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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18. 2017

04. 메뉴 순서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파스타는 검은 접시에 담아라>


어느 프렌치 식당에 갔더니 소믈리에가 다음과 같은 와인 리스트를 주고 사라졌다. 자, 당신은 몇 번 와인을 주문하겠는가? 참고로 와인병 아래의 브랜드 이름은 일부러 같은 것으로 했다.


23, 24번을 고른 당신은 ‘소수파(minority)’다. 하지만 와인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9, 10, 15, 16번을 고른 당신은 마작에 비유하자면 “일단 가운데부터 둘까요?” 하고 안전한 패를 두는 신중파다. 어쨌든 타당한 와인을 고르는 타입이다.

1, 2번을 고른 당신은 다수파(majority)다. “아무거나? 아니, 아니……”라고 하는, 비용이나 취향 면에서 자신에게 딱 맞게 선택하려는 타입이다.

그러면 아래의 표를 보기 바란다. 이것은 필자의 회사에서 클라이언트의 협력을 받아 그 식당의 고객 100명에게 방금 전에 예로 든 와인 리스트를 준 후 설문조사를 실시해 집계한 결과다.


이 와인 리스트를 보니 비슷한 것이 생각나지는 않는가? 그렇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판기(자동판매기)다. 캔이나 페트병 음료가 서너 줄씩 전시되어 있는 자판기 말이다.


자판기는 마케팅의 축소도

실제 진열하는 방법에 주목해서 보았더니 어디나 왼쪽 위에는 자판기를 관리하는 업체가 팔고 싶어 하는 상품과 주력 상품이 배치되는 경향이 있었다. 왼쪽 윗줄은 제조업체의 의도가 분명히 느껴지는 중요한 장소라는 뜻이다. 코카콜라사가 관할하는 자판기라면 왼쪽 윗줄에 반드시 코카콜라가 진열되어 있다. 여러분도 부디 코카콜라사의 자판기를 볼 기회가 있으면 왼쪽 윗줄을 보기 바란다.

그러면 각 설치 장소는 어떠할지 조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자.

예를 들어 공중목욕탕 앞이나 옆의 자판기를 조사한 경우, 결과는 왼쪽 상단에 스포츠음료 21개, 미네랄워터 14개, 차 종류 15개…… 등이 있었다. 즉, 조사한 목욕탕의 근처에 설치된 자판기의 50퍼센트 가까이가 스포츠음료를 왼쪽 윗줄에 두었던 것이다 .

옛날부터 “목욕탕 하면 커피우유!”라는 말을 여러분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목욕을 하고 나면 늘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목욕탕에만 가면 어쩐 일인지 커피우유가 생각난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도 ‘커피 종류가 주력 상품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달랐다.

그러면 달달한 커피 종류는 어디에 둘까? 두 번째 줄에 많았다. 커피 계열이 46.2퍼센트나 차지했다. 두 번째라니 목욕탕 하면 커피우유를 떠올렸던 예전의 유행도 사라지고 커피 계열은 진즉 조연으로 밀려난 모양이다. 이제 목욕탕에서는 커피우유를 마시는 풍경을 보기 힘들어진 걸까?

또 법원에서는 자판기 대부분의 왼쪽 윗줄에 차가, 그리고 맨 윗줄에는 차 외에 주스와 칼피스, 밀크티 등 단맛이 나는 음료가 많았다. 아무래도 재판 전후에 ‘산뜻한 기분으로 재판에 들어가고 싶다’든가, ‘달달한 음료수를 마시고 한숨 돌리고 싶다’는 심경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법원은 그렇게 즐거운 곳도 아니니까…… .

관광지에서는 자판기 왼쪽 윗줄에 단연코 차가 많았다. 진열하는 방식도 흥미진진한데, 외견상 경치에 맞춘 색깔과 디자인을 한 자판기가 꽤 많아서 그것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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