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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17. 2017

01. 정보를 쥔 남자 - 스노든과의 만남

<스노든의 위험한 폭로>

“나는 내가 말하는 모든 것, 내가 하는 모든 일, 내가 말하는 모든 상대, 창작이나 사랑 또는 우정의 모든 표현이 기록되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_ 에드워드 스노든

     
2013년 6월 3일 월요일 / 홍콩 네이선 거리, 미라 호텔
      
이 사건은 이메일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정보기관의 수석 요원입니다.”
   
이름도 없고 직책도 없고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nwald)에게 비밀스러운 정보원의 메일이 도착했다. 이 정보원은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실체가 없는 존재, 온라인 유령일 뿐이다. 어쩌면 가공인물일 수도 있다. 아니, 어떻게 진짜일 수가 있겠는가? 국가안보국에서 대규모 정보 누설이 발생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워싱턴 DC 근처 포트미드에 위치한 미국 최고의 정보수집 기관이 난공불락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NSA가 하는 일은 비밀이다. 그 어떤 일도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다. 워싱턴 엘리트층 사이에서 NSA는 “그런 기관은 없다(No Such Agency)”라는 뜻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할 정도다.
     
그러나 이 불가사의한 사람은 중대한 일급비밀 서류에 접근할 수 있는 듯했다. 정보원은 그린월드에게 극비 NSA 파일 샘플을 보내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이 유령이 어떻게 그토록 손쉽게 극비 문서를 훔칠 수 있는가는 수수께끼다. 그 문서들이 진짜라고 한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내용을 폭로하는 셈이다. 
     
문서에 따르면 백악관은 적대국,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러시아 같은 적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와 같은 이른바 동맹국뿐 아니라 미국의 일반 시민 수백만 명의 통신 내용마저 염탐하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대규모 염탐 행위에 동참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이었다. 미국의 NSA에 해당하는 영국 기관인 정보통신본부, 즉 GCHQ는 영국 시골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긴밀한 정보공유 관계를 맺었다. 어떤 사람들은 영국이 미국의 충직한 앞잡이라고 말하곤 했다. 놀랍게도 이들 문서는 NSA가 영국 감시 활동에 수백만 달러를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었다.
     
그린월드는 이 내부 고발자를 만나기로 했다. 정보원은 더 많은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그린월드가 사는 곳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홍콩으로 올 것을 요구했다. ‘그는 홍콩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것일까?’ 그린월드는 그 장소가 ‘기이’하고 어리둥절하다고 느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주룽에 있는 미라 호텔이다. 미라 호텔은 관광지 중심의 세련되고 현대적인 건물로 홍콩 섬으로 가는 스타 페리 선착장에서 택시를 타면 금방 닿는 곳이다.     

그린월드는 미군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 로라 포이트러스(Laura Poitras)와 동행했다. 포이트러스는 처음부터 그린월드를 이 유령에게로 인도하는 중개인 역할을 해왔다. 두 사람은 꼼꼼한 지시사항을 전달받았다. 미라 호텔 내에서 한산하지만, 완전히 외진 곳도 아닌, 대형 플라스틱 악어 모형 옆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들은 사전에 교환하기로 약속한 문장을 받았다. 정보원은 루빅 큐브를 들고 있을 것이다. 
     
그 정보원의 이름은 스노든이다. 비밀에 휩싸인 그는 노련한 스파이 같았다. 극적인 상황에 적합한 재능을 갖춘 사람인 듯도 했다. 그린월드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종합해볼 때, 이 정보원은 국가 정보기관에 속한 중년의 베테랑이 분명했다.
     
“그가 상당한 연령대의 관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나이는 60세 정도일 테고, 반짝이는 금색 단추가 달린 푸른 블레이저를 입고 희끗희끗한 머리에 이마가 까졌으며, 실용적인 검은 구두를 신고 안경을 쓰고, 클럽 타이를 매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는 CIA 홍콩 국장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죠.”
   
실제로 잘못된 추측이긴 했지만, 이 판단은 두 가지 단서에 근거하고 있었다. 정보원이 일급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과 정치 분석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보원이 처음 보내온 비밀문서 묶음에는 스노든 개인의 성명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성명서에서 그는 자신의 행위 전반의 동기를 설명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감시국가라고 평가한 그 사실의 규모를 밝히기 위함이라고 했다. 성명서에서 그는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한 기술이 법의 한계를 훨씬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특정 의미를 벗어난 감시를 의미했다. 정보원은 NSA의 야심이 도를 지나쳤다고도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대륙 사이를 이동하는 디지털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를 배경으로 NSA는 국외 정보수집이라는 원래 임무에서 탈선해 모든 사람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미국 내에서 수집한 정보와 해외에서 수집한 정보가 모두 포함된다. NSA는 그야말로 대중관찰 조사에 깊숙이, 그리고 매우 은밀한 방법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적어도 정보원은 그렇다고 말했다.
     
그린월드와 포이트러스는 예정보다 빨리 악어 모형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린월드는 중국 문화권에서 악어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무엇이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정보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최초 만남이 실패하면 미라 호텔 내 화려한 쇼핑몰과 특정 레스토랑을 잇는 특색 없는 통로에서 다시 접선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그린월드와 포이트러스는 두 번째 접선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정보원이 보였다. 창백한 낯빛에 팔다리가 가느다랗고 초조해 보이는, 터무니없이 젊은 청년이었다. 충격에 빠진 그린월드 눈에 그 청년은 겨우 수염이 날까 말까 한 정도로 보였다. 그는 하얀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흐트러진 루빅 큐브를 들고 있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일까’
“그는 23살 정도로 보였습니다. 나는 정말로 당황했죠. 도저히 이해가 안 됐어요.”
   
그 젊은이는 (정말로 그가 정보원이 틀림없다면) 처음에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암호화된 지시문을 보내왔었다.
     
그린월드: 저 레스토랑은 몇 시에 문을 엽니까?
정보원: 정오에 엽니다. 하지만 저기 가지 마세요. 음식이 형편없어요.
     
암호 교환은 좀 우스꽝스러웠다. 긴장한 그린월드는 자신의 대사를 말하면서 웃음을 참느라 애써야 했다. 암호문을 대자, 스노든이 짧게 대답했다.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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