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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4. 2016

10.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와 다이아몬드 (마지막 회)

<글로벌 금융 탐방기>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은 서기 70년경에 로마 정부에 반대하는 독립전쟁을 일으켰지만 결국 패배하여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고, 일명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서쪽 벽(West wall)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과격 독립 운동가였던 열심당(Zealot당)의 당원들은 패배에 불복하고(게임 ‘스타크래프트’의 Zealot은 바로 Zealot당에서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1,000명 vs 15,000명의 엄청난 열세 속에서도 난공불락 천혜의 요새 마사다(Masada) 성에서 끝까지 항전합니다.

     
하지만 1년여의 세월이 흐를수록 전세는 점점 불리해져 결국 함락되고 마는데요. 죽어도 로마에 굴복하지 못하겠다면서 놀랍게도 함락 직전에 전원이 자살해 버립니다. 유대교에서는 자살을 금하기에 먼저 부인과 자녀를 남편이 살해하고, 제비를 뽑아 10명만 남기고 모든 남자를 다 죽이고 난 다음 남은 10명이 제비를 뽑아 한 명이 9명을 죽이고, 마지막에 한 사람만 자살하는 방식이었지요. 그 와중에 숨어 있다 살아남은 여자 5명과 노파 2명이 로마군에게 성에서 벌어진 상황을 전했고, 이 이야기를 듣고 로마군은
승리했지만 오히려 겁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처절한 마사다 성의 결사항전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지금도 이스라엘의 군인은 훈련소에서 퇴소할 때 마사다 요새에 가서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를 외치지요. 마사다 요새 함락 이후 유대인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는데요. 이후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Diaspora,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문명이었던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은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해서 많은 박해를 받았고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는데요. 심지어 이들 덕분에 풍요로워진 나라들조차도 갑작스럽게 유대인을 추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492년의 알람브라 칙령으로 이슬람 세력을 800년 만에 스페인 밖으로 쫓아낸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유대인에게 4개월 안에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떠나라며 추방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대인을 추방하면서 재산 반출을 금지했는데요. 이는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자신의 부하들에게 줄 돈을 유대인에게 빼앗아서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피해를 본 이후로 유대인은 처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생선과 같이 쉽게 썩기에 바로 팔아서 재고를 쌓지 않는 상품, 혹은 언제든지 몸에 지니고 피신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금속을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은 유대인의 주된 활동 무대가 되었고, 지금도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산업이지요.
    

 
또한, 중세 기독교에서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죄라고 여겼는데요. (레위기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주지 말라’를 그 근거로 삼았습니다) 사회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은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기에 일찍부터 금융업에 종사하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유대인은 신명기의 ‘타인에게 이자를 받을지라도 형제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의 구절을 통해 유대인은 기독교도와 형제가 아니기에 이자를 받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슬람에서는 지금까지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며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권에서는 수쿠크(Sukuk)라는 채권을 발행하는데요. 이는 투자자에게 이자 대신에 투자를 통한 수익금을 나눠주는 방식을 취합니다. 예를 들면 돈을 빌리는 회사가(수쿠크를 발행하는 회사) 자신 소유의 공장이나 땅을 투자자에게(수쿠크를 매수하는 투자자) 팔고, 회사는 공장과 땅을 사용하는 임차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는 이자가 아닌 수익금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기 시에는 돈을 빌린 회사가 다시 돈을 갚아서 공장이나 땅을 투자자에게서 사오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이야기로 돌아와서 19세기 말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다시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온주의가 퍼져나가게 되는데요. 이 주장에 힘을 받아 점점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오스만 튀르크를 물리치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했던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곳을 나눠서 여러 나라에 나눠줄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는데요. 유대인에게 자행했던 나치의 만행이 알려지면서 유대인에 대한 동정 여론과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를 놓고 논의가 한창일 때 우리나라로 따지면 독립군 대장이었던 벤 구리온(Ben Gurion) 이 이스라엘을 수립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00년 만에 이스라엘이 다시 건국된 것이죠.
     
하지만 아랍 국가들은 왜 남의 땅에 이주해서 이스라엘을 건국하느냐며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독립 선언한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였지요. 물론 이스라엘은 건국 선언 전부터 훈련받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병력의 숫자나 화력 면에서 아랍 국가와는 게임이 안 되는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며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나치의 끔찍한 만행을 겪기도 해서 나라 없는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이 독립의 기회를 놓친다면 자신들은 다시 세계를 떠돌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결국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독립전쟁의 승리 후에도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와 여러 번 중동전쟁을 치렀는데요. 그때마다 승리하여 지금은 중동 국가들도 이스라엘과는 전쟁해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요르단과 평화조약을 체결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분쟁과 갈등의 씨앗은 남아 있는 상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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