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에게나 도망칠 곳은 필요하다.

드라이카레 만드는 법

by 우연양


드라이 카레 주 재료
카레 가루 혹은 고형 카레
달걀노른자.
방울토마토 10알
버터 50g
다진 돼지고기 200g
양파 1개
당근과 셀러리 100g
다진 마늘 1숟가락




"사람은 누구나 지치기 마련이야. 그렇기에 휴식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는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에 지치고 힘들어가던 나에게 말했다.

"도망칠 곳이 필요해."

"도망칠 곳? 그게 뭐야?"

"말 그대로야.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도 않고 스트레스에서 도망갈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곳이라니. 여행을 가라는 건가?"

"꼭 장소일 필요는 없어. 그냥 몸과 마음을 어디론가 맡길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반대로 나는 물었다.

"그럼 넌 지치고 힘들면 그 도망칠 곳이 어딘데?"

"나? 버스를 타는 거지!"

그는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를 목표를 정해서 출사를 하지는 않고 동아리를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버스를 탄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달리면서 버스 안에서 앉아 보기 좋은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장소일 필요는 없다고 그는 다시 말했다.

"그 순간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이야."

나는 미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힐링을 할 수 있는 곳 말이지?"



그렇게 나는 내가 스트레스를 제일 먼저 풀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바로 떠올리는 건 하나였다.

그건 맛있는 것을 먹는 것.

하지만 밖에서 사 먹는 건 그다지 '도망칠 곳'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있는 자취방의 주방은 꽤나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게 좋지만, 맛있는 것을 만드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나의 '도망칠 곳'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옛날부터 아빠가 자주 만들어주었던 요리를 만들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빠는 줄곧 나와 동생에게 카레를 만들어주곤 했다. 하지만 그 카레는 참으로 묘한 카레들이었다.

어떤 때에는 수프처럼 떠먹어야 할 정도로 물근 카레도 있었고, 흔히 먹는 일반 카레도 있었지만, 아예 수분 자체가 없는 것 같은 드라이 카레도 있었다. 그중에서 난 드라이 카레를 정말 좋아했다.

진하게 먹고 쓸데없이 비벼 먹을 필요 없이 초밥처럼 떠먹는대로 딸려오는 카레 고명들이 먹기도 편했다.




첫째. 우선 재료 손질부터 해두는 게 편하다. 토마토는 껍질을 쉽게 벗길 수 있을 정도로 살짝 데쳐야 한다. 그리고 양파도 아주 작은 큐브 형태로 다져준다. 당근도 셀러리도. 데친 토마토 또한 껍질을 벗겨서 양파와 비슷한 크기 혹은 좀 더 크게 썰어둔다.

둘째. 그리고 식용유를 펜에 두른다. 오일은 아주 조금이면 충분한데 돼지고기를 먼저 볶으면서 기름을 빼낼 것이다. 돼지고기는 꽤나 노릇하게 볶아내는데, 돼지고기의 지방이 많을수록 기름이 많이 나올 것이고 더 풍미롭게 볶아질 거다.

셋째. 그리고 다 볶아내면 돼지고기를 펜에서 덜어낸다. 너무 볶아내서 기름을 내면 고기 자체가 퍽퍽 해질 테니. 그리고 펜에 남은 기름 위에 다진 마늘과 미리 썰어놓은 야채들을 볶아내자! 버터와 함께! 어느 정도 볶는 게 좋냐고? 은은한 불에 천천히 오래 볶을수록 야채는 맛이 날 것이다.

"이건 드라이 카레니까. 건더기가 맛있어야 맛있는 물 없는 카레니까!"

아빠는 그렇게 말해주며 나에게 알려준 레시피였다.

야채는 볶으면 볶을수록 맛있어지지만, 야채에는 한정된 수분이 있다. 우리는 아무리 물이 없는 드라이 카레라고 할지라도, 카레를 섞고 뭉치게 할 최소한의 수분은 역시 필요하다.

넷째. 채소들이 물러지고 고기들도 잘 어우러져 볶아지면 카레가루를 천천히 뿌리면서 혹은 고형 카레를 넣고 덩어리가 따로 남지 않게 약한 불에서 잘 섞어준다. 도저히 안 풀리겠다 싶으면 물은 아주 소량 넣어줘도 괜찮다. 그만큼 질퍽하고 질퍽하도록 계속 약한 불에 볶아줘도 충분하다.

카레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간단하니 카레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구나 쉽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

요리가 아주 즐거워질 수 있도록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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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단무지 옅은 맛의 국

밥을 올린 뒤 그 위에 카레를 올려 숟가락으로 살짝 홈을 만들어준 뒤 노른자와 얇게 썰은 파를 얹혀주면, 이게 참 별미였다. 파스타로 치자면 볼로네제가 생각날 정도로 진한 야채와 고기의 맛이 느껴지고 그걸 어우르게 만드는 달걀노른자가 더욱 진하게 풍미를 혀에 남기는 게, 내가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었는지 몰랐다는 자신감을 끌어올린다.


"재미있네. 요리."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해주고 싶어 진다.

그러다보면 다른 요리도 해보고 싶어질 것 같았다.

그러다보면 맛있는 것을 먹고 즐거워질 것 같았다.

그러다보면 또다시 이렇게 요리를 하고 싶어 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내가 도망칠 곳은 바로 요리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

"그것 만큼 좋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겠지!"

나는 그렇게 반대편에 앉아줄 사람으로 누구를 초대할지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