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지식>
시간이 흐르면서, 불을 다루고 조절하는 인간의 능력은 점점 커졌다. 한마디로 불을 이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문명사회를 지탱하는 많은 기본적인 영역이 불에서 비롯되는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화에 의존한다. 금속의 제련과 단조와 주조, 유리 제작, 소금 정제, 비누 만들기, 어떤 물질을 공기 중에서 태워 휘발 성분을 없애고 재로 만드는 하소(煆燒), 불에 구운 벽돌과 기와와 토관, 직물 표백, 빵 굽기, 맥주 양조와 술의 증류까지 열이 개입되지 않은 것이 없다.
내연기관의 피스톤에 갇힌 불이 순간적으로 폭발하며 승용차와 트럭에 동력을 공급한다. 또 우리가 집에서 전등불 스위치를 올릴 때마다, 먼 곳에서 붙여진 불이 만들어낸 에너지가 전선을 통해 우리 집의 전구까지 전해지는 것이지만, 역시 불을 사용한다. 현대의 기술 문명도 우리 조상들이 처음으로 정착해서 화로 옆에서 요리할 때만큼이나 불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열에너지 대부분은 화석연료(석유와 석탄과 천연가스)의 연소를 통해 전기의 형태로 직간접적으로 제공된다.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해준 주된 기술의 하나가 석탄으로부터 코크스를 얻어내서 앞에서 언급한 많은 공정, 특히 철광석을 제련해서 강철을 생산하는 공정에 적용한 것이다.
그 이후로 우리 문명은 소비한 만큼 재생해내는 지속 가능한 수단이 아니라, 지하에 매장된 화석연료 ― 화학적으로 변형된 식물에 수백만 년 동안 축적된 에너지 ― 의 일방적인 약탈에서 동력을 얻어 꾸준히 발전해왔다.
종말 후에 주유소나 가스 저장고에 남겨진 재고가 바닥나면, 기본적인 상태로 돌아간 사회가 열에너지의 수요를 맞추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쉽게 채굴할 수 있는 고품질의 화석연료는 지금도 이미 거의 고갈된 상황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던 에너지의 보고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이제 얕은 유정에는 석유가 남아 있지 않고, 석탄을 캐는 광부들은 더 깊이, 지구의 배꼽까지 파고들어야 할 실정이다. 따라서 배수와 환기 및 붕괴에 대한 대비책에 한층 정교한 기술이 요구된다.
거대한 석탄 매장지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에 매장된 석탄량도 5억 톤이 넘지만, 쉽게 채굴할 수 있는 매장지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종말 후에 운이 좋은 생존자들은 노천굴이 바로 옆에 있어 쉽게 석탄을 채굴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종말 후의 문명은 ‘녹색 에너지’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재앙 뒤로 처음 수십 년 동안 시골 지역과 버려진 도시에서는 숲이 형성된다. 따라서 소수로 이루어진 생존자 무리라도 나무가 빨리 자라도록 윗부분을 부지런히 잘라주면 땔감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또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는 잘려나가더라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돋아 5~10년 후에는 다시 잘라낼 수 있다.
따라서 1헥타르의 숲을 잘 관리하면 매년 평균 5~10톤의 목재를 얻을 수 있다. 집을 따뜻하게 만드는 벽난로 땔감으로는 통나무가 적합하지만, 오랜 재건 기간에는 여러 곳에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나무보다 훨씬 뜨거운 열을 발산하는 연료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숯을 만들던 과거의 방식을 되살려내야 한다.
숯은 석탄보다 많은 점에서 월등한 연료이며, 역사책에만 등장하는 연료가 결코 아니다. 예컨대 브라질은 풍부한 목재 자원을 지녔지만, 탄광은 거의 없는 편이다. 달리 말하면, 숲이 곳곳에서 다시 형성되는 종말 후의 세계와 무척 유사한 상황이다. 따라서 브라질은 세계에서 숯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이다. 숯은 선철을 만드는 용광로에 사용되고, 그 선철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수출되어 자동차나 주방용품의 재료인 강철로 만들어진다. 이런 숯 대부분이 잘 관리되는 숲으로부터 얻어진다는 점에서 ‘녹색 강철(Green steel)’의 탄생을 기대해봄 직하다.
공기 흐름을 제한해서 태우면 산소가 부족하므로 나무가 완전히 연소하지 않고 탄화되어 숯이 된다. 물을 비롯해 작고 가벼운 분자로 이루어져 쉽게 기체로 변하는 휘발성 물질들이 나무에서 밀려 나가면, 나무를 구성하는 착화합물(Complex compound)들이 열에 의해 분해된다. 즉, 나무가 열분해되며 거의 순수한 탄소로 이루어진 검은 덩어리를 남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숯은 수분을 완전히 상실하고 순전히 탄소 연료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원래의 나무보다 훨씬 뜨겁게 타오르며, 무게도 절반가량으로 줄어들고 부피도 작아 운반하기에 편리하다.
이처럼 산소의 유입을 제한해서 나무를 변형하는 데 사용된 전통적인 방법은 과거에 ‘석탄 상인(Collier)’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독점으로 사용하던 기술이었다. 중앙에 위로 열린 구멍 하나를 두고 사방에 통나무를 쌓은 후에 전체를 진흙이나 뗏장으로 덮는다. 위쪽 구멍으로 통나무 더미에 불을 붙인다. 불완전연소로 불꽃은 없이 서서히 타는 통나무 더미를 며칠 동안 자세히 관찰하며 관리한다.
하지만 커다랗게 판 웅덩이에 나무를 채우고 활활 태우기 시작한 후에 파형 철판으로 웅덩이를 덮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산소 유입을 차단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비슷한 결과를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다. 연기를 피우면 완전히 타게 한 후에 식힌다.
숯은 종말 후에 중요한 산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필요하며, 연소 잔류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연료로 자리 잡을 것이다. 도기와 벽돌, 유리와 금속 등을 만들 때 숯은 필요하다. 가령 당신이 있는 곳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탄전이 있다면 그 탄전은 열에너지의 완벽한 공급원이 될 것이다.
1에이커의 숲에서 구한 땔감으로 1년 동안 만들어낸 열에너지가 1톤의 석탄에서 생산된다. 석탄의 문제는 숯만큼 뜨겁게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저분하기도 해서, 석탄을 태운 열로 만든 상품들, 예컨대 빵이나 유리가 연기로 더럽혀질 수 있다. 유황 불순물이 정밀한 단조를 방해해서 강철이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석탄을 사용하는 요령은 석탄을 먼저 코크스로 만드는 것이며, 이 방법은 나무를 숯으로 만드는 방법과 유사하다. 산소 유입이 제한된 가마에 석탄을 넣고 가열함으로써 불순물과 휘발성 물질을 몰아내는 방법이다. 그런데 목재를 건류(乾溜 Dry distillation)할 때 생기는 부산물과 마찬가지로, 석탄 건류의 부산물들도 다양한 용도를 지니므로 응축해서 모아두어야 한다.
연소에서 빛도 만들어진다. 종말 뒤 재건을 모색하는 사회가 전력망을 회복하고 전구를 다시 발명할 때까지 생존자들은 등잔불과 촛불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식물성 기름과 동물성 지방은 고유한 화학적 특성 때문에 조절 가능한 연소의 에너지원으로 적합하다. 이런 화합물들의 구조적인 주된 특징은 길게 이어진 탄화수소 사슬이란 점이다.
요컨대 탄소 원자의 양옆에서 수소 원자들이 뭉툭한 애벌레 다리처럼 옆구리를 장식하며 긴 사슬을 이룬다. 에너지는 다른 원자들의 화학결합에 내포되기 때문에, 긴 사슬 탄화수소는 빗장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응축된 저장고라 할 수 있다. 연소하는 동안, 긴 사슬 탄화수소는 갈가리 찢어져서 모든 원자가 산소와 결합한다. 수소는 산소와 결합해서 H2O(물)를 형성하고, 탄화수소의 뼈대를 이루던 탄소는 파편처럼 조각나서 이산화탄소로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산화하는 동안 긴 지방 분자가 신속하게 분해되며 에너지를 연속적으로 방출하며, 그 에너지가 바로 촛불의 따뜻한 빛이다. 등잔은 뾰족한 주둥이가 달린 토기나 커다란 고둥 껍데기만큼이나 기초적인 기술일 수 있다. 아마나 골풀 같은 식물성 섬유로 만들어진 심지가 용기에서 빨아들인 액체 연료는 불꽃의 열기에 증발하고 연소한다.
파라핀 유(등유)는 1850년대부터 유리 램프에 주로 쓰인 액체 연료였고, 요즘에도 구름 위를 비행하는 여객기에 동력을 공급하는 연료로 쓰인다. 그러나 파라핀 유는 원유를 분별 증류해야 얻어지기 때문에, 현대 기술 문명이 붕괴한 후에는 생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유채 씨 유와 올리브유, 심지어 정제 버터(Clarified butter)의 일종인 기 (Ghee) 버터까지, 미끌미끌한 액체 연료는 충분하다.
초는 불꽃 주변에 촛농을 형성하며 녹을 때까지는 연료 자체가 단단한 고체이기 때문에 따로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초는 심지가 중간을 관통하는 원통형 고체 연료에 불과하다. 초가 태워지면 심지가 점점 드러나기 때문에 심지를 주기적으로 잘라내지 않으면 불꽃이 커지는 만큼 연기도 많이 난다. 이런 골칫거리를 단번에 해결한 혁신이 1825년에 등장했다. 심지를 가늘게 꼬아 납작한 띠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다. 심지는 자연스레 감겼고, 남는 부분은 불꽃에 태워졌다.
요즘의 초는 원유에서 추출한 파라핀 왁스로 만들어지며, 봉납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얻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동물성 지방을 녹여 정제하면 완벽한 초를 만들 수 있다. 고기에서 잘라낸 기름 조각들을 소금물에 넣고 끓이면 지방이 표면에 뜨며 딱딱한 층을 이룬다. 이 층을 국자로 걷어내면 초의 재료가 된다. 돼지 지방으로 만든 초는 악취와 연기가 풍기지만, 우지(쇠기름)나 양의 지방으로 만든 초는 그런대로 쓸 만하다.
녹인 우지를 틀에 붓거나, 뜨겁게 끓인 우지에 일렬로 심지를 떨어뜨린 다음 식히면 상온에서 초가 완성된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 초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