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멀리 나가는 게 싫었을 뿐, 밖에서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수다를 떨고 놀며, 쇼핑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저 나는 그런 즐거움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을 여행 다녀오면서 그런 점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리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정작 재미를 보니 또 가고 싶어졌고,
역시 내가 해 본 게 아니다 보니 낯설었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게 아닌가, 다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성향은 그 어떤 것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나는 통금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아빠가 혼자서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면서 혼자서 두 딸을 신경써주기 어려웠던 엄마는 언니와 나에게 통금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아빠가 없는 집안에서 두 눈에 언니와 나를 두어야만 마음이 편했던 엄마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 우리를 보고서야 안정했고, 그래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때의 시간은 늘 10시, 그 시간을 넘기면 늘 엄마는 집에 들어오라고 재촉하기도 전에 화를 내면서 혼을 내기도 했다.
그렇기에 학원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들어가야 했고, 친구들과 방과후에 놀 수 있는 것 따윈 없었다. 주말에 놀러 나가도 9시까지 들어와야 하는 날도 많았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싫어서 일부러 통금을 어겨보았지만 오히려 더 강하게 조여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화를 내는 건 역시 무섭고 싫었다.
“엄마, 나 언제까지 통금있어야 해?”
그 말에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결혼할 때 까지.”
'설마'했던 그 말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었으며, 새벽 1시까지 늘여졌다.
그러면서 약간의 부작용이 생겼다.
“야, 나 1시까지 들어가야 하니까. 빨리 놀러 가자.”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노는 건 좋지만,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 되어 있다보니 미친듯이 노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면 술잔이 비우면 바로 채운다던가 금방 취하고는 놀았을 때의 기억이 없어질 때도 있었고, 야간 할증으로 인해서 매번 택시비는 한 두푼이 아니었다.
아쉬움이 생기는 만큼 노는건 더 좋아해졌고, 그만큼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곤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 마냥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같은걸 하면서 논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바뀌면 재미도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내 주변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많이 생겼지만, 깊고 친한 사람들은 거의 없는 거나 다름 없었다.
그건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뚜렷하게 분간이 되었다.
그 결과, 내가 누군가를 찾지 않는 이상 누군가가 나를 찾는 경우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것을 의식하면 할 수록 더 쓸쓸해지곤 했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이번에는 혼자서 술을 마셔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포장마차거리에서 어느곳에 들어갈까 살피던 도중,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뭐에요? 혼자 술 마셔?"
나는 포장마차 안에 살짝 얼굴을 내밀어 말했다.
"어? 뭐야? 웬일이야?"
그는 평소에도 말도 별로 없었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내가 놀 때 그는 항상 없다고 무방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보니 괜히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그대로 옆자리에 앉아서 소주잔 하나와 술 한병을 추가했다.
"이왕에 이렇게 본 거 같이 마시지 뭐."
"혼자서 술마시려고 그랬던 거 아니야?"
"그래볼까 했는데... 그래도 옆자리에 누가 있는 게, 아직은 더 좋아."
그리고 그는 나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오늘은 약속 없었나봐?"
"하나도. 내일도 모래도 없어."
"매일 있는 것 처럼 바빠보였는데."
"그랬는데. 생각해보면 뭐 그리 급하다고 그리 논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통금은 1시지만 아직은 9시 오늘은 꽤나 시간이 흐르는 게 늦은감이 있었다.
간만에 여유였다.
"뭐, 가끔은 여유롭게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텐데."
"지금 그러고 있잖아. 그래도 혼자는 쓸쓸할 것 같았는데, 이렇게 같이 있으니 좋네."
"그러냐?" 그리고 그는 살짝 웃고는 술 한잔을 넘겼다.
"근데 혼자서 왜 이러고 있었어? 술 잘 안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냥, 뭐. 나는 반대로 이렇게 시간을 보내 볼까 싶어서 그런거지."
그러곤 그는 술잔을 내밀었다.
나는 그 잔에 부딪히쳐 말했다.
"그럼 오늘은 서로 반대로 하다보니 이렇게 맞아 떨어졌네."
"그렇게 되네."
그렇게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걸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였음에도, 어째서인지 그날은 그사람도 나에게, 나도 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서 많은 걸 알려주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가 평소에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최근에는 어떤 고민을 하고, 휴일에는 무엇을 하면서 즐기며, 며칠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의 시간을 알게되고 있었다. 그만큼 그도 나의 시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은 이미 11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슬슬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만큼 시간이 흘러가는 게 고요했었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 꽤나 신기했다.
여전히 통금시간은 미웠다.
"저 일어나야 돼."
"아 통금?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완전히 신데렐라잖아. 그치?"
"알아. 다른 사람들 한테 들었어. 12시 땡하면 뭔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간다고."
"그게 다른 사람들한테서 전해들을 만한 수준이야?"
"인싸은 원래 그런 법이야. 네 입이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다니니깐."
"인싸는 무슨"
그리고 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포장마차, 자주 들려요?"
"자주는 아니지. 근데 이곳만 들려. 익숙한 걸 좋아해서."
"익숙한거. 익숙한게 편하고 좋죠."
"그래. 그게 좋긴한데. 좀 무뎌져. 그러면."
"그래요?"
"봐봐. 오늘만해도 평소처럼 천천히 시간 보낼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잖아."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뭐 그렇지. 즐거웠지. 재미있었어."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누군가와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얼굴을 마주하고 즐거웠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던지. 묘한 감정이 들었던 건지, 아니면 술때문에 몸이 추워진건지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데려다 줄까?"
그가 물었다.
"아니. 어차피 택시타고 바로 가야해."
"그래. 그럼 택시타는 곳까지만 데려다 줄게."
"바로 앞인데 뭐."
"여기는 술마시는 사람들 많아서 이 시간에 혼자는 좀 그래. 가자."
그렇게 그는 앞장섰다.
나는 뒤에서 그의 걸음을 바라보고 따라갔다. 그게 어째 그저 길바닥이었음에도 눈길에 발자국을 세긴 것 처럼 그의 발자국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2~3분도 지나지 않아 택시들이 정차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하나의 택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거 타면 되겠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우리 처럼 술을 마시고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여럿있었다. 그 중 그가 다른 사람보다 앞질러서 택시를 잡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말을 했다.
"고마워."
"잘 들어가기나해."
그리고 나는 택시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연락할게."
"연락? 그래."
택시가 출발하고 나는 유리창을 넘어 그가 아직 있는지 보았다. 그는 서로가 볼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을 때까지 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확인해서 그에게 메시지 하나 남길까 했지만, 그의 전화번호는 내 휴대폰 안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와 연락처를 주고 받은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는 어째서 그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괜스레 그가 섭섭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겉치레 말을 대놓고 한 셈이 된 거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욕하며 택시 좌석에 몸을 축 기대고 있을때, 그에게서 하나의 사진이 도착했다.
번호판까지 보이는 내가 탄 택시였다.
내가 얄미울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나에게 이런 다정함을 끝까지 주고 있었다.
'고마워.'
나는 그렇게 답장을 했다.
나는 과연 다른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먼저 준 적이 있었을까?
매번 나만을 생각하며 나만 즐기기를 위했던 내가 과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먼저 준 적이 있었을지 술김과 함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은 12시가 넘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집에 도착하지 못했다.
오늘 시간이 왜이렇게 여유감이 넘치는 건지 뭐든 다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애초에 새벽 1시면 그리 이른 통금시간도 아니긴했다. 내가 워낙에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하는 게 문제일 뿐이지.
이왕에 혼자서 더 집 밖에서 생각을 해 보고 싶었다.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를 사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고요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았다.
어두워서 다른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만큼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불빛이 나오지 않는 가로등 아래에서는 한 커플이 껴안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연애를 하고 싶다기 보단 지난 연애가 떠올려졌다.
연애도 그랬다.
늘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으니, 같이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있다보니, 나에게 먼저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먼저 좋아서 연애를 시작한 적이 없었다. 전부 '이 사람이면 괜찮지.'라는 생각에 시작을 하고 그 사람이 좋아지면 계속 연애를 하고, 안맞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봤지, 먼저 준 적은 없었다.
"하하. 이걸 그런 생각으로 이어진다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스스로가 외로워지기 시작한 모양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아주 치명적이었다.
여태까지 주어진 사랑에만 받아왔다.
마치 화분에 물을 주고 싹이 트는 것 처럼 말이다.
주어지는 감정에만 반응하고, 그 환경에만 적응해 왔다. 내 일상이든 내 연애든 말이다.
그런 내 모습은,
어쩌면 누군가가 나에게 물을 주지 않는 이상 싹이 트지 않는게 당연한 사람이 되어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상으론 그게 당연할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하지만 예외는 언제나 존재했다. 콘크리트 사이에도 무언가의 싹이 나는 것 처럼 말이다. 그곳에 나는 잡초든 꽃이든 오히려 그런 게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누군가를 먼저 좋아해도 어떻게, 뭘 해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게되었다.
만약에 그에게서 반응을 한다면,
애초에 뭐가 좋아하는 감정이 맞는 건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생겨날 수도 있는 건지.
혹시 내가 무언가랑 착각한 건 아닌지.
아니 애초에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감정인 건지.
너무나도 낯선 기분이었다.
그리고 고민한다.
세상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때 대체 얼마나 안절부절하고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어렵게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 보여줬을지.
세삼 대단하게 느낀다.
그만큼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마음들이었다.
그리고 새벽 12시 40분.
엄마에게서 왜 안들어오고 있냐는 재촉으로 위장한 걱정 연락이 계속 오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또 생각이 바뀌려나."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적응해 왔던 사람이기에 스스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해 본적이 없었기에,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이상, 간절해지지 않는 이상 무언가의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적이 없었기에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런 감정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스스로의 감성을 남겼다.
"아, 짜증나."
나는 얼마 남지 않는 맥주를 다 넘기고 편의점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