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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un 10. 2020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걸까



 나는 요식업 쪽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취사병이 되었다.

 거기에다가 간부 취사병이라는 꽤나 특수 보직을 맡게 되었었는데, 그로 인해서 나는 '분대장'을 맡게 될 조건에서 꽤나 멀어져 있었던 편이었다. 간부 취사장이라는 소속 대대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에서 근무를 하는 '특수지역 근무자'로 분류되기에 신경 써줘야 하는 다른 분대원들을 살필 여건이 마땅치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분대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다른 분대원들을 살필 여건이 어려운 내가 맡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할 정도로.

 회사로 따지자면 프로젝트의 팀장님이 다른 부서에 속해있다고 할 수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군대는 그 환경에 맞게 나 자신도 바꿔서 적응을 해야 하는 곳이다.

 사회에서는 자신과 맞지 않은 사람과는 만나지 않고 어울리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군대에서는 자신과 맞지도 않는 사람들을 억지로 모아둔 곳이며, 억지로 부대끼며 지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성격만 내세우면 썩 좋은 군생활을 보내긴 어렵다.

 나의 군생활에서는 후임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키곤 했는데, 그 발생 원인은 "밖에서는 내가 좋아하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는데, 여기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면서 그런 환경에 자신이 맞춰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그러기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제 적응해야 할 일병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분대장이나 상병의 지시엔 따르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잘 굴러가야 할 톱니바퀴들 사이에 '끼익 끼익'거리게 만들 엉터리 톱니바퀴가 들어가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후임은 일병이 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다른 이등병들 앞에서 혼을 냈다고 반항심을 세우기도 했고(심지어 그 당시 그 일병보다 선임을 혼내기도 했다.), 인사과의 행정병이라는 이유로 몇 개월 동안 휴가를 나가지도 못한 후임병의 휴가를 취소시키고 자신의 휴가 일정을 집어넣기도 했었다.


 그런 면모가 있었기에 그 선임병도 그렇고 중대장도 그렇고 이런 의문을 내었다.

"과연 이 녀석이 분대장을 맡게 된다면 그런 점을 고치고 잘해나갈까?"

 그 의문에 긍정적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더 악화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대장의 자리가 그 녀석을 바꾸어 놓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직책에 오르게 되면 그 중책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억지로 자리에 앉히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확률을 계산하기보다는, 사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을 앉히는 게 더 개념적이다.



 그렇게 나는 녹색 견장을 이어받고 단순한 취사병이 아닌 간부 취사병이 분대장이 되었다는 이례적인 결과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역시 내가 맡은 직무에 대한 일을 진행하면서 다른 분대원들을 살피고 잘 이끌어야 한다는 직책을 동시에 이끈다는 건 만만치 않는 일이었다. 특수지역 근무자로 소속되어 있는 만큼 나의 경우엔 분대가 두 개에 중복으로 소속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버거운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녹색 견장을 때어내는 것은 대대장의 지시도 중대장의 지시도 아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한 나의 결심 때문이었다.


 그때는 이미 후임 분대장이 누가 될지 예정은 되어 있었고 나도 말년을 준비해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분대장을 내려놓기 이전에 한 사건이 터졌는데, 개인주의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후임이 있었다. 그 후임의 성향 때문에 다른 선후임간의 관계는 매우 서먹서먹한 편이었으며 융통성이 없었기에 서로 힘이 되어줄 관계가 없었다. 그렇기에 간부들에게 밉상을 받기엔 딱 좋았고, 다른 후임들이나 선임들에게도 조리돌림을 받기에도 딱 좋았다. 결국엔 후임들의 소원수리를 계기로 딱히 징계를 받아야 할 명목이 없었음에도 그 담당 부사관이 어떻게든 징계를 먹이려고 소원수리를 과대 포장했다.

 그 사실을 안 날에는 내가 휴가를 나가야 하는 당일이었다. 나는 오전 9시가 되었음에도 휴가를 나가지 않았고 중대장에게 계속 항의를 했고 그 모습을 본 대대장은 왜 휴가를 나가지 않냐며 지시 불이행을 하고 있다며 경고를 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중대장에게 딱 하나만 부탁했다.

"2박 3일 동안 어떻게든 막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당연히 이제 막 중위가 된 중대장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노력은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자리가 있는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배신하지 않았다.

 그 중위가 맡은 본부중대장이라는 자리는 힘도 없는 직책이었으며, 그 사람 자체도 끈기 없고 능력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걸맞게 그 사람도 바뀌지 않았었다. 모두가 비웃음을 사던 자리였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사람이 앉은 거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중대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뭘 어찌하겠냐."

 노력이라곤 해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그런 말투였다.

 그 날에 나는 지휘통제실에서 직속상관에게 거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를 열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충분히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다른 간부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중대장한테 크게 소리치고 어깨에 달려있는 녹색 견장을 때어버렸다.

 그리고 끝까지 그 중대장은 내가 단순히 "삐친 거"라고 생각하며 웃어대기도 했었다.




 전역을 하고 나서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었다. 아마 전역 후 6개월은 훨씬 지나고 나서였던 것 같았다. 그 전화는 모르는 전화번호의 전화번호였는데, 휴대폰의 번호라서 누구일까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때 그렇게 전출을 가버린 후임의 전화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ㅇㅇㅇ병장님."

"미친놈. 뭔 병장님이야."

 나는 그 후임에게 군대식 말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후임은 나에겐 그게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전화는 감사의 전화였다.

 군대 생활을 할 땐 나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도 없었고 안부인사를 할 수도 없었기에 (당시에 나는 sns에 흥미를 두지 않았다) 전역 후에 연락처를 알아보고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전출을 가고 나서, 병장님 생각 많이 했었습니다. 많은 조언도 해주고 잘 살펴주었었는데, 그렇게 가버리게 되어서 죄송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나야말로 아무것도 못해줬는데, 분대장인데 그때 그렇게 휴가만 나가버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휴가를 나가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발악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지 결과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군대란 결국 위에서 내리는 지시가 전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전화를 한 이유를 그 녀석은 말했다.

"그래도. 저는 병장님이 좋았습니다. 애초에 분대장이 되지 않았더라도 저희한테 그렇게 신경 써줬을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분대장이라고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이 뒤바뀌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감동을 받게 하는 말을 그렇게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계속 기억에 남았다.

"저에겐 병장님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떠나가게 돼서 죄송했었습니다. 제가 전출을 간 곳에서는 병장님 같은 사람은 없었거든요. 그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말하는 '자리'라는 것은 딱히 어떠한 직책이나 중책을 가리키지 않더라도, 다양한 부분에서 비유하면서 가리킬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없게 되면 '빈자리'가 느껴진다고 말하는 법이고,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비슷한 사람을 찾곤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 후임이 그렇게 말해주고 기억해줬다는 것에 기뻐했고 감동했다. 자신의 마음속에 그런 빈자리가 생길 정도의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하고 기뻤다.

 누구나가 자신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을 정도로 고마운 사람이나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자신 각자에 어떠한 '자리'로서 기억을 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빈자리가 느껴질 만큼 그리워진다는 건 그만큼 자신에게 영향이 있었던 사람일 것이다.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그 어떠한 관계로든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을 떠올리곤 한다.


 사람은 그렇게 자리를 만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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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연인들간의 사랑이 아닌 '사랑'이라는 그 자체를 주제로 삼은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많은 분에게 다가가 많은 사랑을 받을 책이 되길 바라며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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