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Feb 13. 2017

06. 나는 서비스센터 기사였습니다.

<정의는 약자의 손을 잡아줄까>

간접고용 근로자의 실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M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정범(가명) 씨의 사연을 접했습니다. 유가족을 만나러 천안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이제 두 돌이 갓 지난 인형처럼 예쁜 딸아이도 만났습니다. 그의 유서에는 M에 대한 울분이 가득했습니다.

     
“남들이 다 인정해주는 회사에 들어왔지만, 실상은 아니다. 정말 힘들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
   
고인의 아내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내는 인터뷰 내내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이런저런 부대비용을 떼고 나면 남는 게 없었어요. 고객 서비스 점수 받는 과정도 매우 힘겨워했고요. 회사 다니는 내내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났습니다. 그 어떤 이유도 죽음을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예쁜 딸아이를 두고 그런 일을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개인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던 노동 환경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느끼는 분노, 좌절, 박탈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습니다.
     
M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일한 근로자 천여 명은 지금 함께 모여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형식만 도급 계약을 맺었을 뿐 삼성이 모든 노동 과정에 직접 개입해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소송입니다. 도급 계약은 사용자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수단일 뿐이므로 M이 자신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M의 입장은 다릅니다. 협력업체 직원의 모든 통제권은 하청업체 사장에게 있으므로 자신들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는 것이 M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이런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이제 일상적인 근로 계약 형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K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 20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나온 김진석(가명)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명예퇴직, 그리고 하청업체 취직의 순서를 밟아온 그는 지금 예전과 같은 일을 하지만 기존의 3분의 1에 불과한 연봉을 받습니다. 그는 여전히 K의 지시를 받아 K관련 일을 하지만, 신분은 K가 아니라 하청업체 소속입니다. 해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하청업체 직원이 된 지금, 안정된 고용이나 복지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꼭 기업이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이 방법밖에 없는가?” 그는 수차례 되물었지만 적당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회 구성원이 견딜 수 있는 일자리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간접고용 근로자 수는 8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300인 이상을 고용한 사업장에서는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을 간접고용 근로자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대기업의 이름을 건 업무 공간에서 일한다 하더라도 대기업이 주는 혜택을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상당수 기업은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바꾸면 비용이 과도하게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지적을 합니다. 간접고용을 해서 그 관리업체에 지급하는 비용과 직접고용을 해서 노동자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실상 기업이 간접고용을 택하는 이유는 근로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업무 중에 다쳤을 때 합리적으로 보상해야 하고, 퇴직금도 줘야 하고, 4대 보험도 들어야 합니다. 여러 제반 복지도 신경 써야 하고, 계약 관계에 따라 고용을 한 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무차별적으로 해고할 수 없으므로 고용의 안정성도 지켜줘야 합니다. 
     
사용자로서는 번거로운 일입니다. 간접고용을 하면 근로자에 대한 이 모든 책임에서 한 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간접고용 상태에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간접고용이 일상화되고, 나아가 비정규직이 계속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강성태 한국노동법학회 이사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악순환의 쳇바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임금을 적게 받아 의미 있는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면 나라는 가난해집니다. 나라 재정이 부족해지면 복지 제도를 확립하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인간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고, 이로 인해 나라도 더 불안정해지는 악순환의 순환 고리가 단단해질 것이라는 얘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8. O2O, 세상을 바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