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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09. 2017

05. 허울뿐인 대기업 근무복을 고발한다.

<정의는 약자의 손을 잡아줄까>

올해 서른네 살의 김정선(가명) 씨는 인터넷 설치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네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가장입니다. 올해로 인터넷 설치기사 일을 한 지는 4년이 됐고,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기는 했지만 비교적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잘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최근 꽤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전봇대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하다가 옆에 있는 나뭇가지에 눈이 찔려 각막이 찢어졌기 때문입니다. 치료를 받았고, 회사로부터 소정의 병원비를 받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별도로 산재 처리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회사 측은 ‘가벼운’ 사고여서 산재 처리까지 하기는 무리였다고 판단했지만, 그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당장 일을 쉬면 생계가 위태로운 데다 일을 쉰다고 해도 따로 보상이 나오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병석에 누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 산재 처리가 안 되는지, 왜 하소연할 대상이 불분명한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안약을 손에 쥐고 수시로 약을 넣어가며 다시 일터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정규직 분에겐 미안하지만, 비정규직도 같이 잘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정규직 분’에게 미안해해야 할까요? 왜 근로기준법에 맞는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기를 요구하면서 망설여야 할까요? 간접고용 노동자를 만나면서 이 의문의 답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근로자인지 사장인지 헷갈리는 사람들

간접고용 노동자는 용역업체나 대기업에 소속된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입니다. 대기업 소속의 인터넷 설치, 수리기사에서 전자제품 수리기사, 용역업체에 소속된 청소 노동자까지 우리 사회에 간접고용의 형태는 정말 많습니다.
     
“분명히 어떤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기는 한데, 나를 고용한 진짜 고용주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겠다. 분명히 대기업 로고가 찍힌 작업복을 입고 있는데 나는 대기업 직원이 아니다.”
   
이런 애매한 상황 속에 간접고용 노동자가 있습니다. 인터넷 설치, 수리기사의 신분을 보면 간접고용의 애매함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전국에는 대기업 센터가 160여 개 있습니다. 대기업의 협력업체, 즉 하청업체인 셈입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설치, 수리기사는 대기업에 직접고용이 된 노동자가 아니라 이런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은 간접고용 노동자입니다.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가운데서도 수리기사와 설치기사의 신분이 또 다릅니다. 수리기사는 하청업체 소속 정규 직원이지만, 설치기사는 하청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은 자영업자 신분으로 일합니다.
     
이제 설치기사들은 헛갈립니다. 나는 근로자인가, 사장인가? 일정 부분 출퇴근 시간의 통제를 받고 있고, 상사의 업무 지시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근로자입니다. 반면 고객에게 건당 수수료를 받고 일하고, 이에 따른 수당이 월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2014년 9월 고용노동부는 이런 설치기사의 사정을 고려하여 이들 가운데 일부를 근로자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기준조차 모호합니다. 어디까지를 근로자로, 어디까지를 사업자로 봐야 할지 그 기준이 들쭉날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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