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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Feb 04. 2018

#2. 장거리 연애 중, 다른 사람이 다가왔다

그와 중에 다가온,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시련.


사랑의 장애물 #2.
 몸이 멀어진 만큼 견뎌야 하는 것도 크다.
 장거리 연애



 님은 멀리 있는데,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이 다가왔다.

 멀리 있는 그 사람이 아닌, 가까운데 있는 다른 사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다면 축복이라고 하는데, 제일 힘든 순간에 그런 축복 아닌 축복이 다가왔다.



 장거리 연애는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시작한다. 

 지친다는 건 흔들리기 쉽고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 시기에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준다면, 장거리 연애의 큰 시련 중 하나, 제일 높은 허들이었다.

 그런 허들에 어떻게 점프를 해야 할까.

 아니 혹시 꼭 넘어야 하는 걸까. 하며 점프하기를 주저하진 않을까.




 흔들림.

 장거리 연애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건 외롭고 더 괴롭게 만들었다. 그런데 나의 옆에 있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니. 그 한순간에 두 가지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혼자 타지에서 버티고 있는 연인과 다가 온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건 결국, 난 멀리 있는 그 사람을 그리운 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와의 '사랑'만을 필요로 했던 게 아닐까.


 이미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에 대해 하루 종일 신경을 쓰고 있다면, 그건 분명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상태였다. 아주 사소하게라도 다가온 그 사람은 약했던 자신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뿌리는 뽑기도 어려울뿐더러, 깔끔하게 제거하기도 힘들다. 

 그 상태에서, 설령 다가온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애인을 만난다면, 그 애인이 자신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할까? 최소한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멀리 있는 연인은 바보가 아니다.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사랑하고 매번 대화할 때마다 변화를 자각하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선 긋기.

 반면에 상대방이 싫었다면, 설령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이라도 적당하게 선을 그으면서 밀어냈을 겁니다. 그러지 못했다는 건, 그 선 안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는 거죠.

 멀리 있는 애인 생각과 관심을 가질 시간에, 다가 온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는 건, 더 많이 생각한다는 건. 이미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 애매하게 선 안팎에 세워둔 그 사람을 만난다면, 마음을 진정시키더라도 다시 흔들리게 되기 마련이겠죠.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절대로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해선 안될 겁니다.

 정확하게는 냉정하고 확실하게 선택과 고백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선택이냐 하면, 다가온 그 사람을 다시 밀어내고 확실하게 마음을 정리하더라도, 멀리 있는 애인에게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어떤 힘겨운 싸움을 했는지, 애인 사이에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솔직함은 서로에게 더 강한 믿음을 주게 될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멀리 있는 애인이 바로 뛰어 오고 싶어 할 만큼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거고 사랑스러워하지 않을까요? 자신에게는 이렇게 강인하고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 되는 건데 말이죠.



 그러면 다른 선택, 다가온 사람을 받아들였을 때.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서로 믿고 기다리고 있는 만큼, 배신감은 클 테니까요. 그 책임은 그 사람이 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짊어져야 합니다. 함께 견뎌온 싸움에서 자신만 그 사람을 할퀴고 도망쳐 나오는 거니까요.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건, 그렇게 누군가를 내치고 상처를 줘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다가 온 사람을 받아들였다는 것에 대한 기준은 뭘까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연인과 할 수 있었던 것. 그 어떤 것을 할 수 있었다면, 이미 그 사람을 받아들인 겁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따로 친분이 있더라도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을 알았는데, 불편하지 않고 협박을 받지 않는 이상 연인과 함께 했던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을 합리화시키지 마세요. 서로 견디는 중이었습니다.

 

 고민의 시간을 짧아야 합니다.

 길면 길 수록 불리한 건 자신이고, 설령 정리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멀리 있는 연인에게 오해를 받기 쉬울 테니 말이죠. 어떤 시선에서는 멀리 있는 연인을 두고 어장 관리한다고 할 수도 있죠. 확실한 건 그건 오해가 아닙니다. 확실하게 해 주지 못하고 여기저기 발을 담근다는 것은 어장관리가 맞으니까요.


 그러니, 자신이 멀리 있는 연인에게 "힘들었기 때문에"라는 변명을 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혼자 싸우는 중이 아니라 서로, 함께 싸움에 견디는 중이었으니까요. 

 다시 말하지만, 혼자 싸우는 중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싸움을 하고 있어요.

 정말 혼자 답을 내기 어렵다면, 멀리 있는 연인에게 솔직하게 사실을 고하고 자신의 마음을 잡아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는 것에 애인이 실망할 수 있겠지만, 정말로 그 애인이 실망할 수 있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버틸 수 없어서 도와달라고 하는 일인데. 그러니 그 사람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사랑하고 싶을지.

 


 이런 상상은 하지 마세요. 설령 멀리 있는 연인이 다른 사람과 썸 탈지 모른다고.

 다시 말하지만, 혼자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가 싸움에 견디고 있는 겁니다. 서로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데, 자신이 힘들다고 합리화를 시키면 안 된다고 했죠.

 그런데.

 만약에 너도 누군가가 다가와 흔들린다면?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 자체가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는 겁니다.

 제일 치졸한 사고방식이며, 자신을 최악으로 만드는 결과물이 될 거예요.


 만약이라는 건 없어요.

 만약(IF)이라는 건, 실제로 없었던 일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거예요. 무엇하러 있지도 않았던 일에 의심을 일부러 해 가면서 연인과 싸울 생각을 하나요. 스스로가 연인에게 싸움을 거는 것, 즉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멀리 있어도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더 없는 행복이자 축복이에요.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지킬 가치는 충분히 있는 장거리 연애입니다. 서로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 서로가 얼마나 시련에 견뎌낼 수 있는지, 서로를 더 사랑할 수도 있지만, 반면에 이별을 하게 만들 수 있는 고난의 시간이죠.

 그 고난을 이겨낸다면, 두들겨진 강철이 단단하게 서로를 이어주는 사슬 끈이 되어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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