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1.21'이라는 숫자에 주목해야 한다. 1.21은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다. 홍콩,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세계 최저 수준이다. 여기서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15세에서 49세까지의 가임기 간에 낳는 평균 자녀 수를 말한다.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1은 되어야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이 그 절반 정도에 불과하여 조만간 인구가 감소한다고 걱정이다. 인구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25세에서 49세까지의 핵심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게 더 문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청년층 인구의 비율이 높아야 한다.
1.21이라는 숫자가 경제적으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의 추계에 따르면, 현재의 저출산 상태가 지속할 경우 2034년경에는 우리나라 대학 179곳 중 71곳은 문을 닫아야 한다. 대입 수험생이 2014년 66만여 명에서 2034년에는 39만여 명으로 감소하고, 대학의 평균 충원율도 87%에서 52%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숫자도 3만 8,000여 명이나 줄어야 한다.
물론 우리도 출산율이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 베이비붐이 일었던 1960년엔 합계출산율이 6.0이나 되었으나 1983년에 2.1로 급락한 후 현재 1.21까지 내려왔다. 문제는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수립하여 정책 역량을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성공 사례도 많다. 프랑스는 1995년 출산율이 1.65까지 하락하자 국가 차원의 저출산 대책을 시행했고 가족수당 확대 지급, 육아휴직 활성화, 미혼모 대책 등을 통해 2012년 현재 2.01로 선진국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스웨덴도 출산율이 1995년에 1.5까지 하락했지만, 부모휴가제도의 도입 등 남성의 육아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출산율이 반등하여 2014년 기준 1.91까지로 올라왔다.
국내에도 성공 사례는 있다. 2014년 기준 해남군은 합계출산율이 2.43으로 전국 최고다. 전남지역 평균보다 2배가량 높다(2010년 1.66, 2011년 1.52, 2012년 2.47, 2013년 2.34). 서울시의 0.98에 비하면 2배 이상이다. 시골 대부분에서 겪는 저출산 고령화와 그로 인한 인구 감소의 문제에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 낳는 것을 자랑스러운 일로 축하해주고, 공동체가 함께 키워간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물론 해남군에도 자녀양육 수당은 있다. 첫째 300만 원, 둘째 350만 원, 셋째 6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돈 준다고 애 낳겠다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다. 아이를 낳으면 지역신문에서 축하 광고를 해준다. 이름도 지어준다. 소고기와 미역을 보내준다. 예방접종도 무료로 해준다. 공공 산후조리원을 만들어서 산모가 마음 편하게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낳는 것이 중요하고 축복받을 일이며 마을 전체가 함께 키워간다는 분위기를 조성해준 것이 성공 요인이다.
그런데 왜 서울은 0.98일까? 1982년에 2.05, 1998년에 1.26, 2007년에 1.06, 2014년에 0.98로 하락 추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해남은 숫자가 올라가는데 서울은 숫자가 계속 낮은 상태에 머무르는 이유가 뭘까? 물론 서울만 낮은 것은 아니다.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등 대도시 역시 전국 평균(1.21)에 못 미치고 있다. 그만큼 대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집값이 비싸다 보니 주택마련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결혼이 늦어지고, 아이를 낳는 것이 늦어지고, 그러다 보면 둘째 낳을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이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어려우니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게 되고 이 역시 저출산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문제는 많다.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고, 남성의 가사분담이 어려운 것도 큰 문제다. 2015년에 발표된 자료를 보면 한국 남성의 육아 참여 시간은 하루에 6분에 불과했고, OECD 30개국 중 30위였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남성의 5배에 달했다. 정부 정책 혼자서 모든 사회문제가 중첩된 저출산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합심해야 하고,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을 도와줘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부담 없는 자녀양육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집값도 안정시키고, 청년 일자리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모든 노력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저출산 문제가 풀릴 수 있다. 1.21이라는 숫자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숫자가 말하는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교육 시장, 초등학교 선생님, 대학교수, 기업, 정부 모두가 아이들의 출산율 숫자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