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Nov 29. 2016

08. 에스티 로더, 설득하지 말고 경험하게 하라.

<천재의 생각법>

어째서 에스티 로더의 화장품을 팔지 않는 거예요?

고객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백화점은 결국 이제 막 시작한 작은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었던 삭스 피프스 에비뉴 백화점은 뉴욕 쇼핑의 메카, 맨해튼 5번가의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였다. 삭스 백화점은 자신의 화장품을 팔게 해달라는 에스티 로더의 거듭된 요청을 거절했다. 
    

 
최고로 유명한 백화점의 눈에 무명의 화장품 회사 제품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당시 미국에서 유통되던 고급 뷰티 상품들은 모두 프랑스에서 건너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스티 로더는 포기하지 않았다. 백화점과 가까운 고급 호텔을 빌려 여러 차례 제품 설명회를 열고 그때마다 참석자들에게 무료 샘플을 증정했다. 동시에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도록 항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로더의 제품을 써 본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백화점은 에스티 로더에게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1948년, 에스티 로더 역사상 최초로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 입점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판매대를 내어달라는 요청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백화점을 ‘고객의 힘’으로 무너뜨린 세일즈의 귀재, 에스티 로더다.
     
어려서부터 디스플레이와 화장에 뛰어났던 소녀 에스티 로더의 본명은 조지핀 에스터 멘처(Josephine Esther Mentzer)이다. 1908년 7월 1일 뉴욕에서 태어난 로더는 어린 시절 가게의 물건 위치를 종종 마음에 드는 대로 바꾸어놓기도 했다. 그녀의 독특한 디스플레이는 자주 고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사춘기 시절, 그녀는 맨해튼에서 페이스 크림을 만드는 공장을 하던 외삼촌과 만난다.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던 소녀가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외삼촌 존 쇼츠(John Shotz)는 그녀에게 화장품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 제품을 몇 개 전해주기도 한다. 로더는 이것을 학교에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소개하고는 했다.     


1946년 에스티 로더를 설립하다.

그러나 그녀가 본격적으로 화장품 업계에 뛰어든 것은 결혼한 후였다. 1933년, 남편이 경영하던 조그만 실크 공장이 망하자 평소 단골로 이용하던 미장원에서 직접 만든 화장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로더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수영장, 자선만찬회, 휴양지 등 장소를 불문하고 찾아갔다. 
     
주요 고객은 중류층의 유대인 여성들로, 로더는 고객들과 만날 때는 옷차림과 화장에 세심하게 신경 썼다. 그녀는 자신을 ‘따라 하고 싶은 패션과 화장의 표본’으로 만들어 그 심리를 상품 구매로 연결되게 했다. 로더는 사람들의 얼굴에 직접 자신이 만든 화장품을 발라 주면서 화장품의 효과를 직접 경험하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더의 친절하고 세련된 행동과 능란한 화술에 고객들은 이끌리기 시작했다.
     
도시의 젊은 여성들은 1920년대에 이미 화장을 하기 시작했지만, 대공황이 닥치자 화장품은 사치품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호황이 이어졌고, 그 무렵 색채영화가 등장하며 여배우들을 따라 하는 유행이 돌기 시작했다. 때맞춰 화장품이 인기를 끌자 로더는 1946년 남편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를 창업하였다.     


미국 사회에 향수 문화를 대중화시키다.

당시 향수는 영화에나 나오는 물건이거나 퇴폐의 상징이었다. 일반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스티 로더는 이 통념을 깨고자 했다. 그 첫 시도가 1953년 ‘유스 듀(Youth Dew)’ 출시였다. 유스 듀는, 향수가 아닌 바스 오일(Bath Oil)의 형태로 목욕하면서 자연스레 향이 몸에 배게 했다. 편리한 사용방법은 미국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에스티 로더는 또한 광고에 누드의 여인을 등장시켰다. 당시 광고에 누드의 여인이란 파격적인 행보였으나 그 감각적인 화면은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에스티 로더는 ‘유스 듀’를 프랑스의 백화점에 입점시키려고 했다. 이를 위한 미팅 중에 향수를 바닥에 쏟고 말았는데, 온종일 ‘유스 듀’의 향기가 그 층에 은은히 가득했다고 한다. 고객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입점에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프랑스제 향수들은 증발을 막기 위해 단단히 밀봉된 상태로, 구매 전에 향기를 맡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로더는 이러한 상식을 완전히 깨고 매장에서 고객들이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뚜껑을 열어 두었다. 향수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몸소 체험한 고객들은 에스티 로더의 매장으로 몰렸다. 그녀의 전략은 고객들에게 환영받았고, ‘시향’은 현재 향수업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판매 전략이 되었다.
     
1956년 에스티 로더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리뉴트리브(Re-Nutriv)’ 크림을 출시했다. 금색 라벨로 디자인되었고 다른 회사 제품보다 다섯 배나 비쌌다. 판매에 회의적인 사람이 많았지만 에스티 로더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크림을 피카소의 작품에 비유하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당신은 왜 피카소 그림을 사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내나요? 그가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린넨 비용은 2달러 75센트이며, 물감 한 통은 아마 1달러 75센트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작은 그림에 그처럼 엄청난 돈을 내는 거죠? 당신은 그의 창조성, 경험 그리고 당신에게 꼭 맞는 무언가를 위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티 로더는 창립한 지 12년 만에 20배 이상 매출이 증가한다. 에스티 로더의 기업 철학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최고의 것을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8. 쿠르디의 비극, 테러, 극우 그리고 고립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