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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10. 2017

07. 컹거루 걷어차기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캥거루는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호주엔 캥거루가 얼마나 살고 있을까? 2005년 호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호주에는 5,700만 마리의 캥거루가 서식하고 있다. 최근에는 캥거루의 급증으로 다른 초식동물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는 등 생태계 교란이 발생한다는 지적에 따라 캥거루 포획과 안락사가 시행될 정도다. 

     
호주를 뒤이어 세계적으로 캥거루가 많은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다. 일본은 35~44세 연령대 인구 6명 중 1명꼴로 캥거루족이며, 한국은 15~34세 연령대 인구 100명 중 7.5명이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다 큰 성인들이 분가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한지붕 아래 살 때 ‘캥거루족’이라고 부른다. 
     
[장면 1]
     

명문대를 졸업한 후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김미령(35·가명·여) 씨는 본인 명의 아파트도 있지만,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김 씨의 여동생도 마찬가지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독립하지 않고 있다. 주변에서는 “이제 시집갈 나이”라고 재촉하지만 김 씨 마음에 드는 남자가 아직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 역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하라.”며 김 씨 자매의 결혼을 재촉하지 않고 있다.
     
[장면 2]
     
2013년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영화 <고령화 가족>에 등장하는 가족의 평균연령은 47세다. 사고뭉치 큰아들, 흥행 안 되는 영화만 만드는 둘째 아들, 이혼 후 다시 엄마 집으로 들어온 막내딸, 그리고 막내딸이 데려온 외손녀 등이 모두 나이 든 엄마(외할머니)에 의존하고 있다. <고령화 가족>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녀들의 현실과 이런 자녀들을 품에 안을 수밖에 없는 부모세대의 노후 현실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부터 ‘기생 독신’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던 일본은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총무성 추계에 의하면 2010년 기준 35∼44세의 연령대에서 6명 가운데 1명꼴인 약 295만 명이 미혼인 채 부모와 동거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같은 연령대의 16.1%에 해당하며 1990년의 112만 명, 2000년의 159만 명에서 2~3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기생 독신’이라는 용어를 만든 일본 주오(中央)대학의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1990년대에 문제가 됐던 20∼30대의 캥거루족이 중년이 돼서도 부모에 의존하는 생활을 계속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자립하지 못하는 미혼자가 증가할 경우 저출산이 가중되고, 생활보장대상자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캥거루족’ 경고등이 켜졌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15~34세 청년 인구 가운데 일을 하지도 않고 구직 활동도 포기한 숫자가 100만8,000명에 달한다. 전체 청년 인구는 2003년 1,475만 명에서 2011년 1,346만 명으로 129만 명이 줄었지만, 캥거루족은 같은 기간 75만1,000명에서 100만8,000명으로 25만7,000명이나 증가했다. 15~34세 청년 100명 가운데 7.5명이 캥거루족에 속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에서 캥거루족이 사회문제로 등장하는 반면,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구미에서는 다 큰 아이들이 부모 집에 붙어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부모는 다 큰 아이가 독립하지 않고 부모 집에서 출퇴근할 경우 ‘하숙비’를 내라고 하고, 아이는 당연히 그 돈을 지급한다. 그 정도로 부모와 아이 모두 독립적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노후생활에 부담되는 것을 꺼린다. 구미사회 전반적으로 그리고 전통적으로 20세 이상의 성인 자녀와 부모가 함께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캥거루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 노후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50대와 60대의 어깨를 가볍게 해야 한다. 기대수명의 증가로 인해 노후 불안은 과거보다 더 커지고 있다. 이처럼 갈수록 어려워지는 노후생활에 더해서 독립하지 못한 자녀까지 부담된다면 50대와 60대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것이다.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자녀들을 좀 더 독립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자꾸 부모에 의존하는 상황은 자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녀는 더 의존적이 되고, 부모는 노후생활이 더 힘들어진다. 50대의 경우 노후준비를 위해 개인연금 저축에 가입해야 하는데, 그 돈으로 아이들 뒷바라지를 계속해야 한다면, 노후생활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부모는 부모 대로 힘들고 자녀는 자녀대로 힘들다. 
     
물론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주요 도시의 높은 집값과 물가를 고려한다면 자녀들이 독립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내버려둘 수는 없다. 국가에서 청년들의 주택 독립, 일자리 독립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청년들의 독립은 고령자들의 노후생활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 주택, 결혼, 출산, 육아 등 생애주기에 맞춰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과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 큰 캥거루를 곧 은퇴할 또는 이미 은퇴한 노부모가 혼자서 맡아서 키우는 것은 곤란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그리고 시스템적으로 캥거루를 독립시키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독립하기 어려운 캥거루 청년들을 더는 노부모에게만 떠맡겨선 안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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