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승자가 되라>
「고조본기」는 유방이 팽성 전투에서 참패해 가까스로 사지를 빠져나와 황급히 도주할 당시 제후들이 모두 유방을 배반하고 다시 초나라에 붙었다고 기록했다. 천하대세는 팽성 전투를 계기로 다시 항우에게 유리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다시 이를 뒤집는 듯한 사태가 빚어졌다. 바로 항우가 어렵사리 세워놓은 제나라 왕 전가(田假)가 항우에게 패한 전영의 동생 전횡의 공격을 받고 초나라로 도주한 것이다.
대노한 항우는 곧바로 전가의 목을 베어버렸지만, 이는 전가의 목을 베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제나라가 계속 북쪽에서 위협을 가하면 항우는 서쪽의 유방과 동쪽의 전횡에게 양면협공을 당할 소지가 컸다. 게다가 북쪽의 팽월과 남쪽의 경포까지 유방에게 가세하는 일이 빚어지면 그야말로 옴짝달싹도 못 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일은 그렇게 진행됐다.
이겨도 방심하지 말고 졌다면 절치부심하라.
어떤 싸움이든 종료가 선언될 때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역전에 역전이 거듭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지전의 승리에 도취해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빈틈을 보이게 되고, 그 틈을 노려 상대가 공격해 들어올 때 졸지에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 항우가 바로 이 덫에 걸렸다. 유방이 반사 이익을 누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당시 유방은 팽성 전투의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병법에 나오는 온갖 궤계(詭計)를 모두 동원했다. 팽성 전투 참패 후 초심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제후들 대부분이 천하대세가 항우 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해 분분히 다시 항우 쪽에 붙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건달 출신 유방이 제후들의 이런 염량세태(炎凉世態)를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래서 ‘통 큰’ 약속을 미끼로 내걸어 제후들을 다시 끌어들였다.
「유후세가」에 따르면 당시 장량은 심적으로 크게 위축된 유방에게 국면을 일거에 바꿀 방안을 제시했다. 한신과 팽월을 끌어들이는 계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자 유방이 크게 기뻐하며 군신들을 모아 놓고 이같이 호언장담했다.
“나는 이제 함곡관 이동의 땅을 현상(懸賞)으로 내놓아 공을 세운 사람이 갖도록 포기할 생각이다. 누가 가히 나와 함께 이런 공을 이룰 수 있겠는가?”
유방은 장량의 계책을 들은 뒤 독자적인 판단하에 이같이 제안한 것이다.
득국득천하 - 현실 분석에 따른 승부수를 띄워라.
원래 그는 단 한 치의 땅도 누구에게 떼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수시로 한신을 견제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홍구 강화 회담 이후 한신 등이 가담하지 않은 상황에서 항우 군사의 뒤를 쳤다가 오히려 크게 패했다. 이를 계기로 유방은 연합 세력을 결성해야만 항우를 제압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됐다. 그래서 장량의 계책을 들은 뒤 크게 기뻐하며 독자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유방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건달 출신인 유방이 과연 이런 계책을 내놓았을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선입견에 불과하다. 유방은 비록 건달 출신이긴 했으나 천하를 틀어쥐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그랬기에 ‘통 큰’ 결단이 가능했다. 이런 결단은 잔량과 진평 등 당대 최고의 책사들이 아무리 천하의 지낭(智囊)을 자랑할지라도 결코 행할 수 없다. 일인자와 이인자의 길이 이토록 다르다. ‘초한지제’ 당시 만만히 보던 항우로부터 되치기를 당하면서 위기의식에 휩싸인 유방이 나름 ‘통 큰’ 결단으로 역전극을 꾀한 것은 오로지 그가 천하를 거머쥐고자 하는 확고한 목표를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치국치천하 - 말 위의 영광을 잊고 천하를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후 ‘치국치천하’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게 됐다. 건달 출신인 유방은 득국득천하의 이치를 생래적으로 터득한 덕분에 현란한 후흑술로 천하를 거머쥐었다. 수많은 군웅을 수족처럼 부려먹은 뒤 가차 없이 토사구팽의 제물로 삼았다. 이 과정은 치국치천하가 아닌 득국득천하의 연장선에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이후에 맞닥뜨린 치국치천하의 이치에 대해서는 전혀 배운 바가 없었다. 이를 최초로 깨닫게 해준 인물이 있었다. 바로 육가(陸賈)였다. 「역생육가열전」에 따르면 그는 원래 초나라 출신이다. 구변이 좋은 그는 세객으로 명성을 떨치며 유방의 천하 평정에 나름 일정한 공을 세웠다. 늘 유방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사자로 나가 제후들에게 유방의 견해를 대변했다.
유방도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사상 최초의 평민 황제로 즉위한 뒤 그를 남월에 사자로 파견했다. 당시 남월의 왕은 진나라 때 종실의 장령으로 활약한 조타(趙佗)였다. 그는 천하가 시끄러운 틈을 타 남월을 평정한 뒤 남월왕을 칭했다. 한고조 유방도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육가를 보내 남월왕의 인수를 내리며 회유하도록 했다. 육가가 남월 땅에 이르자 조타가 몽둥이 모양의 북상투를 틀고 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채 육가를 맞이했다. 육가가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족하는 중원 출신으로 친척과 형제의 무덤이 조나라 진정 땅에 있습니다. 지금 족하는 천성을 위반하고 관대(冠帶)을 버린 채 보잘것없는 월나라로 천자에 맞서는 적이 되려고 합니다. 그 화가 장차 몸에 미칠 것입니다. 진나라는 정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제후들과 호걸이 일시에 들고 일어났습니다. 유독 한나라 왕이 남보다 먼저 무관을 통해 함양에 입성했습니다. 항우가 약속을 저버린 채 스스로 서초패왕의 자리에 오르며 제후들 모두 휘하에 두었으니 매우 강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방이 파촉(巴蜀)에서 일어나 채찍을 휘둘러 인민을 부리는 천하인 이른바 편태천하(鞭笞天下)를 만들었습니다. 제후들을 정복한 뒤 마침내 항우를 주멸하게 된 배경입니다. 천하가 어지러워진 지 5년 만에 천하가 평정됐으니 이는 인력으로 인한 게 아니라 하늘이 그리한 것입니다.”
“지금 천자는 대왕이 남월의 왕이 된 후 천하를 위해 폭도와 반역자를 죽여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한나라 장상들이 군사를 동원해 대왕을 주살하고자 했으나 천자는 백성의 노고를 불쌍히 여겨 잠시 쉬도록 한 뒤 신을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대왕에게 왕의 인장을 하사하고, 천자의 부절을 나눠줌으로써 향후 사자를 서로 오가게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대왕은 응당 교외까지 나와 사자를 영접하고 북면하여 칭신(稱臣)해야 하는데도 도리어 새로 건립돼 안정되지 못한 월나라를 갖고 이처럼 강경하게 나온 것입니다. 한나라 조정이 이를 알면 대왕 선조의 묘를 파낸 뒤 시신을 불태우고 일족을 모두 없앨 것입니다. 나아가 편장 한 사람당 10만 대군을 이끌고 월나라를 치게 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월나라 백성이 대왕을 살해하고 한나라에 투항할 것입니다. 이는 손을 뒤집듯 쉬운 일입니다.”
조타가 매우 놀라 벌떡 일어나 좌정한 뒤 육가에게 사죄했다.
“만이의 땅에 오래 살다 보니 실례가 많았습니다.”
마침내 육가가 조타에게 남월왕의 인장을 넘겨주고 한나라에 대한 칭신을 약속받았다. 한나라로 돌아온 뒤 복명(復命)하자 유방이 크게 기뻐하며 그를 간언 등의 언론을 담당한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임명했다.
당시 육가는 늘 유방에게 진언할 때 『시경』과 『서경』 등을 인용했다. 유방이 『시경』과 『서경』 등의 유가 경전을 이해할 리 만무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표시를 하지 않았으나 육가가 진언할 때마다 짜증이 났다. 하루는 참다못한 유방이 크게 화를 내며 육가를 꾸짖었다.
“나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 『시경』과 『서경』 따위를 어디에 쓰겠는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어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옛날 은나라 탕왕과 주무왕은 비록 무력을 동원해 천하를 얻었지만 이내 민심에 순응해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문무를 섞어 쓰는 게 바로 나라를 길이 보전하는 방법입니다. 옛날 오왕 부차와 진나라의 지백(智伯)은 무력을 지나치게 사용하다가 패망했습니다. 진시황의 진나라는 가혹한 형법만 사용하며 치술(治術)을 바꾸지 않다가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인의를 행하고 옛 성인을 본받았으면 폐하가 어떻게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유방도 치국치천하의 이치가 득국득천하의 이치와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만 치국치천하의 이치를 배운 사실이 없어 이같이 억지를 부린 것이다. 육가의 얘기를 듣고는 이내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이같이 주문했다.
“시험 삼아 나를 위해 진나라가 천하를 잃은 배경과 내가 천하를 얻은 원인, 그리고 이전 국가의 성패 사례 등을 저술해 올리도록 하시오.”
육가가 곧 국가 존망의 이치를 담은 글을 지어 올렸다. 모두 12편이었다. 「역생육가열전」은 육가가 매 편을 지어 올릴 때마다 유방이 크게 칭송하지 않은 적이 없고,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 만세(萬歲)를 불렀다고 기록했다. 당시 그가 지어 올린 글은 이후 책으로 묶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게 바로 득국득천하와 치국치천하의 이치를 논한 『신어(新語)』이다.
인구에 회자하는 ‘마상득천하(馬上得天下), 마하치천하(馬下治天下)’ 성어는 바로 이 일화에서 나왔다. 득국득천하와 치국치천하의 이치를 이처럼 간명하게 요약한 성어도 없다. 말 위에서 천하를 잡은 유방이 천하 순행 도중 공자의 사당에 가 무릎을 꿇고 제사를 올려 천하의 인심을 산 것도 말에서 내려와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는 육가의 조언을 그대로 실천한 덕분이다. 득국득천하와 치국치천하의 이치를 일깨워준 육가도 뛰어나지만 이를 곧바로 실천해 천하의 인심을 산 유방의 행보 또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