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헬싱키 공항은 벌써 초겨울이었다. 노키아 계열사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비행기가 1시간 연착했다. 마중 나온 분들에 “늦어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웬걸, 이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회사에서 인터넷으로 이 비행기가 연착하는 것을 확인하고 시간에 맞춰 나왔다.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 미안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도 서비스가 제대로 안 되는 데, 핀란드는 1999년에,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이미 이런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이처럼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나라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노키아는 1999년에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되었다. 세계 120개국에 9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최첨단 통신회사였다. 휴대전화 시장의 30%를 노키아가 장악했다. 노키아의 전신은 1865년에 세워진 제지회사다. 핀란드의 풍부한 목재와 물을 활용하여 펄프를 만들고 종이를 만들었다. 나중에는 고무회사를 합병하여 타이어도 만들었다. 1912년에는 전기 케이블 회사를 세웠고, 1984년에 처음 무선 전화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제지회사와 타이어회사를 매각해버렸다. 아들 회사가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 회사를 팔아버린 것이다. 비즈니스는 그런 것이다.
노키아가 망했다.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애플의 아이폰 한 방에 휘청거렸다.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통신기기에서 손 안의 컴퓨터로 순식간에 경쟁의 그라운드가 변해버렸다. 이 상황에 대응이 늦었다. 운동장을 바꾸고, 게임의 룰을 바꾸고, 제품의 콘셉트를 바꿔버리는 창의적 역량에서 애플이 노키아 보다 앞섰다. 2013년 9월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를 인수했다.
노키아는 망했지만, 핀란드는 망하지 않았다. 핀란드 경제는 더 강해졌다. 노키아의 많은 직원이 실업급여를 2년가량 받으면서 재취업하고 벤처기업을 창업하면서 핀란드 경제의 허리와 하체가 튼튼해졌다.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앵그리버드’ 등 핀란드산 게임들이 대박을 터트린 데 힘입어 많은 신생 게임개발회사들이 핀란드 경제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기술혁신청(TEKES)을 통해 신생회사를 지원하고 2014년부터 북유럽 국가 중 가장 낮은 법인세(20%)를 부과하는 등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공룡기업’ 노키아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작고 빠른 벤처기업들이 노키아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요즘 우리 경제에 구조조정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중화학공업과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다. 거제의 눈물, 목포의 눈물, 울산의 눈물이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근로자가 구조조정에 따른 실직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요즘 같으면 다른 직업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처럼 실업급여가 충분히 그리고 오래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새로운 직업과 기술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노키아는 망했어도 핀란드는 더 건강해진 것처럼, 한국도 구조조정 이후 기업들의 생태계가 더 건강해지고 혁신적으로 변해야 한다. 실업의 충격을 흡수할 안전망을 확충하고, 새로운 기술과 직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앵그리버드’ 같은 히트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기술창업을 장려해야 한다. 그런 경제가 튼튼하고 오래가는 경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