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클레유오파트라처럼>
클레오파트라 공부법의 핵심은 세계적인 지식인들과 지속해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강의를 ‘잘’ 들어야 한다. ‘잘’ 듣지 못하면, 질문을 ‘잘’할 수 없다.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을 끌어내기 쉽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해외 석학들을 만나서 성장하기는커녕 퇴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주로 지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강연회나 토론회에 참석하면 할수록 바보가 되어간다. 그들 중에는 해외 석학들의 조언에 기초해서 국내 경제 정책이나 교육 정책 등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알다시피 그들의 정책은 도리어 우리나라의 경제와 교육을 망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멋대로 들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이런 우를 범하면 안 된다. 그런데 슬프게도 당신은 ‘잘’ 들을 수 없다. 이미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잘못’ 듣는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학교 교사나 학원 강사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그대로 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잘못’ 듣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것을 기초로 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함인데, 우리나라 교육의 ‘듣기’에는 ‘나’가 빠져 있다. 아니, 내 생각이라든가 내 의견 같은 것은 절대로 가지면 안 된다. 그럼 좋은 대학에 못 가니까. 하지만 이런 식의 ‘잘못’ 듣기는 선진국에 가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대표적으로 아이비리그에 합격한 한국인의 50% 가까이가 수업에 따라가지 못해서 중퇴한다고 한다. 즉 ‘잘’ 듣기에 실패해서 말이다.
당신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는가. 하버드에 입학한 어떤 한국인 학생이 기말고사에서 교수가 수업시간에 이야기한 내용을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적어냈더니 교수가 크게 분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생, 수업시간에 내가 이야기한 것들은 내 생각이라네. 자네의 생각이 아니라. 그런데 자네는 이번 시험에 내 생각을 죄다 훔쳤더군. 이건 F를 주고 마는 문제가 아니라네. 이건 도덕의 문제라네. 나는 자네가 절도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네.”
세계적인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잘’ 듣기란, 자기 생각이 살아 있는 듣기다. 그런데 당신은 잘못된 교육을 너무 오랫동안 받은 결과, 이런 듣기에는 무능하다. 한마디로 당신에게는 ‘잘’ 듣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코넬식 강의 정리법’과 ‘생각하는 인문학식 강의 듣기법’을 추천하고 싶다. 먼저 코넬식 강의 정리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코넬식 강의 정리법은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에 코넬대학교 교육학 교수였던 월터 포크가 개발한 것이다. 알다시피 코넬대는 아이비리그에 속해 있다. 교수진은 당연히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학생들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지식인인 코넬대 교수들이 보기에 코넬대 학생들은 자신들의 강의조차도 ‘잘’ 듣지 못하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잘’ 듣지 못하니 강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고, 잘못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잘못된 답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당시 코넬대 학생들은 세계적인 수준의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코넬식 강의 정리법은 노트를 네 영역으로 나누어서 쓴다. 주제(Thema) 칸에는 강의 주제, 강의를 들은 날짜, 강사의 이름 등 강의 관련 사항을 자유롭게 적는다. 기록(Record) 칸에는 강의 내용을 필기한다. 단 한국식 필기는 안 된다. 되도록 핵심 위주로 간략하게 적는다. 코넬식 노트는 기본적으로 코넬대 교수진, 즉 세계적인 지식인들의 강의를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계적인 지식인들은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마치 복사기로 복사하듯이 머릿속에 완벽하게 담아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강의를 기초로 새로운 생각을 하기를 원한다. 한국식으로 필기하다 보면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반면 코넬식으로 필기하면 강의를 들으면서도 ‘생각’할 여유가 있다. 기록(Record) 칸에는 강의 내용뿐만 아니라 강의를 들으면서 하게 된, ‘생각’들도 적는다. ‘생각’들 또한 뼈대 위주로 간략하게 적는다. 세계적인 지식인의 강의를 그저 듣는 것도 버거울 텐데 어떻게 ‘생각’까지 하면서 들을 수 있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강의를 듣기 전에 강의와 관련된 참고 도서 등을 적절히 찾아 읽으면서 강의 주제를 사전에 어느 정도 이해하고 또 주제와 관련하여 나만의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이렇게 하고 있다. 요약(Reduce) 칸에는 기록(Record) 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요약해서 정리한다. 이 과정은 강의가 끝난 뒤에 한다. 성찰(Reflect) 칸에는 강의가 끝난 뒤 혼자만의 공간에서 한 나 자신의 ‘성찰’을 적는다. ‘성찰’은 인문학적인 용어로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자기 자신을 찬찬히 되돌아본다는 의미다.
강의를 들었다는 것은 무언인가를 ‘배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배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흘려버릴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으로 삼을 것인가. 만일 후자를 원한다면 반드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배움의 내용과 배움 중에 한 생각들과 배움이 끝난 뒤 하게 된 생각들을 곰곰이 되씹으면서, 나 자신에게 적용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