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버튼 하나만 누르면 이어질 연락을 하는 게 너무나도 망설여졌었다.
익숙해진다는 게 이런 점에서 힘든 게 있었다.
익숙해지면 좋고 편해지는 게 있지만, 좋지 않은 데에 익숙해지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 뿐이었다.
그저 전화기로 넘어서 대화를 하려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평소에 익숙한 사람에게 자주 연락하고 친하지는 게 일반적인 것처럼,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연락도 잘 하지 않는 사람에게 연락을 하는 게 편할리는 없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느껴지는 친구가 아닌 이상.
이번에는 괜한 겁을 먹지 말고 옛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전화번호부를 살펴본다.
이번 추석을 핑계삼아서라도 다시 한번 즐거운 통화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