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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8. 2016

06. 노엄 촘스키, 유한한 언어로 무한한 진실을

<천재의 생각법>

세상을 비판하는 현대의 지성인 노암 촘스키

2005년 영국의 학술지 <프로스펙트>는 노암 촘스키를 현존하는 최고의 지성인으로 선정했다. 노엄 촘스키는 또한 수시로 우리나라를 향해 발언이나 행동한다. 2016년 10월에는 ‘사드 한국 배치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군사화 저지를 위한 미국 태스크포스’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성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미국이 북한 핵실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2016년 5월에는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오바마에게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암울한 날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무기를 시험한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는 더 심각한 것이었다.”
  

 
아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이렇게 쉬지 않고 활동하는 노엄 촘스키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아마도 살아 있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노엄 촘스키는 자신에 대해 그렇게 평가하는 <뉴욕타임스>에 대해서도 냉정하다. 촘스키는 <뉴욕타임스>와 같은 언론이 겉으로는 ‘권력의 감시자’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권력집단(정부)과 대기업과 함께 다수의 약자를 지배하는 소수의 특권계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엄 촘스키는 “<뉴욕타임스>는 거꾸로 읽는 것이 낫다.”라고까지 말한다.
     
1928년생인 그는 현재 미국 MIT의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 역시 학자였다. 아버지는 이스라엘 언어인 히브리어 연구의 권위자였는데 종종 어린 촘스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부모는 전형적인 유대인들로 촘스키에게 유대인 언어와 문화를 집중적으로 교육했다.
     
촘스키는 두 살 때 학교에 입학하여 열두 살까지 다녔다. 그가 입학한 학교는 실험학교였다. 촘스키는 지적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는 문학이나 교양서적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는 열 살 때 학교 신문에 논설을 싣기도 했다. ‘파시즘의 확산’에 관한 주제였고, 첫 문장이 “오스트리아가 떨어졌고 체코슬로바키아도 떨어졌으며 이제 바르셀로나도 떨어졌다.”로 시작되는 것이었다.
     

로만 야콥슨의 추천으로 MIT 교수가 되다.

열두 살 때 촘스키는 필라델피아의 센트럴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센트럴고등학교는 ‘좋은 학교’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었지만 촘스키는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열세 살이 된 해부터 여기저기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여행 중에 유명하지는 않아도 각 지역 현장에서 활동하는 많은 작가를 만난다. 이때 촘스키는 주류 언론에서 나오는 정보와 이 사람들이 알려주는 진실 간의 차이에서 충격을 받는다. 어린 촘스키는 돈과 명예를 좇지 않고 오직 ‘진실과 정의’를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촘스키가 어린 시절일 때 미국의 대공황은 절정에 달했다. 어디에서나 노동자의 고통스러운 삶을 일상적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던 시대였다. 이러한 경험은 촘스키에게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권력을 가진 기구, 이를테면 정부나 기업 혹은 언론에 대해 반감을 품게 되었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공부하고, 1951년부터 1955년까지 하버드대학교의 특별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하버드대학교에서 「변형 분석」이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을 제출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변형생성문법’의 기초적인 틀이다. 그 후 그는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로서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언어학의 새로운 혁명을 가져온다. 그리고 러시아 태생 유대인이자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의 추천으로 MIT에서 언어학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변형생성문법을 창시한 실천적 지식인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은 당시 언어학을 지배하고 있던 구조주의 언어학의 위엄을 단숨에 위협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세상 언어들의 내부구조를 살피면 그것들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목표는 주어진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언어 구조 내부에서의 역할을 검증하고 그 기준을 설정하는 데에 있었다.
     
이에 반해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은 언어의 구조보다는 인간 내부의 언어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었다. 언어 활동의 결과물만이 아닌 그 생성의 원천과 원리에 관해 연구하고자 했다. 언어 활동을 인간 정신의 창조적인 영역으로 본 것이다.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은 ‘촘스키 혁명’, ‘언어학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 언어학에 획기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유한한 언어라도 무한한 진실을 말하라!

촘스키는 지금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소수의 부자들, 금융기관들이 부를 축적하는 동안 일반 사람들의 경제적 지위는 그대로이거나 추락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면서 세계 각지의 권력을 가진 정부를 향한 비판을 계속한다.
     
정부만이 아니라 때로는 기업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구글 글라스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결과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를 보는 듯하다.”고 혹평했다. 왜냐하면 “구글 글라스를 쓰는 것은 구글이 정확히 계산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당신의 일상이 인터넷이 떠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구글 글라스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충고한다.
     
촘스키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사회를 올바로 평가하고 판단하며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식인이라면 보통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 진실을 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노엄 촘스키가 생각하는 올바른 ‘지식인의 책무’다.

“지혜보다 행동이 넘치는 사람에게 지혜는 계속된다. 그러나 행동보다 지혜가 넘치는 사람에게 지혜는 계속되지 않는다.” _ 유대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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