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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19. 2016

06. 초(楚) 장왕의 연회장, 왕의  여인 희롱 사건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 마음이 흔들릴 때>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말라! 남의 단점을 보지도 말라.


나의 단점을 변호하지 말라! 나의 단점을 고치기에 힘쓰라!”

경남 양산에 있는 사찰인 통도사(通度寺) 경내의 오래된 기둥 곳곳에 붙어 있는 검은 나무판에 쓰인 경구 중 하나입니다.

남을 책망하고 탓하기는 쉬우나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이 어렵고, 어렵게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어도 자신을 합리화하는 변명을 하기 쉬우니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살피고 깨우쳐서 고쳐가는 습관이 스스로를 성장하게 합니다.

중국 춘추시대 초(楚) 장왕의 일화에서 기인한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왕이 나라의 큰 난을 평정한 후 공을 세운 신하들을 치하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신하들을 아끼던 장왕은 자신의 후궁들에게 이 연회의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연회가 한창 진행되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연회장의 촛불들이 일순간에 꺼졌습니다. 칠흑 같은 그믐이라 앞이 보이지 않던 그 순간 한 여인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영화 초한지의 한장면



어둠을 틈타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을 만졌고, 자신이 그 자의 갓 끈을 뜯어두었으니, 장왕께서는 어서 불을 켜서 그 무엄한 자를 벌해 달라는 고변이었습니다. 자신의 후궁을 희롱한 무엄한 신하가 괘씸하고, 자신의 위엄이 희롱당한 것 같은 노여움에 빠져 들기가 쉬운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 장왕은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자리는 내가 아끼는 이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이니 이 자리의 모든 신하는 내 명을 들으라.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갓의 갓끈을 모두 자르라. 지금 일어난 일은 이 유흥의 자리에 후궁들을 들게 한 나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이니 나의 불찰이다. 또한 오늘의 실수는 그런 이유로 불문에 부치려 하니 그대는 그 사람을 너그럽게 용서하시기 바라오.”

장왕은 먼저 후궁들을 달래서 연회장에서 내보낸 후 그곳에 함께한 모든 신하들이 갓끈을 자른 뒤에 연회장의 불을 켜도록 했으니 누가 그랬는지 확인할 수 없었고, 자칫하면 연회가 깨지고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 왕의 여인을 희롱한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한 역모에 해당하는 불경죄로 죄인은 물론 온 가문이 능지처참을 당할 수 있는 중죄였지만, 장왕은 신하들을 치하하는 연회 자리를 훼손하지 않고 그렇게 보존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놀랍게도 그 일이 자신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임을 인정했습니다. 장왕이 자존감(自尊感)과 자긍심(自矜心)의 균형이 튼튼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균형 잡힌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분노하지 않으며,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여 더 이상 자의적인 확대해석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후 몇 년이 흐른 뒤 초나라는 진나라와 나라의 존폐가 달린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그 전쟁에서 초나라가 밀려서 장왕이 적장의 칼에 목이 잘릴 위기에 처했을 때 바람처럼 장왕 곁으로 달려와 온몸을 붉은 피로 물들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서 장왕과 초나라를 구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은 그를 불러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감싸 쥐고 공로를 치하했습니다. 그 장수는 장왕의 손을 풀고 물러나 장왕에게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큰 절을 올렸습니다.

“폐하! 소신이 몇 해 전 연회 자리에서 술에 취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날 폐하께서 소신을 살려주셨습니다. 이제야 그날의 불경에 대해 사죄를 올립니다.

소신은 그날 이후 새롭게 얻은 목숨을 폐하의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고, 오늘 이 전장에서 그 목숨을 폐하를 위해 바칠 각오로 싸웠습니다. 그날 폐하께서 베풀어주신 커다란 성은에 오늘 조금이나마 보답하게 되어 소신은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왕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그 신하를 끌어안아 일으켜 다독였습니다. 결국 장왕이 그날 밤 연회에서 베풀었던 배려심이 장왕과 초나라를 구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졌습니다.

‘갓끈을 자르는 연회’라는 뜻이니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신의 허물을 깨우친다는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말고, 남의 단점을 보지도 말고, 내 잘못을 변호하지 말며, 오직 나의 부족함을 고치기에 힘쓰라!” 통도사 경내에 붙어 있는 저 경구가 시대를 거슬러 절영지회의 고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나라 장왕이 행했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포용심이 생각나는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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