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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8. 2016

07. 자랑스러운 여경 열전_권은희 수사과장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균형인사는 사회적 공감대도 있고 대국민 약속이기도 하다. 균형인사는 전통적으로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의미도 있지만,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의미가 크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직위에 여성, 이공계, 지방 출신 등 다양한 배경의 인사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리를 잡아야 사회 전체의 다양성이 확보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사회의 창의성, 효율성, 통합성이 높아질 것이다. 정부 각 부처가 균형인사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이 쉬운 일이 아니고 문제점도 있을 것이나 성공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어 실효성 있게 추진해 나가자.”

2004년 12월 14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중앙인사위원회 ‘균형인사 실천보고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참여정부 균형인사정책의 의의와 각 부처 장관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여성인재 발굴에 힘을 쏟은 참여정부는 균형인사를 실천하기 위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를 다듬었고, 2003년부터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2003년 12월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균형인사비서관실을 신설했고, 이듬해 6월에는 중앙인사위원회에 균형인사과를 설치해 각 부처의 균형인사 집행실적을 점검했다. 여경들의 다양한 활약상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경위 이상 중간관리직에 많은 여경들이 발탁됐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여성 총경, 유능한 여성 경무관이 탄생했다.

다음은 ‘1호’ 여경 기록 보유자들이다.

1호 여경 고봉경. 1호 경찰서장 김강자. 1호 경무관, 1호 지방경찰청장 김인옥. 1호 치안감, 1호 치안정감 이금형. 지방 1호 총경, 지방 1호 경무관 설용숙. 부부 경무관 1호, 부부 총경 1호 김해경. 경사 특채 출신 1호 총경, 1호 경무관 이은정. 경찰대 출신 1호 총경 윤성혜. 경찰대 여성1호 수석 출신 총경 김숙진. 경장 특채 총경 1호 강복순. 순경 출신 부부 총경 1호 구본숙.

1호 경정 특채 권은희. 2005년 사법고시 출신 경정특채로 경찰복을 입었다. 8.9대 1이라는 비교적 높은 관문을 통과했는데, 응시한 4명의 여성 가운데 유일한 홍일점 합격자였다. 참여정부가 ‘양성채용목표제’를 확대·실시하면서 고시특채에 있어서도 여성을 우대하도록 했기 때문에 여성 경정 선발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권 경정은 전남대 법대를 졸업하고 2011년 제43회 사법고시에 합격, 충북 청주에서 변호사로 개업했으나 1년여 만에 공직을 노크했다. 경찰의 길을 택한 데에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이 작용했다. 기록이 아닌 현장에서 사건의 실체를 좇는 ‘경찰’이라는 직업의 가치를 느꼈고, 중간관리자인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을 지망했다. 2005년 경기 용인서 수사과장을 시작으로 서울 서초·서대문·마포서 수사과장을 거쳤다. 이은정 총경을 잇는 여성 수사통이자 기대주였다. 2012년 초 서울 수서서 수사과장으로 부임해 대선 기간 동안 ‘국정원 댓글사건’의 초동 수사를 담당했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등 상부와의 이견으로 2013년 2월 송파서 수사과장으로 교체됐다.

권 과장은 2013년 8월 19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한 데 이어 “경찰의 무리한 중간수사 발표는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소신 가득한) 답변까지 토해내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사무실에는 시민들이 보낸 진실의 상징인 장미꽃이 쇄도했고, 실명 인증을 거쳐야 글을 쓸 수 있는 송파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무려 2,400여 개의 격려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2014년 2월 또다시 관악서 여성청소년과장으로 전보됐다.

박상용 경기경찰청 2차장 7년, 백승호 전남지방경찰청장 8년, 최현락 본청 기획조정관 9년. 이는 사법고시 출신 경정 특채자 가운데 2015년 현재 치안감에 오른 사람들이 총경까지 진급하는 데 걸린 기간이다. 보통 경정 승진 뒤 7~10년이면 총경 승진 심사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권은희 과장은 경정 9년차였음에도 총경 승진 후보조차 되지 못하고 옷을 벗고 말았다. 당시 시민사회와 민주당은 유례없는 승진 잔치에도 불구하고 권 과장이 총경 승진에서 탈락한 것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정권의 치졸한 보복성 인사”라고 주장했다.

2014년 1월 총경 진급자 명단에는 3명의 여경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김경자 총경은 순경 공채 출신으로 2006년에 경정에 올랐다. 권은희 과장보다 경정 1년 후배인 셈이다. 이광숙 총경은 순경 공채 출신으로 2008년 1월 경정을 달았으니 초고속 승진이었다. 김숙진 총경은 경찰대 9기 출신으로 이광숙 총경과 같은 해에 경정을 달았고, 총경 승진도 나란히 했다. 3명 모두 권 과장의 경정 후배들인 셈이니, 참으로 불공평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

2014년 6월 5일 2심 재판부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경찰공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권은희 과장은 2014년 6월 말 사직했다. 7·30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한길·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에 영입되어 광주 광산(을)에 출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국회 국방위원, 운영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당에서는 원내대표 비서실장과 원내부대표를 맡았다. 한편 권은희 의원은 국회청문회 출석 2년이 되던 2015년 8월 19일 검찰에 의해 모해위증죄(법정에서 남에게 불이익을 끼칠 목적으로 허위진술을 하는 것)로 불구속 기소가 됐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를 자임하며 대구 달서(을) 20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였으나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1년 1월 12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열린 ‘경찰 지휘부 회의’에서 “상관의 불법·부당한 업무 지시를 막기 위해 ‘내부고발자 특진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은희 과장에게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1심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권은희 의원은 “기록 속에 묻힌 진실을 꺼내봐야 한다.”면서 “아직 알려드릴 내용이 많다. 그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진실을 향한 그녀의 도전은 반드시 결실을 맺어야 한다.

권은희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1월 초 새로운 정치적 선택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안철수 대표가 주도하는 국민의당에 몸을 담은 것이다. “지역주민들의 마음속에 국민의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신당 참여 이유를 밝혔지만, 법적인 진실과는 별개로 정치적 재신임을 받아야 했다. 상대는 김대중 정부 관세청장과 노무현 정부 청와대 혁신관리수석 및 국세청장·행자부장관·건설교통부장관 경력에 재선 의원까지 지낸 정치거물 이용섭 후보였다. 

그리하여 광산(을)은 자연스럽게 전국 최대격전지로 부상하였고 선거 당일까지 초접전지역이 됐다. 그렇지만 4월 13일 밤 모두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리고 당선된 권은희 의원의 득표율은 과반을 넘어섰다. 비록 1년 8개월이라는 짧은 의정활동 기간이었지만 그는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도 수십 년 동안 풀지 못했던 무등산 정상 군부대 이전 문제 해결과 활발한 대주민 소통 등으로 이미 유권자의 낙점을 받은 상태였다. 광주지역에서 여성의원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권은희 의원이 처음이다. 그는 불의에 항거한 내부고발 공무원이었지만 야당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으로 거듭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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