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덴마크 사람들의 별명은 ‘해피 대니쉬(Happy Danish)’다. 행복순위를 비교하는 여러 기관의 조사결과에서 항상 상위권에 속한다. 예를 들어, 유엔이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는 2013년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41위에 그쳤다. 2016년에 한국은 58위로 더 떨어졌다.
덴마크 사람들이 이처럼 행복해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10가지 비결을 정리해놓은 책이 밀레네 뤼달의 《덴마크 사람들처럼》이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휘게(hygge)’라는 단어다. ‘휘게’를 충분히 즐겨라. 행복도 세계 1위 덴마크의 10가지 비결 중 하나라고 한다. 여기서 ‘휘게’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과 아늑한 분위기를 뜻한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양초를 밝힌 따뜻한 분위기에서 식사하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때 휘게라고 한다. 그래서 12월은 덴마크에서 가장 휘게다운 달이다. 온 나라가 수백만 개의 양초를 밝히고 모여서 따뜻하게 데운 포도주를 마시거나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 때문이다. 덴마크에서 양초는 휘게의 순간에 빠지지 않고 동참한다. 우리는 과연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족, 이웃, 지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가정과 여가생활을 중요하게 여긴다. 오후 5시경에 퇴근해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경제활동 인구 중 17%는 아이와 가정을 돌보기 위해 재택근무를 한다. 부모가 오후 4시에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가족을 돌보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근무시간을 조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다면 일과 가정이 균형을 찾기 쉽고,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감은 높아지게 된다. 가정과 사회에서 자녀 보육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출산율도 높아지는 부수적 효과도 거두게 된다.
덴마크 사람들처럼 우리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시하고, 일찍 퇴근하여 가족이나 친구들과 휘게를 충분히 누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겸손하고, 서로 배려하고, 상대방을 믿고 정부를 신뢰한다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겠다. 우리의 현실과 덴마크는 얼마나 다른가?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부족하고,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소득 격차는 자꾸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태다 보니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 순위가 41위(2013)에서 47위 (2015)로, 그리고 다시 58위(2016)로 하락하고 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대부분 100m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 혼자만 마라톤 상태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다들 왈츠를 추고 있는데 나 혼자서 디스코나 고고를 출 수는 없다. 결국,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아야 하고, 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서로 비교하지 않게 된다. 일과 가정이 양립하도록 정시 퇴근이나 유연한 근무제를 정착시키는 것은 정부나 기업에서 도와줘야 할 일이다. 서로를 믿고 정부를 믿게 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의 룰’을 투명하게 만들고, ‘페어 플레이(공정한 경쟁)’가 정착돼야 가능해진다. 즉, 과정이 공정해야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 사람들은 소득의 40% 이상을 세금으로 내더라도 불만이 별로 없다. 조세부담률이 높으면서도 조세저항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정부가 허튼 돈을 쓰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정부 행정이 투명하고 부패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그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우리는 조세부담률이 낮으면서도 조세저항이 크다.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투명한 행정, 청렴한 행정을 오랫동안 실천하면서 신뢰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증세는 그런 후에나 부드럽게 가능해질 것이다.
덴마크 작가 ‘말레네 뤼달’은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 10가지를 정리해서 소개했다. 그중 하나는 ‘휘게’였다. 휘게 외에도 신뢰, 꿈과 끼를 키워주는 교육, 자유와 자율성, 기회균등, 현실적 기대, 공동체 의식, 돈에 초연한 태도, 겸손, 남녀평등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나하나 쉬운 게 없다. 단숨에 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유전자도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행복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적게는 50%에서 80%까지 유전자가 행복을 좌우한다고 한다. 남미 사람들의 행복감이 높고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사람들의 행복감이 낮은 것도 유전자 영향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행복 만들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휘게’와 더불어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얀테의 법칙’이다. 여기서 얀테는 우리나라의 ‘철수’처럼 덴마크에서 가장 흔한 보통사람을 가리킨다. 얀테의 법칙은 1933년 ‘악셀 산데모세’라는 작가가 쓴, 겸손을 주제로 한 ‘경구 모음집’이다. 예를 들면,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누가 너에게 신경 쓴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들지 마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글귀다. 이런 글을 읽고 자라서 그런지 덴마크 사람들은 겸손이 몸에 배었다. 덴마크 맥주인 칼스버그의 광고도 겸손하다. ‘아마도 세계 최고의 맥주’라는 카피를 사용할 정도다. 유럽에서 덴마크 축구팬들은 얌전하기로 유명하며, 페어플레이상을 여러 번 받았다.
범사에 감사하고 만족하라는 ‘얀테의 법칙’이야말로 우리가 비교적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도 3만 달러 가까이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역할은 계속되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위한 투자를 늘리 고, 복지 지출을 늘려서,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지속하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비교도 덜 하게 되고, ‘기대수준을 낮추는 일’도 가능해진다.
덴마크의 ‘얀테’처럼 우리나라의 평범한 국민이 서로 비교하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고, 겸손해지는 연습을 시작한다면, 다 가오는 미래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