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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8. 2016

06. 애플은 아직 메탈릭 글래스를 적용할 수 없다.

<빅 픽처 2017>

일반 금속으로 긁어도 잘 긁히지 않고 비교적 가벼우며, 일반 금속보다 몇 배가량 강도가 높지만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플라스틱과 같이 성형할 수 있는 신소재가 있다. 바로 메탈릭 글래스(Metallic glass)이다. 이 소재는 1960년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두웨즈(Duwez) 교수팀이 금과 실리콘을 섞어 처음 합성하였고, 차세대 구조 재료, 전자제품 외장재, 고기능성 스포츠용품, 특수 항공 부품 등으로 쓰일 것이라 기대되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 금속 및 합금은 구성하는 원자들이 규칙적인 배열을 갖는 결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원자들이 넓은 영역에서 완벽하게 규칙적인 배열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일부에서 디스로케이션(Dislocation), 결정 입계(Grain boundary) 등 원자 배열상의 결함들이 나타난다. 이 결함들은 보통 금속이나 합금의 강도를 낮추고 부식성을 높인다. 일반 금속이나 합금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액체가 되면 원자의 규칙적 배열은 깨지고 비규칙적 구조를 갖게 된다. 이를 충분히 빠른 속도로 냉각하면 상온에서 비규칙적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데, 이 상태의 금속이나 합금을 메탈릭 글래스라 한다.
   

일반 금속과 메탈릭 글래스의 구조. 메탈릭 글래스는 일반 금속이나 합금과 달리 전체적인 원자 구조가 동일하게 비규칙적이어서 기계적 성질이 좋고 부식이 잘 되지 않는다.

  
메탈릭 글래스는 일반 금속이나 합금과 달리 결함이 없다. 즉 전체적인 원자 구조가 같이 비규칙적이다. 따라서 일반 금속보다 기계적 성질이 훨씬 좋고 부식이 잘 안 된다. 4~5가지의 원소를 섞어 현재 상용화된 메탈릭 글래스들은 스테인리스스틸이나 티타늄보다 2배, 알루미늄보다 4배 이상 경도가 높고, 일반 합금들보다 적어도 3배가량 탄성이 높다. 
     
메탈릭 글래스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일반 금속의 녹는점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과냉각 액체 상태로 상변화가 된다는 점이다. 금속을 높은 온도에서 녹여 가공할 필요 없이 낮은 온도에서 플라스틱처럼 가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메탈릭 글래스는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플라스틱처럼 가공할 수 있는 고강도 합금’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특출난 장점이 있는 신소재는 잘 긁히지 않는 소재, 가볍고 강도 높은 구조 재료, 낮은 온도에서 복잡한 모양으로 성형할 수 있는 소재 등으로 불리며 세간의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미국의 애플은 이 기술에 주목하여 캘리포니아 공과대 소속 연구팀이 창업한 리퀴드메탈(Liquid Metal) 사의 메탈릭 글래스 관련 기술에 대한 독점 사용권을 2010년부터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다. 메탈릭 글래스가 아이폰에 사용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관련 루머가 끊임없이 도는 이유이다.

메탈릭 글래스의 이러한 특출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2016년 10월 현재 여전히 알루미늄을 사용해 아이폰 7의 외장재를 제작하고 있다. 메탈릭 글래스 연구가 60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고, 애플은 리퀴드메탈 사의 기술 사용권을 소유해왔음에도 아직 전자기기 외장재로 이 신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탈릭 글래스의 상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복잡한 화학구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메탈릭 글래스를 가공하기 위해서는 합금을 녹인 후 충분히 빠른 속도로 냉각해야 한다. 메탈릭 글래스 가공이 가능한 최소의 냉각속도를 임계 냉각속도라 한다. 임계 냉각속도는 원소 구성에 따라 다른데, 일반적으로 가공 공정상에서 큰 문제 없이 낮은 속도로 냉각하여 가공하기 위해서는 보통 4~5종류의 원소를 섞어야 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고성능 골프채에 메탈릭 글래스가 사용된 적이 있는데 당시 많이 쓰이던 메탈릭 글래스 원소의 몰분율은 지르코늄 41.2%, 베릴륨 22.5%, 타이타늄 13.8%, 구리 12.5%, 니켈 10%였다. 비트렐로이(Vitreloy) 1이라 불리는 이 메탈릭 글래스는 약 1초에 1도의 속도로 냉각해도 비정질 구조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일반 가공 기법으로 큰 무리 없이 달성할 수 있는 냉각속도이다. 하지만 비트렐로이 1 등 지금까지 사용된 많은 메탈릭 글래스들은 다량의 지르코늄과 타이타늄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원소들은 반응성이 매우 좋아 공정상에서 산소와 격렬하게 반응했다. 이로 인해 가공된 제품에서 많은 결함이 발생했다. 예컨대 비트렐로이 1으로 만든 골프채는 고성능을 자랑하지만 수백 번 스윙 후 깨져버리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아직 메탈릭 글래스가 아이폰 외장재를 포함해 많은 부분에서 이용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따라서 메탈릭 글래스의 성공적인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충분히 낮은 속도로 냉각해도 비정질 구조를 만드는 원소 조합을 찾되, 지르코늄이나 타이타늄과 같이 산소와 반응성이 좋은 원소들의 구성을 현저하게 줄여야 한다. 또한, 메탈릭 글래스를 보다 널리 쓰이게 하려면 지르코늄과 팔라듐 등 비싼 원소들의 함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메탈릭 글래스의 역사가 약 60년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4개 원소로 구성되는 메탈릭  글래스는 2.5%, 5개 원소로 구성되는 메탈릭 글래스는 불과 0.2%밖에 연구되지 않았다고 추정된다. 한 원소 조합을 가진 합금을 녹인 후 냉각시켜 메탈릭 글래스 상태로 만든 뒤에 여러 장비를 활용해 분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수일이다. 
     
로또 복권이 45개의 숫자 중 6개를 선택할 경우의 당첨 확률이 약 800만분의 1이라고 하니, 4~5개의 원소를 적절하게 섞어 각각에 대한 임계 냉각속도와 기계적 거동을 실험적으로 측정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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