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민란이 일어난 기해년 _조송(曹松)

<꽃 지는 시절 그대를 다시 만나다>

by 더굿북

澤國江山入戰圖(택국강산입전도) 물 많은 장강일대 강산 전쟁 벌어지니

生民何計樂樵蘇(생민하계락초소) 백성들이 어떻게 초근목피로 살아갈까
憑君莫話封侯事(빙군막화봉후사) 청컨대 그대 제후가 된다고 자랑 마라
一將功成萬骨枯(일장공성만골고) 한 장수의 공을 위해 일만 병사 죽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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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澤國江山入戰圖(택국강산입전도) : 택국(澤國)은 강과 호수 등의 물이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 수국(水國) 내지 수향(水鄕)과 같은 말이다. 여기서는 장강과 한수 일대를 지칭한다. 전도(戰圖)는 작전지도를 뜻한다.

- 生民何計樂樵蘇(생민하계락초소) : 인민(人民)과 같은 말이다. 하계(何許)는 ‘어찌 살아갈까’의 뜻이다. 여기의 ‘계’는 계산 또는 고려의 뜻으로 살아갈 계책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초소(樵蘇)의 ‘초’는 땔나무를 하는 일, ‘소’는 풀을 베어 땔감으로 쓰는 일을 가리킨다.

- 憑君莫話封侯事(빙군막화봉후사) : 빙군(憑君)은 청군(請君)과 같은 말이다. 여기의 ‘빙’은 기대거나 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군’은 통상적인 2인칭이다. 봉후(封侯)는 전공을 세워 제후에 봉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 一將功成萬骨枯(일장공성만골고) : 공성(功成)은 공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만골(萬骨)은 1만 명의 시체를 상징한다. 고(枯)는 들판에 널린 시체가 뼈가 드러나 이리저리 나뒹군다는 뜻이다.




‖감상‖
「기해세(己亥歲)」는 당나라 말기 당희종(唐僖宗)의 건부(乾符) 2년인 875년부터 중화(中和) 4년인 884년까지 10년 동안 진행된 이른바 ‘황소(黃巢)의 난’을 배경으로 한 시이다. 모두 2수(首)이다. 여기에 소개된 것은 인구에 회자하는 제1수이다.

건부 연간에는 전국에 기근이 닥쳐 사회적 불안은 절정에 달하였다. 염세(鹽稅)가 높아지는 데다 소금판매업자들이 소금값을 높여 폭리를 취하게 되자 소금밀매가 성행하며 전국 단위의 밀매 조직이 형성됐다. 이런 배경에서 밀매업자 우두머리 왕선지(王仙之)가 건부 원년인 874년에 난을 일으켰다. 얼마 후 지금의 산동성 일대의 밀매업자 우두머리인 황소(黃巢)가 난을 일으켜 왕선지와 합류했다. 왕선지가 관군에게 피살된 후 황소가 반란군의 총사령관인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 되었다. 「기해세」는 바로 이 와중에 나온 것이다.

당시 황소는 난을 일으키고 장강을 건너 북상했으나 관군에 밀려 이내 강동으로 달아났다. 관군이 계속 추격을 했으면 어렵지 않게 난을 평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관군을 지휘하던 장수는 당시의 위정자들이 나라가 위급하면 병사를 동원해 이용만 하고 다시 태평한 세월이 돌아오면 병사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태를 미워한 나머지 전쟁이 끝나지 않도록 적을 살려 두어야 한다며 섬멸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덕분에 다시 세력을 회복한 황소는 이듬해인 광명(廣明) 원년 880년에 60만으로 불어난 대군을 이끌고 낙양에 이어 장안까지 함락시켰다. 놀란 당희종이 지금의 사천 땅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황소는 장안에 스스로 정권을 세운 뒤 국호를 대제(大齊), 연호를 금통(金統)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내 터키계 이극용(李克用)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격파돼 동쪽으로 퇴각한 뒤 산둥성 태산(泰山) 부근에서 자결했다. 이 난 이후 당나라는 23년 동안 명맥만 유지하다가 이내 붕괴하고 말았다.

황소가 반란군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하던 건부 6년인 879년의 기해년(己亥年)에 나온 「기해세」의 제2수 가운데 여기에 소개된 제1수의 마지막 구절인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는 천고의 명구이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한 장수가 공을 세우면 그 뒤에는 수많은 병사의 희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대부분 장수는 병사들의 무수한 희생을 디딤돌로 삼아 부귀영화를 누리는 부조리가 빚어진다. 나라가 패망할 때는 더욱 그렇다. 「기해세」는 바로 이런 부조리를 신랄하게 꼬집은 것이다. 21세기 현재까지 인구에 회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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