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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Nov 27. 2019

금사빠는 결국 계속 사랑을 찾아 나선다


 모태솔로라고 표현해야 할까.

 군대를 다녀와도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한 적도 있었고 썸이라는 단계까지 도달해 알콩달콩한 적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은 없었다.

 나에겐 관심도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 사귀자고 하던가, 카페에서 이쁜 사람을 자주 보러 가다가 연락처를 물어본다던가, 썸이라는 단계에서 너무 내 감정만 앞세우다가 그르친 경우로 실패로 가득했다.

"뭐, 그러니까 다 까이는 거겠지."


 그게 계속 이어지다 보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내 마음을 표현하는 건 더 어려웠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또 불안했다.

 어떻게 해야 사랑이 이루어질지 생각해 보았고, 나름대로의 공부를 해보기도 했다. 물론 사랑이라는 게 연습이나 공부를 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으로써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장점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내밀 수 있는 특기 같은 거 말이다.


 나는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어릴 적에 배우기도 했지만 흥미가 없던 그 시절과는 달리, 다른 여자들이 피아노 치는 남자를 보고 멋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계속 배우지 않았던 것을 후회로 남기도 했다.

 그래서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

 그 어떤 곳에서도 연주할 수도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정말 잘 맞아떨어진다면 누가 봐도 멋있어할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앞섰다.

"기타를 잘 치는 남자. 멋있지 않나?"

 나는 그런 생각에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또 어느 정도 어쭙잖은 실력으로 허세를 부리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그 와중에 슬픈 노래가 귀에 들려왔고 그 노래에 맞춰 기타 치는 건 흥미로웠다.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있으면 그 노래의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어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불러주면 멋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연습을 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기타를 치는 것에 제법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또다시 나의 사랑이 찾아왔다.

 이쯤 되면 나는 금사빠의 계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나의 이모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일하는 수습 미용사였다. 

 머리를 자르러 가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그녀를 알게 된 이후 나는 이모에게 일을 도와준답시고 미용실에 자주 들리곤 했다. 

 화려한 스타일을 하고 있는 미용사들과는 다르게 어깨에 닿지 않도록 깔끔하게 떨어지는 듯한 단발머리와 염색한 적이 없는 듯한 새까만 머리는 오히려 더 세련되어 보이기도 했다. 또한 작은 이목구비와 작고 얇은 체구에도 얼굴에는 젖살이 빠지지 않은 건지 갓난아기처럼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너무 티 내지 마. 걔는 물론이고 다른 직원애들도 불편하게 느낄 수 있어."

"이모?"

 결국 나의 낌새를 맡은 이모는 그냥 정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가 보라고 권유받았고, 그렇게 나의 아르바이트는 시작되었다.

 나는 물론 티 안 나게 한다고 했지만, 남자와는 다른 여자들의 감은 한눈에 들어오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미용사들도 전부 여자이다 보니, 이미 눈치는 다 채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걸 잘 숨길만큼 연애의 고수도 아니며 그 어떤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늘 그녀와 나는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기도 했다. 이모까지 도우면서 말이다.

"늦은 시간이니까. 네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줘."

"네? 아니 사장님 그럴 필요 없어요." 

 그녀는 사양하는 듯했다.

"아냐. 주변에 술집 많아서 매번 좀 그랬어. 얘라도 남자애 옆에 두고 가는 게 마음이 편해."

 이모의 의도는 좋았지만, 조금 더 좋게 포장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퇴근길은 매번 같은 퇴근길로 이어졌고, 나는 그걸 계기로 같이 카페 숍에 들리기도 하고 늦은 저녁을 같이 먹기도 했다. 

 그리고 늘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저 착한 사람이라고 남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에 고민에 빠졌고, 나는 그녀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씩 사로잡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건 나대로, 그녀와 함께 사랑에 빠지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도중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르바이트하러 가면서 기타를 매고 가기도 했다.

"기타 칠 줄 알아요?"

"아. 정비 좀 받으려고 가져왔어요."

"음대생 같네요~"

 나는 그렇게 나를 어필하곤 했다. 점수는 따면 딸 수록 좋다고 여겼기에, 나는 점점 내 자존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기타를 연습했고, 기타 교실에 수업을 받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로 인해서 더 기타를 잘 치고 싶었고 더 연습했다. 

 기타 소리를 내면 그녀에 대한 감정이 다시 느끼고, 새롭게 기록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기를 쓰면 쓸수록 내가 뭘 했는지 추억을 남기며 기록하는 것처럼.

 그런 감성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런 짓들은 전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모의 요청으로 점심시간부터 출근해서 풀타임으로 일을 하러 오라고 하는 날. 다른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유연이 넌, 남자 친구 없지?"

 다른 직원의 말이 나오자, 흥미진진한 듯 주변 미용사들이 씩 웃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남자 친구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있는... 데요?"

 순간, 나는 동공이 떨리는 것을 억지하기 위해서 고개를 숙였다. 온몸이 떨려오는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가만히 있었다. 완전히 굳어버렸다.

"뭐? 진짜 있어? 없지 않았어?"

"네? 있었는데요?"

 주변은 그녀의 대답에 신경이 쏠렸었고 그런 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당황했다.

 물론 나는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지 물은 건 아니었지만, 전혀 남자 친구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고, 당연스럽게도 그녀가 남자 친구가 없는 줄 알고 있었다.

 분명 남자 친구 있냐고 물어본 직원도 이런 일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던 눈치였다.


"근데 데이트 약속 잡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반지도 없었고."

"반지는 원래 없었어요. 남자 친구는 이제 곧 군대 전역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요."

 모두가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상관없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다들 사정을 알기에 분명 내가 안쓰러워 보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 아무리 그래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남자 친구 얘기를 한 번도 안 해? 다른 사람들 오해할라."

"무슨... 오해를?"

 그리고 그녀는 생각보다 둔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또, 나의 일방적인 사랑은 끝났다. 아주 조용히.



 그 이후로 나는 기타를 가방에서 꺼낸 적이 없다.

 기타 줄은 보통 3개월에 한 번은 갈아줘야 하는데, 그날 이후로 이미 5개월이나 바꾸지도 않고 방치된 상태였다.

 그래서 중고로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리려고 직거래를 하러 나오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상태가 별로라는 말에 퇴짜를 맞기도 했다.

"아 무슨, 이젠 이런 걸로 퇴짜를 맞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오곤 했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일부로 들고 다니기도 했던 기타였고, 내 감정을 남기고 표출할 무기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저 짐이라고 느껴졌다.


 원래 거래를 하기로 한 거리는 커플들이 자주 출몰하는 번화가의 중심지였다. 나는 그저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 걷지 못해 그 이어폰을 꽂고 있는 틈 사이를 비집고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은 기타, 다른 한 사람은 베이스, 보컬은 자그마한 여성이었다.

 가끔 있었다.

 이렇게 찻길 같은 곳에서 스피커를 틀어놓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하지만 그중에서 여성 보컬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깔끔하게 절단한 듯 어깨에 닿지 않는 단발을 하고 있었고, 액세서리는 양쪽 귀걸이로 끝으로 아주 수수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목소리는 허스키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잠시 그 사람들의 노래를 들으려고 했지만, 내가 듣기 시작했던 노래가 끝으로 그들의 노래는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또 뭔가 퇴짜를 맞은 듯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두 번째 중고거래 도 거부당했다.

 이번에는 물건을 보지도 않고 금액에 착각이 있었다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아나, 진짜."

 아마 조금 깎아보려고 하는 술수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렇게 호구 취급당해줄 정도까지 정신상태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전의 밴드가 또다시 연주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몇 번 노래를 계속 들을 수가 있었다. 사실 이쪽으로 중고거래를 하러 오면서 그 연주를 또 볼 수 있을까 작은 기대도 하곤 했었다. 

 그러니 중고거래가 퇴짜를 맞았다곤 한들, 이것은 희망대로 보게 되었으니 그것대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그 밴드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음악이라는 걸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냥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그 여성 보컬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 귀에 들어오는 노래 목소리에 따라 그 보컬 쪽으로 시선이 계속 가게 되었고, 관객을 바라보던 그녀 또한 나랑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땐 나는 어색하게 박수를 치곤 했다.

 그게 계속되다 보니 왠지 민망해지기도 하며 실례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지금 나오는 노래를 듣고 자리를 뜨려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동시에 그 밴드의 연주도 끝이 나고 자리를 벗어나려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녀는 바로 나에게 다가왔다.

"저기요!"

"...? 네?"

 그녀는 급하게 날 잡았다. 정확하게는 내 등에 매고 있는 통기타를.

"저기, 혹시 이거 기타 맞죠? 음악 하세요?"

 그렇게 그녀는 그렇게 나에게 말을 붙였다.


 그녀와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밴드의 멤버를 모으고 있었고, 마침 눈에 뜨인 나에게 말을 걸었고, 같이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그 동시에 나는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가 없는지, 남자 친구가 있을만한 흔적이 어디에 있을지 살펴보곤 했다.


 후에 나는 또 한숨을 쉰다.

 금사빠는 정말, 어처구니없게 금방 사랑에 빠지는가 보다. 그것도 단발머리의 취향에.

 그만큼 외로워서 그런 걸까.

 아니다.

 금사빠는 이유 없다.

 그냥 사랑을 하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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