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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9. 2016

09. 기계가 사라진 후, 축력을 활용하라.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지식>

기계가 조금씩 사라지면 축력(畜力), 즉 가축의 노동력을 되살려야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수레로 짐을 실어 나르고, 쟁기와 써레와 파종기를 끌며 농사일에 동원된 역축으로 사용된 첫 동물은 황소(거세한 수소)였다. 기계화된 트랙터가 서서히 멈추면 역축을 다시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샤이어처럼 역축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말들은 완전무장한 기사를 태우고 중세 유럽의 전쟁터를 돌아다니던 말들의 후손이어서, 황소보다 더 빠르고 튼튼하며 쉽게 지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황소를 말로 대체하려면, 동양의 고대문명에는 있었지만, 유럽의 고대문명과 그리스·로마 문명에는 없었던 중요한 마구를 다시 발명해야 할 것이다.

     
황소에게 채워지는 멍에는 비교적 간단하다. 긴 나무를 황소의 목 위에 얹고 양쪽에 말뚝을 꽂아 나무를 고정하거나, 머리 멍에를 뿔 앞에 메우면 된다. 하지만 말은 체형에 따라 끈을 조절해서 마구가 채워져야 한다. 가장 단순한 형태인 ‘목과 뱃대끈 마구 (throat-and-girth harness)’는 목을 두르고 어깨 위쪽으로 지나는 띠와 아래쪽부터 배를 감은 띠가 등 한가운데에서 만나며 짐을 싣는 수레 등과 연결된 장치와 이어졌다. 
     
이런 형식의 마구는 고대에 널리 사용되었고, 아시리아와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에서 수 세기 동안 전차로도 이용되었다. 하지만 이 마구는 말의 해부학적 구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쟁기를 끌어당기는 힘든 일을 하는 데도 적합하지 않다. 앞쪽의 띠가 말의 목정맥과 호흡기관을 누르고 있어, 말이 힘껏 짐을 끌어당기면 자신의 목을 조르는 꼴이 된다는 게 문제이다. 해결책은 말이 자신에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으면서 힘을 쓸 수 있도록 띠의 위치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말의 목사리(horse collar)는 금속이나 나무로 말의 목을 포근하게 감싸도록 만든 고리이다. 안쪽에는 폭신한 것이 덧대져 있다. 또한, 짐과 연결되는 지점이 목 뒤에 있지 않고, 양 옆구리의 아래쪽에 있어 짐의 무게를 가슴과 양어깨에 고르게 분배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인체공학적 설계를 처음으로 적용한 목사리, 즉 말의 해부학적 구조에 적합한 이런 목사리가 중국에서는 5세기쯤에 개발되었지만, 유럽에서는 1100년대에야 널리 보급되었다. 과거 부적절한 마구가 채워졌을 때보다, 목사리 덕분에 말은 3배나 많은 견인력을 발휘하며 온 힘을 다 쏟을 수 있었다. 따라서 말이 끄는 쟁기가 중심이 되어 중세 농업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가축의 견인력과 운송 수단을 결합해놓은 모습은 괴상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버려진 승용차나 트럭에서 떼어낸 움직이는 부분, 즉 뒷차축과 바퀴는 수레의 기본 틀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더 단순한 형태로는 승용차를 앞뒤로 쪼갠 후에 작동하지 않는 엔진에 장착된 앞부분은 버리고, 뒷좌석과 뒷바퀴 부분만을 고대 경주용 전차처럼 사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비계용 파이프를 양쪽에 하나씩 덧붙여서, 당나귀나 황소에게 걸음을 재촉하기 위한 팔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로 움직이는 운송 수단이 사라지면 이처럼 임시방편으로 만든 운송 수단이 흔해질 것이다.
     
하지만 가축의 힘을 이용하는 사회로 다시 돌아가려면, 적잖은 농산물을 가축의 식량으로 전용해야 할 것이다. 이동식 증기기관이 개발된 지 50년이 지나고, 휘발유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트랙터가 이미 존재한 1915년경에 실제로 있었던 경우로, 영국과 미국에서 농경에 말을 한창 사용하던 때 경작지의 3분의 1이 말을 먹이는 데 할애되었다. 
     
종말이 닥치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재건을 시작한 사회가 금속 가공과 공작기계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원동기가 없는 세상에서 인간의 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기계장치는 자전거일 것이다. 페달을 움직여 동력을 얻는 자전거의 심장은, 인간이 다리로 행하는 왕복운동을 바퀴에 필요한 회전운동으로 전환하는 크랭크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해결해야 할 공학적인 문제가 있다. 어린아이의 세발자전거처럼 페달이 차축에 고정되어 있으면 페달을 밟는 행위가 곧바로 바퀴에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대로 속도를 내려면 귀신에 홀린 듯이 페달을 밟아야 한다. 따라서 가장 단순한 해결책은 앞바퀴를 크게 하는 것이다. 그럼 작은 회전으로도 큰 원둘레로 인해 괜찮은 속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바퀴의 둘레가 1.2m에 달해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페니파딩(penny-farthing)이란 초창기 자전거는 이런 아이디어가 적용된 사례였다. 
   

  
요즘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한 자전거 제작자가 1885년에야 훨씬 더 나은 해결책을 고안해냈다. 고대의 기계 시스템인 톱니바퀴 장치를 체인으로 연결하는 방법이었다.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스프로킷(sprocket)을 롤러 체인에 기계적으로 연결해서, 종동차(driven wheel)가 페달 크랭크보다 더 빠른 속도로 회전하게 하는 원리이다. (그런데 롤러 체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6세기에 그린 설계와 무척 유사하다.) 
     
또한, 바퀴의 중심과 핸들을 연결하는 앞부분을 약간 뒤쪽으로 기울게 해서 앞바퀴로 자전거가 어느 쪽으로든 자연스레 넘어지도록 함으로써 자전거의 내재적인 안정성을 더한 것도 중요한 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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