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Feb 26. 2020

사람은 역시 꽃이 지고서야 봄이 지나간 걸 안다.

그 어떤것도 그대로 멈춰있지 않아.


 저는 요리사이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의 저자 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기는 어색하기에 '저자'라고 표현하지요.


 저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소설가를 마냥 꿈꾸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장래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죠.

 그런 저는 이제 글을 쓰며 책 한 권도 내게 되었고, 맛있는 걸 만드는 요리사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요리사의 일을 하면서 그 일상들 속에서 나온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글을 쓰곤 했죠.




 제가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계기가 잡힌 건 군인 시절이었어요.

 저는 알바도 관련 대학교도 음식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래서인지 군대에서는 저에게 '취사병'이라는 특기를 주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조리병이죠. 하지만 받은 직책은, 간부 취사병입니다. 네, 간부들의 밥을 챙기는 병사죠.


 저는 투스타까지의 간부들의 식사를 챙긴 적이 있습니다. 미군이 와서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문 편입니다. 평소에는 대령급의 식사를 자주 챙겼죠. 그 외에는 다른 간부들을 위해서 궂은일을 하곤 했습니다. 

 간부들이 축구대회를 하니까 쉬는 시간에 먹으라고 어묵 꽂이를 만들어서 보내주기도 하고, 한 명 한 명 라면을 끓여다 주기도 하며, 마냥 전문적인 일을 하는 게 아니었죠.


 그중에 저는 상병. 즉 1년이 넘어서도 제 밑에 후임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더군다가 제가 막 들어온 신병 때에는 선임들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제가 요리를 다 하고 세팅도 다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까지 하며 모든 일의 75% 이상은 제가 맡았었죠.


 그렇게 버티다가 상병을 달고 한 두 달이 지나 후임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후임은 신병이 아니었어요. 이미 다른 일을 하다가 온 일병이었죠.

 그런 경우의 이유는 대부분 이러합니다.

 자기가 속해있는 부대에서 적응을 못하거나 문제 있는 병사이기 때문이기에 저의 밑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느낀것도 있습니다.

 그런 병사를 이쪽으로 보낸다는 것은 이 소속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말이죠.



 그 후임은 표정에서 매번 불만 투성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에게 많은 일이 부담되어 있는데 그걸 덜어주니 얼굴에는 불만을 표출하려고 했고, 정작 자기가 맡은 일을 하고 싶어서 그걸 넘겨주려고 하니 그게 또 생각보다 별로였는지 싫은 티를 내곤 했습니다.

 이 녀석이 왜 여기로, 군대식 용어로 '짬처리'를 했는지, 왜 적응을 하지 못했는지 알겠더군요.

 계급은 일병이며 여기에 와서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막내가 상병 같은 대우를 받고 싶은 그런 경우였습니다.


 저는 결국 참으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또 혼자서 해야 했거든요.

 

 그래도 제가 잘해주면, 이 녀석 또한 내 마음을 알아서 그만큼 보답을 해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PX가서 맛있는 것을 사주기도 하며, 내일 미뤄도 되는 일을 일부러 만들어주며 더 쉴 수 있게 해주고, 일부러 안하는 농담까지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친해지고 배려를 해준다면 분명 조금이라도 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전역하기 한 달 하고도 2주가 남았을 무렵이었습니다. 대부분 그 녀석도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저는 저 나름대로 편해질 수 있었죠. 하지만 오히려 저에 대한 대우가 바뀌더군요.


 저는 이제 곧 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녀석은 예전에는 불만을 표정에서 지우지 못한 것을 이제는 표출을 하곤 했습니다. '하곤'이 아니라 그냥 했죠.

'이제 갈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마라'라는 식으로 말이죠.


 저는 그 자리에서 그 녀석에게 온갖 욕을 다 박았습니다. 제가 전역하고 들어올 신병도 그 옆에 있었죠. 

"너는 분명 네 말년에 네가 한 짓 그대로 돌려받을 거다 XXX야!"


 그리고 저는 그 이후로 간부 취사장에 출근하지 않았고, 비공식적으로 보직이 조교였던 동기들과 같이 일과를 보냈는데, 말년 병장이었기에 아무런 터치도 없었고 자유로웠기에 생각보다 말년을 재미있게 보내고 전역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지 않아, 저는 사용하지도 않던 카카오 스토리에 쪽지가 몇 개 와 있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임 녀석이 저에게 사과의 쪽지를 보냈더라고요.


 제가 전역하고 그 녀석은 말 그대로 고삐 풀린 말 마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분명 눈엣가시 같은 제가 사라졌으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제어해 줄 사람이 없었던 거겠죠. 다른 후임들과 교류를 하려고 하지 않았고, 취사장 안은 완전히 자기 것인 마냥 취했습니다.

 그 사실을 남아 있던 다른 후임에게서 전해 듣게 되었죠.


 일을 하지 않는 근무태만에,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허락 없이 취사장에 들어와 휴대폰을 몰래 사용하거나 간부들이 내는 회비로 산 물품들을 마음대로 쓰곤 했죠. 그 외에도 후임들에게 부조리를 한 결과 원래 있던 부대로 다시 쫓겨나 다시 시작한 만큼 막내의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직 병장도 되기 전에 말이죠. 그리고 병장이 되어서 다시 돌아간 결과 그쪽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취급은 이등병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녀석이 전역하기 얼마 남지 않은 날, 그제야 저에게 사과를 한다고 쪽지를 보냈습니다.

 그때 그렇게 말한걸 이제야 깨달았다고 말이죠. 미안하다면서.

 사과하고 싶고 다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내용을 포함해서 말이죠.

 저는 답해주지 않았습니다.



 사랑 이야기에는 그런 말이 있다는 걸 기억합니다.

 벚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이죠.

 소중함을 잃고 나서야 소중한 게 뭐였는지 깨닫는, 그런 말이죠.

 벚꽃이 진다고 해서 봄이 지나간 것은 아니었을텐데 말이죠. 그만큼 한참 타이밍이 지나고 나서야 후회를 얻고 마는 거겠죠.

 뭐든지 그런 것 같아요. 사랑 이야기 속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인간관계에서는, 인간관계가 형성된다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당연하게 여기고 그게 꽃인지도 모르고 봄인지도 모르고, 꽃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후회를 하곤 하죠.


 그런 경우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소중함이란 건 익숙함과 당연함에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래서 익숙함과 당연함을 싫어합니다. 

 당연함을 취하게 되면 게을러지기도 하며 스스로의 태도 자체에 문제가 생겨 나태해지기도 하며, 익숙함에 속게 되면 옆에 있는 것을 놓치게 되니까요.


 여러분도 잊지 말아요.






독자님들. 코로나 조심하셔야 해요!

언제나 건강하세요.


글쓴이(우연양)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9xwy.yang/



안녕하세요. 글쓴이 우연양이라고 합니다. ^^!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 연재되었던 '사랑할 때와 사랑하고플 때'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으로 책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

브런치의 추천작품으로서, 또 연재되기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던 이야기가 책으로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너무 기쁘네요.

사랑을 좀 더 소중히 여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리겠습니다.

단순한 연인들 간의 사랑이 아닌 '사랑'이라는 그 자체를 주제로 삼은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많은 분에게 다가가 많은 사랑을 받을 책이 되길 바라며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관심 부탁드려요.^^



그리고 코로나도 조심히 하시고 건강하시길!


알라딘

예스 24

교보문고



작가의 이전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만큼 어려운 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