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들이 서울을 다녀갔다.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 `제3인류`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와 세계`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로봇의 부상`의 마틴 포드는 강연·인터뷰·대담을 통해 한국 독자들과 교감하면서 저서 판매부수를 끌어올렸다. 이 중에서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은 하라리가 아닌가 싶다.
이스라엘 태생으로 2002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하라리는 히브리대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1년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로 펴낸 `사피엔스`가 3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 명사 반열에 올랐다.
그는 `사피엔스`에서 인류 역사의 진로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 3대 혁명에 의해 형성됐다고 주장하고, 끄트머리에서 "과학기술에 의해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총 20장 중에서 19장은 인류의 역사에 할애하고, 마지막 20장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에서 인류의 미래를 아주 짤막하게 언급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하라리는 한국에 와서 인터뷰와 대담을 통해 줄곧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이력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역사학자가 아니라 미래학자 또는 과학기술자로 착각했을 것이다.
하라리는 20장에서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가 종료되고 과학기술에 의한 진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 방법으로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비(非)유기물공학 등 세 가지를 꼽았다. 미래 인류, 곧 호모 퓨처리스(Homo futuris)가 슈퍼인간과 사이보그가 될 것으로 보는 견해는 이미 과학자 사이에서 상식이 된 지 오래이다.
슈퍼인간은 생명공학에 의해 유전자가 보강되는 존재이고, 사이보그는 과학기술에 의해 심신의 기능이 향상되는 사람이다. 이처럼 과학기술로 인간의 정신적 및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나 신념을 통틀어 인간능력증강(human enhancement) 또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라고 한다.
영국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2002년 발표한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은 인류가 생명연장 요법이나 인체 냉동보존술 같은 인간능력증강 기술에 의해 트랜스휴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하라리는 트랜스휴머니즘 이론가들의 견해를 빌려 와서 생명공학과 사이보그공학을 언급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번역판이 출간되기 3개월 전인 2015년 9월 2일자 이 칼럼에 `사피엔스`를 소개하면서 "하라리처럼 호모 사피엔스가 슈퍼인간이나 사이보그인간에게 지구의 주인 자리를 내어놓게 될 운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한둘이 아니다"고 토를 달았던 것이다.
게다가 미래 인류에 영향을 미칠 제3의 방법으로 언급된 비유기물공학은 다소 생뚱맞고 오류에 가깝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례로 소개된 유전 프로그래밍(genetic programming), 컴퓨터 바이러스,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Blue Brain Project)는 인류의 미래보다는 기계의 기능 향상에 관련된 기술이기 때문이다. 유전프로그래밍(GP)은 생물의 진화 과정을 이용해 컴퓨터 프로그램에 진화하는 기능을 부여하는 기법이며, 컴퓨터 바이러스는 자기복제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보기이다. 유전프로그래밍과 컴퓨터 바이러스는 인공생명(artificial life)의 핵심이다. 인공생명은 한마디로 `생물체처럼 자식을 낳고 진화하는 기계`를 만드는 컴퓨터 과학이다.
한편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는 스위스 계산신경과학자 헨리 마크램이 컴퓨터로 뇌를 본뜨는 연구인데, 2013년 `인간 뇌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로 발전했다. 하라리가 20장에 인공생명, 마크램, 인간 뇌 프로젝트(HBP)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서울에 나타난 40세 역사학자의 입을 통해 미래 인류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박수를 아끼지 않는 일부 청중이나 독자가 기대한 만큼 공감할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 글 ㅣ 이인식 인공지능문화포럼 대표 / 지식융합연구소장
- 매일경제신문 5월 28일자 게재
- 본 글은 저자의 허학을 받아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