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시티즌>
지식경제에서 ‘공장들’은 정확히 얼마나 많이 바뀌었나? 기계화 이후 일터를 합리화하려는 그다음 시도가 바로 자동화이다. 산업계 지도자들은 자동화가 노조의 힘을 약화해주길 바랐고, 군사 이론가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생산력을 앞지르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또한 노동자들의 일을 단순작업화하고 그들의 힘을 박탈한다는 생각을 좋아했다. 노동자들은 모두 잠재적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하지만 복잡한 기계들은 똑똑한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1950년대 공군이 보유한 수치 제어식 금속공작 기계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자동화는 정보처리능력의 결여로 초기부터 한계에 도달했다. 그래서 실제로 생산은 증가했지만, 자동화는 완성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상당한 힘을 그대로 가질 수 있었다.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던 자동화는 컴퓨터화에 밀려난 상태이다. 종이 없는 사무실의 신화는 컴퓨터 인쇄물 더미에 묻혀버렸지만, 컴퓨터화는 노동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모시켰다. 이로써 프롤레타리아가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지식 노동자 부류가 부상하고, 정보자원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회사들은 그들을 ‘인포메이트’하는 데 활용했다.
‘인포메이팅(Informating)’은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뛰어난 사회학자 쇼사나 주보프(Shoshana Zuboff)의 신조어로, 컴퓨터화를 통해 회사 자료의 모든 측면을 지렛대 삼을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보프는 품질관리 개선, 노동효율 극대화 그리고 시장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강조한다. 인포메이팅은 또한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분석하고 그들의 시간과 생산공정과의 통합을 세세하게 관리할 훌륭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통합을 지칭하는 이름은 많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회사문화의 의식적인 창조라고도 부른다. 휴렛팩커드의 ‘HP Way’가 좋은 예이다. 사이보그화를 더욱 공개적으로 추구하는 일본에서는 ‘사회공학’과 ‘인간공학’을 이야기하면서, 포스트모던적 협력의 목표인 노동자와 산업 시스템의 근본적인 통합을 드러낸다.
학계보다는 주로 산업계가 다른 생명체들을 사이보그로 개조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관(管)을 탐색하는 바퀴벌레, 유전자 연구용 생쥐, 파밍(Pharming)용 복제 양, 혹은 기계에 밀착된 노동자들도 그에 해당한다. 그래도 아직은 사이보그 연구의 대부분 영역에서 정부가 산업계보다 앞서 있으며, 이런 현황을 주도한 것은 군사기술의 지속적인 혁명과 ‘기술적 기습(Technological surprise, 신기술이나 신무기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불의의 공격을 가하는 상황)’의 공포이다. 경제 경쟁을 ‘다른 수단을 통한 전쟁’으로 간주하는 정부가 비즈니스 차원의 사이보그적 혁신을 지원하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경쟁의 채찍이 회사들을 한층 더 몰아붙이는 상황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제 경쟁을 진짜 전쟁처럼 수행한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경쟁자들을 제거하거나 흡수하기 위해 모든 강압적인 힘을 자기들 뜻대로 총동원한다. 이 회사는 한때 최상급이었던 자사 제품들의 품질이 하락했음에도 더욱 효율적으로 이런 일들을 해내면서, 단기적으로는 좋은 것보다 큰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최근 들어서 빌 게이츠의 오만방자함과 어리석음, 더욱 거칠어진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업상 관행에 정부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경쟁사들의 압력이 가해졌다. 하지만 이 회사는 여전히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지배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천 년의 IBM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더글러스 커플랜드(Douglas Coupland)가 컴퓨터 일기체로 쓴 소설 《기술노예들(Microserfs)》이 입증한 바와 같이 이미 시대정신 일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곳을 증오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 사람도 그렇다. 그래서 그와 친구들은 전형적인 한량 같은 삶에 대한 환상을 꿈꾸며 실리콘밸리로 떠나 신생 회사를 세우고 부자가 된다. 이 책은 마이크로소프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과 컴퓨터산업 일반에 관한 통찰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특히 더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가 보여준 직관적인 현실 파악들이 사이보그화와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초반에 주인공은 기계가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이 담긴 꿈을 거듭 반복하여 묘사한다. 가벼운 일사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그는 혈병(Blood clot)과 전부터 앓아왔던 마비증상의 원인을 검사하던 중 문득 자신이 방사성 동위원소를 주사하고, 단층 X선 투시 장치 안에 집어넣어진 문자 그대로 ‘몸-기계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그러니까 이게 바로 기계가 된다는 느낌이로군.”이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호기심이 생겼다. 아마도 기계들은 죽음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결론을 내린다. “짧은 몇 분간이 나마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 기쁘게 느껴졌다.” 기계가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언뜻 봐선 전형적인 바보의 환상 같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단지 기계가 아니라 성감대와 온갖 멋진 특징들을 지닌, 살아 있는 시스템인 자신의 진짜 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결심한다.
사이보그의 두 번째 출현은 이 소설의 끝에 나온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뇌출혈을 일으켜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 알려진다. 하지만 한 프로그래머의 도움으로 그녀는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었고, 그녀에게 아직 의식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야기는 소설 속 모든 사람이 울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체험하는 감상적인 결말로 끝맺는다.
“칼라가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고, 그러자 나도 울기 시작했다. 아빠도 그리고 그다음에는 젠장, 모두가 울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매킨토시의 파란 불빛을 발산하는 부분 여자이자 부분 기계였다.”
그리하여 아들은 자기 몸과 기계류의 동일시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인간성을 찾고, 엄마는 부분 기계인 사이보그가 됨으로써 자신의 인간성을 찾는다. 사이보그화가 새로운 지식 노동자들에게 《기술 노예들》이 제안하는 간단한 답변을 제공하진 않지만,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이보그화를 제외한 새로운 노동자들의 또 다른 결정적인 양상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끝이 없는 업그레이드 그리고 이전에는 없던 분야와 과학 전체를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늘 흡수해서 써먹어야 할 컴퓨터 처리정보가 넘치고 있으며, 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평생학습의 필요성을 해소하려면 컴퓨터에 의존하는 새로운 유형의 교육이 요구된다. 이것은 우리의 무지를 해결하기 위한 인공장구적인 방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