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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Aug 28. 2019

이건 썸의 관계일까? 어장관리일까?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좀 기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생각할 기회를 달라고.

 나는 순간 그 말 자체가 무슨 말인 건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딱 하루만 지나고 답을 해 주겠다고 말했다.

 대체 그녀는 왜 그 하루가 필요했던 걸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였다.

 장소는 카페에 가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을 당시였고, 서로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나이도 비슷하고 하니, 친구로 잘 지냈었다. 그래도 좁은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하면 이런저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의 남자 친구는 매번 그녀를 데리러 왔었고 남자 친구라는 인식을 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의 연애로 군입대를 늦추고 있었는데, 그랬던 열기에 비해서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군대에 갔을 때에는 여자 친구가 없었으니 그런 기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군대 안에만 있어도 여자 친구가 있던 녀석들이 수많은 이별통보를 받는 건 그 수만큼 흔하기도 했었다.

 남자 친구가 없게 된 그녀의 입장인 만큼 그녀는 꽤나 자유로운 입장이 되었다.

"너도 봤잖아. 매번 아르바이트하는데 찾아오고 말이야."

"그게 싫었어?"
"원래는 좋아야 하는 게, 그거 우리가 서로 다퉜을 때나 걔가 내 기분 상하게 했을 때 그런 경우가 많았었거든."


 이런 일은 당연한 거겠지만,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 자신의 사적 생활에 이것저것 참견을 받곤 했다는데, 확실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알바생들끼리 술 마시러 나왔을 때에도 "그만 마시고 일어나"라며 데리고 간 적도 있었다. 그때의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뭐라 하기보다는 "내가 예전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난리치고 다닌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래."라는 식으로 나쁘게 보지 말아 달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대체 어떤 실수를 얼마나 했길래?"

"친구 핸드백이 비닐봉지인 줄 알고 토한 적이 있던 게 제일 컸지."

"미친."

"이게 좀 그렇다? 누가 자꾸 통제하려고 하는 듯이 있으니까, 반항심이라고 할까? 더 하고 싶어 지는 그런 맘. 뭔지 알지?"

"그래. 알지. 안다고 해야지."

"뭐야. 너는 여자 친구가 그렇게 한 적 없어?"

"너처럼?"

"아니 내 전 남자 친구처럼."

"나는 여자 친구가 있던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그녀는 테이블을 엎을 정도로 의자에서 튀어 오르며 크게 웃었다.

"크하핫!"

 이건 분명 나를 비웃으려고 일부러 하는 행동이 틀림없었다.

"뭐. 왜. 없을 수도 있지."

"아니 그럴 수 있지. 애인 한 번 없었다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냥 예상외라서 그랬어."

 그러면서 그녀는 술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웃긴 건지, 아니면 비웃는 건지 계속 키득키득 웃어댔다.

'이거 겁나 짜증 나네.'


 그날은 몇 시까지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각자 손을 흔들며 걔는 택시를 타고 나는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토를 하지 않으면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집 화장실을 엉망으로 만들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침에는 숙취는 별로 없었는데, 어젯밤에 먹었던 것을 다 토해서 그런지 배고픔에 일찍 깨어 버렸다.

 나는 술 먹고 다음날인 게 어울리지 않게 우유와 시리얼을 꺼내 티비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시간은 아직 7시 20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새 도착해 있던 문자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어제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보낸 문자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야. 나 집으로 가고 있는데, 지갑이 없어졌어. 어떡해 ㅠ"

 시간으로 보아 택시로 이동 중일 때 보낸 것으로 보였다. 그 이후에도 내가 확인하지 않자 계속 뭐라고 보낸 모양이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보지 않아서 포기한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상황이 그렇게 안 좋게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런 문자를 본 이상 마냥 신경 안쓸 수도 없었다. 오전 7시 20분이라 전화도 받지 않을 것 같아서 문자를 남겼다.

"지갑 잃어버렸어? 미안 나 어제 정신 못 차려서."

 그리고 역시 그녀 또한 나의 문자를 확인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신경은 계속 쓰였다.

 그래도 방법을 갈구하려고 나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던 거였는데, 본인 또한 당혹스러웠을 테고, 그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전화를 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면서 먹던 도중의 시리얼은 전부 눅눅하게 우유에 녹아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11시가 되어야 답장은 돌아왔다.

"뭐야. 이제 와서 문자 보내고."

 나는 바로 답장했다.

"나도 어제 제정신 아니었잖아. 그래서 잘 들어갔어?"

"나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도 안 해주고? 먼저 정신을 놓았다고? 우와. 개실망."

 당혹스러운 건 결국 나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아. 그렇네. 먼저 잘 들어갔는지 확인해 줬어야 하는 거였는데.'

 라는 식으로 사고방식이 전환되고 있었다.

 나는 왠지 사과를 하고 있었고, 괜히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상황설명을 듣곤 했다.

 그녀는 나와 문자를 주고받는 순간, 지갑을 놔두고 왔던 술집에 찾아가는 중이었고, 당시의 택시비는 집에서 마중 나온 그녀의 어머니가 내주신 모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냥 자기 엄마한테 나와달라고 말하면 될 것을.'하고 생각했다.

 나도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그렇게 굳이 나에게 문자를 보낼 바에는 처음부터 그렇게 했었으면 될 일을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려는 순간.

 그때 그녀가 나를 보며 실컷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어? 나 이래서 애인 없는 거 아냐?'




출처 pngtree


 그 일을 계기로 단 둘이 어울리곤 했다.

"나 오늘 돌아가는 길에 모자 하나 좀 사려고 하는데 좀 봐줄래?"

"모자? 갑자기?"

"어. 요새 캡 모자가 끌려서 말이야. 갈 거야 말 거야?"

"그래 갈게."

"오케~"

 따로 시간을 내어서 만나고 하진 않았지만, 같이 카페의 일을 마치고 나면 잠시 시간을 같이 보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같이 있지 않을 때에도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대신했고, 하루에 한 번도 그녀와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나와는 달리 적극적인 그녀는 그런 말도 하기도 했다.


"토요일 점심에 뭐하는데? 그때 알바 없잖아."

"집에 있을 걸?"

"그러면 나랑 초밥 좀 먹으러 가주라. 혼자 가기 좀 그래."

"토요일에? 이번 주?"

"어엉."

 나는 괜히 뜸을 들였다. 의도적이거나 뭔가를 끌어내려고 한 건 아니지만, 뭔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뭐야? 왜 그래?"

"아니. 그래. 가자. 뭐 비싼 곳이야?"

"아니 점심특선 먹으려고."

 그렇게 그날 또한 토요일에 만나 초밥도 먹고, 덤으로 주변 상가에서 쇼핑도 하곤 했다. 그녀와 단 둘이 보낸 시간이 그렇게 길진 않았지만, 어째 평소와는 다른 순간이라고 느껴지는 게 내가 이상한 모습을 보였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 생기기도 했다.


 분명, 이전과는 우리 둘의 사이가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애인 사이는 아니지만, 마냥 친구사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미묘함이 느껴졌다.


 나는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남자든 관심이 있는 여성이 아닌 이상 따로 만나는 일은 없다고.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은 편이었다.

 그건 여자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그리고 분명 그녀와 나는 "썸의 관계"라고 믿었다.




 그런 관계를 한 달 정도 유지하다가 그런 고백을 했었다.

 역시 그녀 또한 우리 사이가 썸의 단계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하루 정도가 지나서 답이 돌아왔다.


 그 하루가 얼마나 길었던지.

 듣고 싶었던 답을 기다려서 그런지 매일 그 생각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근데 그녀의 답은 이러했다.

"미안, 아무리 생각해도 난 친구사이가 좋은데... 그렇게 하면 안 될까?"


 그렇게 말하는데, 억지로 사귀어 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더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건,

 그 날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카페의 알바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개인 사정이 있다고 말을 하지만, 타이밍을 봐서는 내가 불편하게 만들어서 그만두게 만든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게 된 만큼 하루에 한 번은 꼭 서로 주고받던 문자메시지 또한 뚝 끊기고 말았다.

 그녀는 친구사이가 더 좋다고 말했지만, 이젠 친구사이 조차도 아닌 모양이었다.


 근데,

 근데?

 근데!

 이상하게 뭔가 분했다.

 괜히 화가 나기도 했고, 언제 그녀를 좋아했던 건지 오히려 미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 연결에는 받지 않았고 20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자 그녀는 받았다.

 그리고 살짝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그 목소리에 따라 나도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뭐? 뭔데?"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그래도 그녀 또한 나에게 마음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는데, 왜 이렇게 갑자기 돌아선 건지. 정말 친구로 생각했었을 뿐이었는데 내가 앞서 나간 건지, 아니면 무슨 일이 따로 있었던 것인지 꼭 알아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너, 내가 고백했을 때 왜 하루 시간 달라고 한 거야? 이렇게 선 그을 거면서."

 그랬다.

 그렇게 나를 아예 안 볼 정도면서 친구로 계속 지내자느니 그런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고. 완전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 얼버무리려는 듯한 말투만 계속 나왔다.

 그러자 그녀는 말했다.

"나 남자 친구 생겼어. 그래서 계속 문자하고 전화하기 좀 그래. 미안."

"뭐?"

 그녀는 나의 반응을 듣지고 않고 끊어 버렸다.

'그 사이에 벌써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그리고 그대로 그녀에게 전화나 문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어째 느낌이 차단당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의문을 남긴 채 그녀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납득할 수 없는 게, 그 사이에 남자 친구가 생길 수가 있는 건지.

 내가 너무 고지식한 건가 싶었다.

 나는 진실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녀의 SNS와 카카오톡 프로필을 다 확인하면서 정말로 남자 친구가 생긴 건지 알아보았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고, 마침 사귀기 시작한 D데이 설정으로 한 것으로 보아. 내가 고백을 하고 그다음 날부터였다.


 대체 그 하루 동안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했을까?

 그 생각은 하면 할수록 나쁜 쪽으로 계속 빠져들었다.

 그녀가 최악의 최악이 여자가 되는 쪽으로 말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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