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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8. 2016

07. 생존에 필요한 의약품은 어떻게 만드나?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지식>

특정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의약품을 확보할 수 있어야만, 올바른 질병의 진단도 온전한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의약품의 개발은 항상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20세기 전까지 의사의 가방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 고통을 줄여줄 방법이 없어 무력하게 앉아 있는 의사의 좌절감을 상상해보라.

     
많은 현대 의약품과 치료 약은 식물에서 파생된 것이다. 민간에서 전승된 전통적인 약초학은 문명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녔다. 약 2,500년 전, 의사들의 윤리강령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는 버드나무를 씹으면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대 중국의 한의학에서도 열을 낮추는 약으로 버드나무 껍질을 추천한다. 라벤더에서 추출한 방향유(芳香油)에는 균을 죽이고 염증을 억제하는 성분이 있어, 찢어지고 부딪쳐 생긴 상처에 바르는 외용약으로 쓰인다. 
     
반면에 차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은 예부터 살균제와 항진균제로 쓰였다. 디기탈리스에서 추출한 디기탈린은 맥박이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는 사람의 심장 박동을 늦추어준다. 한편 기나나무 껍질에 함유된 말라리아약인 키니네가 더해진 탄산수가 토닉 워터이고, 이 때문에 토닉 워터에서 씁쓰레한 맛이 난다. 식민지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진에 토닉 워터를 섞어 마셨다.
     
종말 후에 우리가 한동안 보유해야 할 약은 통증을 완화하는 데 사용되는 진통제이다. 진통제는 병의 원인보다 증상의 완화에 초점을 맞춘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간단한 두통부터 격심한 통증까지 모든 통증에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현재 세상에서 가장 흔히 복용 되는 약이다. 통각 상실은 외과학의 부흥에 필요한 필수 조건이다. 
     
버드나무 껍질을 씹으면 한정적이나마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 종기를 잘라내는 정도의 사소한 시술이나 깊지 않은 상처에 적합한 부분 마취에는 매운 고추가 사용된다. 매운 고추에 함유되어 입안에 불이 난 듯한 느낌을 주는 캡사이신 분자는 반(反) 각성제로 알려져 있다. 박하에서 추출한 멘톨을 피부에 문지르면 시원한 기분이 느껴지지만, 캡사이신을 피부에 문지르면 통증이 잊힌다. 캡사이신과 멘톨은 근육통을 완화하는 습포제나 호랑이 연고(Tiger Balm) 같은 연고에서도 사용된다.
     
먼 옛날부터 사용된 보편적인 진통제는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이라 할 수 있다. 아편은 양귀비 열매에서 추출한 분홍색의 끈적한 유액으로 진통 효과가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덜 익은 골프공 크기의 꼬투리 곳곳에 얕게 상처를 내면 유액이 흘러내린다. 이 유액을 매일 거둬서 말리면 고무 같은 검은 외피가 생긴다. 이튿날 아침 그 외피를 벗겨내면 아편이 손에 들어온다. 아편에 함유된 주된 진통제는 모르핀과 코데인이다. 건조된 유액에는 모르핀이 20%까지 함유되는 때도 있다. 아편은 물보다 에탄올에 훨씬 더 잘 녹는다. 강력하지만 중독성을 지닌 아편제, 로드넘(Laudanum)은 아편 가루를 알코올에 녹여 만든 것이다.
     
1930년대에는 양귀비를 일반적인 곡물과 마찬가지로 수확해서 타작하고 키질한 후에 양귀비로부터 아편을 추출하기 위해서, 가용성(可溶性)을 높이려고 약간 산성을 띤 물에 몇 번이고 씻어내는 훨씬 덜 노동집약적인 방법이 개발되었다. 양귀비 씨는 이듬해에 다시 심거나 식용으로 보관되었다. 요즘에도 의료용 아편제의 90%가 양귀비에서 추출된다.
     
하지만 식물을 달인 탕약이나 식물 추출물을 알코올에 혼합한 약제는 종말 후의 세상에서 화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까닭에 유효성분의 농도를 알아낼 방법이 없고, 너무 많이 섭취하면 위험할 수 있다. 특히 디기탈린처럼 심장 박동과 관련된 약물의 경우에는 신중해야만 한다. 따라서 적정한 양을 복용할 가능성이 작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충분한 효과를 거둘 만큼의 양을 먹겠지만, 자칫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침투성 감염증과 패혈증부터 암까지 심각한 질병, 결국 목숨과 관련된 질병은 단순히 식물에서 추출한 약물로는 효과적인 치료를 기대하기 힘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약학적 화합물을 분리해서 조작하는 유기화학 분야가 혁명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모든 의약품의 농도는 정확히 밝혀져 있다. 또한, 인공적으로 합성된 의약품이 대부분이고, 식물 추출물은 화합물의 효능을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유기화학적으로 조정된다. 
     
예컨대 버드나무 껍질에 함유된 유효성분인 살리실산에 상대적으로 단순한 화학적 변형을 가해 해열진통제의 효능을 유지하면서도 복통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줄인다. 그 결과가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알약, 아스피린이다. 
     
생존자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중요한 관습은, 특정한 화합물이나 치료제가 참으로 효과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증거에 기초한 의학이다. 객관적인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약물은 가짜 약, 주술사의 엉터리 약, 동종요법의 혼합물로 취급하여 폐기되어야 한다. 이상적인 경우에 임상시험을 통해 효능을 객관적으로 시험하려면 많은 수의 환자를 두 집단 ― 치료를 받는 집단과 비교의 대상이 되는 대조군 ― 으로 나눈 후에 개발 중인 약이나 위약(僞藥)을 주고 그 결과를 비교해야 한다. 
     
성공적인 임상시험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실험 대상자를 무작위로 두 집단 중 하나에 배치해서 선입견을 배제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중맹검법(Double blind test)을 사용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결과가 분석될 때까지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 환자도 의사도 몰라야 한다는 뜻이다. 
     
의학이 부흥하는 과정에서, 치밀하고 조직적인 작업을 대신할 지름길은 없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 동물실험처럼 달갑지 않은 관례를 되풀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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