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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Oct 15. 2019

해야 할 것을 미루다 보면 얻는 것들.

 나는 어려서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수학은 물론 어렵지만, 근본적으로는 퍼즐을 푸는 것처럼 정답을 알아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학 문제를 풀 땐 몰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에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사회에 나오면 수학을 따로 쓸데도 없는 것도 마찬가지며 고등학교 가면서 고차원적인 수학 공부를 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내 친구들 중 한 명은 수학을 극히 싫어했으며 이미 중학교 때에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도 제대로 문제를 풀지 못했다. 그래서 수학을 피해 문과를 선택했었고 대학교를 가서도 수학이 관련된 것을 일절 강의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대학원까지 지원하려고 했고, 그전에 영어 공부를 위해서 짧은 기간 동안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수학이 싫어서 역사학이나 영어를 공부했는데, 지금 여기 와서 영어 하면서 수학을 배우고 있다."

 수학은 기본적인 원리에서 응용을 많이 시키는 과목이기에 기본기를 확실히 다져야 하는 과목이다. 하지만 그는 어렵고 싫었기에 다 무시를 해왔지만, 유학을 가서 듣는 수업 중에서는 수학 과목을 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수학에 아직 확실히 듣지 못하는 영어에. 몇 배로 후폭풍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아마 분명 기초라도 정확하게 공부를 했더라면 그렇게 까지 괴로워하지 않았을 텐데, 그 친구 또한 그렇게 미루고 무시했던 게 그런 식으로 되돌아올지 몰랐다고 말했다.



 


 나의 경우엔 이랬다.

 나는 어릴 적에 치과를 매주 다닌 적이 있었다. 발치를 해야 하는 것도 있었고 어릴 적에 워낙에 치아관리가 안돼서 인지 매주 치과 선생님을 마주해야 했다. 그때에 마취주사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팠다. 손의 한뺨정도 되는 주사기에 가느다란 바늘로 내 잇몸을 찔러 그 액체를 주입시키는데 너무너무 아팠었다. 그런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치과는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느 날 오른쪽 어금니 쪽이 시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나는 왼쪽으로만 씹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오른쪽의 통증을 잘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그냥 오른쪽으로 음식물을 씹으면 아무렇지 않을 때도 훨씬 많았고, 그냥 잠시 안 좋았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모른 척하는 게 하나 있었다.

 그 어떤 때라고 한들, 오른쪽으로는 초콜릿 같은 단것을 먹을 수 없었다는 것.

 사실 충치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미련하게도 치과에 대한 무서움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미루고 또 미루고 나서는 썩을 데로 썩어서 4차 치료까지 받으면서 충치치료를 했어야 했다.


 나는 간호사 분에게 여러 번 물어보았다.

"요즘도... 마취하는 데 많이 아파요?"

 그렇게 물었고,

"아뇨. 요즘에는 마취하는 거 아프지 않아요."라고 말해주실 줄 알았다. 돌아오는 답은 "아프실 수도 있어요."였다.

 나는 걱정스럽게 의자에 누웠고 마취하겠다는 말과 함께 잔뜩 긴장했다.

'대체 언제 주사를 놓는 걸까 하면서.'

 하지만 갑자기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자 이제 충치 치료 들어갈게요."

 이미 마취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뭔가 입안에 갖다 대는 것을 느꼈지만 그게 마취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치아의 신경치료까지 했는데 통증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에 신비롭기까지 했었다.


 마치 그동안 치과의 치료가 아플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기피했던 나 자신이 바보 같을 정도로 말이다.


 나에겐 충치가 총 2개가 있었고, 하나는 한 번의 치료에 의료보험을 적용하여 8천 원 정도의 치료비가 나올 정도의 진료를 받았고, 다른 하나는 치과에 가기 싫어서 계속 썩혀 두어 큰 공사를 하게 되어 몇 십만 원 치의 진료비가 나왔다.

치료받는 게 무섭다는 이유 때문에 미련하게 치료를 미루다가 50만 원 치 치료비를 감당해야 했다.


 정말이지 나는 정신머리 없는 놈이었다.

 항상 정신이라는 놈은 이렇게 세게 맞아야만 제정신을 차린다. 아마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치과를 찾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영수증을 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미룬다고 내가 할 일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미루면 미룰수록 수배 수십 배로 돌아올 수 있는 법이다. 결국 해야 할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돌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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