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누군가에게 반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나를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그저 알아가면서 매력을 느끼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저 외모에 반해서 일수도 있고, 그 사람과 있으면 즐거워서 일 수도 있고, 그저 마음이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다.
정말 사소한 것은, 그저 평범했던 자기 자신의 일상에 새로운 사람의 등장으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누군가에게 반할 수도 있는 법이다.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을 주는 법이니까.
평소와 다름없이 씻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한다.
출근 전에 이 작업이 정말 얼마나 귀찮은지, 머리만 감고 말리고 끝을 낸다는 남자들이 부러울 때가 정말 많았다. 이쯤 되면 긴 머리카락도 단발로 싹둑 잘라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 그건 그것대로 또 스스로에게 투덜댈 것 같았다.
그렇게 여전히 똑같은 마음으로 정리를 한 뒤, 거실로 나와 주방에 있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려진 밥상을 보고 난 말했다.
"엄마 오늘 나 생일인 거 알아?"
"미안 오늘 아침부터 좀 바빠서 준비 못했어. 저녁에 먹자."
그러면서 늘 준비해줬던 바나나 주스는 잘 준비해 주었다.
이런 건 별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아닌 모양이었다.
딱히 생일날에 미역국을 챙겨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기분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나이도 계속 차다 보니, 그런 거에 미련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생일에 대한 특별한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것을 핑계로 선물을 받거나, 친구랑 어울리거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살기 바쁘면 잘 챙길 수도 없었다.
분명 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거나 지쳤던 걸지도 모르겠다.
늘 똑같은 일상에 특별함 하나 없다 보니, 지루한 영화를 계속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바로 잘 수 있는 기분이기도 했다.
"야 너 오늘 생일 아니야?"
점심시간이 지나, 근무를 들어가려던 도중 한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긴, 보란 듯이 적혀있던데."
그는 메신저의 프로필에 생일 알람 서비스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뭐, 저번에 6월 22일이 생일이라고 했잖아."
"그게 언제인데 기억을 해요? 괜히 아는 척하기는."
"그게 아는 척이냐?"
생일이 그날이라고 말한 적이 있긴 했었지만, 그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정말 기억을 하고 있었던 건가 싶었다.
"미역국은? 먹었냐?"
"아뇨."
"아침에 바빴나 보네."
"안 먹어도 괜찮은데 뭘. 그거 먹는다고 뭐 달라지나."
"서운한 티가 팍팍 나네. 그럼 뭐. 저녁이라도 같이 할래?"
나는 잠시 생각했다.
순간 엄마가 저녁에 미역국 준비해 준다고 말했지만, 방금 말했다시피 그게 뭐 중요하나 싶었다. 이렇게 생일 핑계로 평소와 다른 일상을 보내는 것도 좋으니.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낭중에 톡해."라고 말하며 그는 멀어지면서 손으로 전화기 모양의 제스처를 했다.
"낭중에 봐요."
나는 손을 흔들면서 그를 보냈다.
그 사람은 처음 입사할 때 같은 부서에 있었고, 바로 한 기수의 선배였기 때문에 나의 사수가 되어주기도 했고, 나름 잘 맞아서 친하게 지냈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는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렇게 자주 만나곤 했지만 퇴근 이후 따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그가 퇴근 이후에 시간을 잘 내어주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었고, 이렇게 그가 먼저 시간을 내어달라고 하는 경우도 드물었었다.
"뭐 먹을까?"
"뭐예요. 지금. 20분이나 늦고."
"잠깐 뭐 좀 산다고."
그러면서 그는 뭔가 종이가방을 꺼내 들었다. 설마 내 선물인가 싶었지만, 뭔가 밀폐용기를 담은 걸 보아 별개의 물건인가 싶었다.
"오늘은 중식을 좀 먹고 싶은데."
"그거 말고 내가 알아본 데로 갈까?"
"아니, 그럴 거면 뭐 먹을지를 왜 물어봐요."
"그냥 뭐. 예의상."
약 올리는 건지, 나는 결국 그의 말 따라갔고, 조용한 한식당으로 갔다. 살짝 은은한 분위기를 내는 곳이라 고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그러곤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주문을 받은 사람을 따라갔다. 그 모습은 내가 바로 볼 수 있었고, 그는 방금 전에 샀다고 한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리고 자리에 돌아온 그에게 물었다.
"뭐하고 온 거예요?"
"아니, 아무리 찾아봐도 미역국을 파는 곳이 없어서."
"미역국? 왜?"
"너 먹이려고. 여기 주방에 내 친구가 있거든. 그래서 좀 부탁했어."
그가 가지고 있던 밀폐용기에는 편의점에서 산 마른미역을 물에 불려 놓고 있었고, 그것을 친구에게 넘겨준 모양이었다. 미역국을 바로 끓여줄 수 있도록.
"아니, 그냥 미역국 사 먹으면 그만인데. 뭐하러."
나는 뭔가 당황스러웠고, 뭐하러 이런 일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뭐. 그렇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지."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서, 식사와 함께 미역국이 나왔다.
그 미역국은 약간 특이했다.
소고기를 넣어주고 싶었지만, 불고기 하려고 재워둔 소고기 밖에 없어서, 그 미역국에는 불고기 양념의 맛까지 났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야."
나는 그렇게 한 입을 먹고 웃겨서 입을 가려서 큭큭댔다.
맛도 맛이지만, 이 상황 자체가 뭔가,
뭔가가 행복한 느낌이었다.
"이거 맛있는 거야. 뭐야?"
"맛있어요. 정말로."
나름의 감동이었다.
나는 내가 미소를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 미역국 한 숟갈을 계속 떠먹으면서 그 안을 바라봤다.
내 생에 처음으로 재미있고 행복한 미역국이었다.
그리고 그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을 땐, 엄마가 해주겠다는 미역국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선배가 해 준 이벤트는 잠자기 전까지, 그리고 잠을 자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평소와는 다른 즐거움이었다. 비록 똑같은 일상이 시작된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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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여전히 그 선배와 친하게 지냈고, 마치 학교에서 옆반으로 놀러 가고 싶어서 매번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 마냥, 그를 찾곤 했다.
크게 변한 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즐거운 사람이었고, 보고 싶게 만들었다.
내년의 내 생일에 그가 또 옆에 있다면, 그땐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가 되곤 했다. 그가 나보다 생일이 늦었다면 나도 무언가를 해줬을 텐데,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안타까웠다.
그리고 세 달째가 지나가려고 하고 있을 때.
제주도에서 올라와 몇 년 만에 만나게 되는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월차를 쓰고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너 결혼할 때 안됐어?"
그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나? 네 얘기 아니고?"
서로 20대 후반이 되니 결혼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남자 친구가 없는데 무슨 환상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싶었다.
"남자 친구는 없고?" 나는 물었다.
"제주도에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아서. 괜찮은 사람이다 싶으면 다 놀러 온 사람들이더라."
"그럼 그냥 장거리 연애로라도 시작을 해봐."
"예전엔 몰랐는데, 이젠 진짜 그렇게 해서라도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외롭나 보네.
나는 커피를 홀짝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다른 누군가를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막상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음...
사실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럼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걸로 봐선, 커플이 될 인연은 아닌가 싶었다.
음음. 그래. 웃음거리가 됐었을 거야 그러면.
나는 내가 먼저 고백을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가 괜히 쑥스러워졌다.
"그럼 다시 제주도에 내려가?"
"결국엔 그럴 것 같긴 한데. 이번엔 일 때문에 온 거라 좀 오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리고 친구가 말을 하던 도중, 다른 한쪽에서 낯이 익은 얼굴이 자리에 앉았다.
그 사람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놀란 듯하면서 가볍게 손인사를 했다.
"뭐야? 누구야?"
내가 누군가와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친구는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가 내 선배인 것을 설명했고, 그저 인사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회사 밖으로 나와서 거래처의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그는 자기의 일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고, 내가 아무리 시선을 보내도 그의 시선이 되돌아오지 않았다.
근데.
유난히 이 친구가 그를 계속 쳐다봤다.
"야. 너 뭐해? 다른 데로 안가?"
"야. 저 사람, 그저 단순한 선배야?"
"어? 어. 뭐."
"그래? 그럼 나 소개해줄래?"
나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뭐? 뭐라고?"
"나 소개시켜 달라고."
그 순간, 괜히 이 친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가 여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물으려고 하지도 않고, 언제 봤다고 그렇게 관심을 갖는 건지 계속 쳐다보기나 하고. 분명히 그도 시선이 느껴질 텐데.
뭔가 불편했다.
"저 사람, 여자 친구 있는 거야?"
"... 아마 없을걸."
"그럼 물어봐. 소개시켜준다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아마 이 날, 나는 친구에게 내 마음을 들켰다. 이 순간만큼 괜스레 아주 솔직해졌다.
그나마 사이가 틀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니. 싫어."
평소와 같은 날이 아니었음에도 하루의 시작과 끝은 똑같다.
여전히 긴 머리카락은 헹구기 귀찮고 말리기는 더 귀찮다.
익숙함이라는 건 정말 사람을 방심하게 만든다.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자 친구도 만들지 않고 있었고, 그렇게 나를 신경 써 준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과 일상이 계속되면서, 언제까지 계속 이럴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옆에 다른 사람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근데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건 참을 수가 없었다.
버티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살짝 불안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 사람에게 누군가가 다가갔을지도 몰랐다는 것에, 그리고 그걸 자신이 막았다는 것에.
어쩌면 나는 익숙한 일상 때문에,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다.
지금의 일상이라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소유욕이 생겼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뺏긴다는 걸 상상하니, 정말 바보 같은 게 따로 없었다.
그러니 말해야 했다.
빨리 그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도록.
다른 사람에게 뺏기지 않도록.
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날은 유난히 밤이 너무나도 길었다.
이 글은 아래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지만, 수번의 교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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