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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9. 2016

08. 쿠르디의 비극, 테러, 극우 그리고 고립주의

<빅 픽처 2017>

아일란 쿠르디를 기억하는가. 2015년 9월, 터키 보드룸의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 시리아 소년의 이름이다. 쿠르디는 가족과 함께 내전으로 찢긴 고향 시리아를 떠나 유럽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유럽에 발을 딛지 못한 채 난민들의 목숨을 건 여정을 대변하는 사진 한 장만을 남기고 터키에서 생을 마감했다.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채 마치 엎드려 잠이 든 듯한 쿠르디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세계인의 양심을 깨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에 수천 명 이상의 시리아인이 쿠르디 가족처럼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1년 시리아 내전 이 시작된 이래 480만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시리아 내에서 고향을 떠난 내부실향민(DIP)도 660만 명에 이른다. 내전 발발 직전의 시리아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약 절반에 해당하는 인구가 집을 잃고 떠도는 셈이다. 
     
유럽연합 내의 불협화음이 커지는 사이, 유럽 각국에서는 난민 반대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난민과 이민자 억제’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극우 정치 세력이 활개를 치는 상황이다. 극우정당들은 지난 1~2년 사이 유럽 주요국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놀랄 만큼 약진했다. 
     
2016년 4월 오스트리아 대선 1차 투표에서는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35.1%를 득표하며 2위를 기록했다. 호퍼는 결선투표에서 좌파 성향의 알렉산더 반데어벨렌 후보에 고배를 마셨지만, 득표율 차이는 불과 0.6%p에 그쳤다. 유럽 극우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연합 내에서 극우 성향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결과라며 환호했다. 오스트리아는 한때 독일과 함께 난민에게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여론의 반대와 극우의 부상에 부딪혀 난민 통제로 입장을 선회했다.
     
메르켈의 포용적 난민 정책이 역풍을 맞고 있는 독일에서도 극우정당이 기세등등하다. 2013년 창당된 신생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지난 3월 지방의회 선거가 치러진 3개 주에서 12~2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메르켈이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과 연정 상대 사회민주당(SPD)은 수세에 몰렸을 뿐 아니라, 난민 정책을 둘러싼 내분이 심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5년 12월 지방선거에서 극우파 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민족 전선(FN)이 무려 28%를 득표해 제3당으로 올라섰다. 앞서 총선을 치른 스위스와 덴마크에서는 강경 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극우 국민당과 덴마크인민당이 각각 제1당과 제2당이 됐다. 영국 총선에서는 극우 영국 독립당이 득표율 12.7%로 약 400만 표를 얻는 기염을 토했다.
     
유럽 곳곳에서 극우정당들이 대중적 지지를 끌어모은 데는 무엇보다도 ‘반이민·반난민’ 선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이민자와 난민들이 원주민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뿐 아니라, 교육·의료·실업수당 등 각종 사회 복지 혜택을 누린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권자들이 기성 정치권과 유럽연합 관료제에 가진 반감을 이용해 지지층의 외연을 넓혔다. 브렉시트 투표 당시 영국 독립당이 벌인 탈퇴 캠페인의 핵심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었다.

극우파는 특히 전대미문의 난민 위기를 틈타 난민과 이민자들을 하나로 뭉뚱그리고, 무슬림 등 ‘외부 집단’이 유럽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2015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만평잡지사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테러가 끊이지 않는 상황도 극우파의 비뚤어진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사실 프랑스 파리 동시다발 테러(2015년 11월), 벨기에 브뤼셀 공항 및 도심 테러(2016년 3월) 등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대규모 테러는 외부인이 아닌 유럽연합에서 나고 자란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었다. 테러범들은 유럽연합 시민권을 소지한 이민 2~3세들로, 유럽 내에서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거나 IS를 추종하게 된 이들이었다. 테러범이 난민과 무관함에도 극우파는 대다수 난민이 무슬림이라는 점에 근거해 ‘이슬람포비아’를 부추겼다. 일각에서는 IS 지도부가 난민 행렬에 조직원들을 침투시킬 수 있으므로 난민 수용을 멈춰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테러 정국 속에서 난민들은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지목되고 있다. ‘난민=무슬림=테러리스트’라는 잘못된 등식이 마치 사실인 양 확산하고 있으며, 난민들 스스로가 ‘다에쉬(Daesh, IS의 아랍어)’와 같은 무장조직의 무차별 폭력을 피해 떠나왔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는다. 최근 유럽 10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개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난민이 자국 내 테러 가능성을 높인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가 공약으로 내건 ‘무슬림 입국 금지’ ‘미국-멕시코 국경 철조망 건설’ 등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발언처럼 들린다.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트럼프의 강경한 이민 통제 공약이나 이민자나 무슬림 비하 발언에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러한 발언들을 트럼프의 돌발 행동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와 테러 위협이 심화할수록 ‘희생양’을 찾는 정치가 세력을 얻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이민자나 난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가중해 범죄나 테러 등 새로운 불안 요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나 차별이 사회 통합과 안정을 저해하는 악순환이 굳어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지금 유럽을 전례 없는 테러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테러범들은 대개 유럽 사회에 통합되지 못한 이민 2~3세대 청년들이다. 실업이나 생활고는 물론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리는 이들이 급진적인 이데올로기에 빠져들어 ‘외로운 늑대’형 공격을 감행하는 상황은, 교육・노동 현장 및 일상에서 이들이 겪는 차별과 배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줄어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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