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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0. 2017

01. 박살이 난 유리 천장

<도널드 트럼프의 빅뱅>

이번 선거기간 내내 힐러리 클린턴은 유리 천장을 깨겠다고 주장했다. 유리 천장은 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한마디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에게 유리 천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는 힐러리 클린턴이 그 유리 천장을 파괴하는지 여부에 주목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성공한다면, 민주당은 ‘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여성’ 힐러리 클린턴까지 미국에 드리워진 두 가지 유리 천장을 깨뜨리는 기염을 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공화당이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만들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 천장을 깨뜨린 것은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였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무슨 유리 천장이 있었어?”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유리 천장은 도널드 트럼프가 깨뜨렸다.

미국 언론은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를 한마디로 ‘이변’으로 정의했다.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일까? 미국 국민 어느 누구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과거 미국 대통령 선거에는 날고 기는 선거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2007년 이후 모든 선거 결과를 거의 정확하게 맞춰낸 네이트 실버, 1984년부터 30년 동안 여덟 번에 걸쳐 치러진 대선 결과를 모두 맞춘 아메리칸대학의 앨런 리히트먼 교수, 1996년 대선 예측 모델을 개발한 후부터 2000년 대선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모든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온 뉴욕주립대학 스토니브룩 캠퍼스의 헬무트 노포스 교수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분석 기재를 통해 항상 차기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은 이번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엇갈렸다. 네이트 실버는 《ABC》와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의 여론조사와 마찬가지로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그리고 앨런 리히트먼과 헬무트 노포스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점쳤다. 그렇다면 일부 학자들은 맞힌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왜 주류 언론과 통계학자는 못 맞혔던 것일까?

물론 박빙의 선거였던 만큼 그 결과를 제대로 가늠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미국의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이 더 큰 문제다. 민의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이라면, 사실을 호도하거나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의 발표만 믿고 사표(死票) 방지 심리가 생겨 순간적으로 다른 선택을 한 유권자가 있었다면, 그것은 정말로 미국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이 처한 위기다.

정말 미국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럴 리가 없다. 미국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 심지어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민주 양당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확신한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유권자들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고성능 컴퓨터도 없던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에 쏘아 올린 나라가 미국이다. 그리고 인류가 달 착륙에 성공한 뒤 목표 잃은 미국 항공 전문가들이 살 길을 찾아 금융시장으로 진출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복잡한 방정식으로 이루어진 파생 상품을 만들어 미국이 세계경제를 좌우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 바로 이들이었다. 이처럼 고도의 분석력을 갖춘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 미국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알고 있었다.

선거 열흘 전 미 연방수사국(FBI,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이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재조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 직후 힐러리 클린턴은 제임스 코미 FBI 국장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제임스 코미 국장이 그런 비난을 감수하고도 이메일 스캔들을 다시 들춘 것은 이미 판세가 도널드 트럼프 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이 확실한데 제임스 코미 국장이 불필요하게 수사를 시작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 국익과 관련된 중요 사실이 담긴 이메일 수사를 중단한 FBI에 대해 문제를 삼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메일 수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절대적인 사안이었다. 다만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상황인 만큼, FBI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이메일 스캔들을 수면 아래로 내려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언론이나 여론조사와 달리 면밀하게 미국 국민의 동향을 파악해온 FBI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더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힐러리 클린턴 측의 비난을 무릅쓰고서도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발표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여러 분석 기재들을 들먹일 필요 없이, 구글 검색어 순위만 살펴봐도 도널드 트럼프의 우세를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1월 이후, 구글 순간 검색어 순위에서 도널드 트럼프 관련 콘텐츠는 언제나 힐러리 클린턴의 2~3배였다. 대통령 선거기간 막판에는 1.5배 수준으로 격차가 좁혀졌지만,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관심도는 언제나 힐러리 클린턴을 압도했다. 반드시 관심도가 지지도로 연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더 관심이 가는 인물에 더 많은 콘텐츠가 축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거기간 내내 도널드 트럼프에게 쏟아진 관심은 힐리러 클린턴보다 높았다.

이러한 상황은 유튜브 동영상 콘텐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유세 현장’을 표제어로 검색해보면 도널드 트럼프의 우세는 단숨에 확인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장은 몇만 명이 운집한 대형 체육관이나 경기장인 반면,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장은 몇백 명 정도가 모인 중 · 고등학교 강당, 프랜차이즈 식당같은 소규모 장소가 대부분이었다. 동영상을 올린 사람들 대부분이 도널드 트럼프의 열혈 지지자라고 할지라도, 도널드 트럼프의 판세를 강조하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장 상황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축소 처리하는 수고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 증거 화면과 자료를 통해 밝혀진 내용을 보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유세장 상황을 확대하고 과장한 것은 도리어 미국 언론이었다. 미국 언론은 힐러리 클린턴의 우세를 연출하기 위해 지지자 수를 몇백 또는 몇천 명이 모인 것처럼 왜곡했고,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는 연설하는 모습만 카메라로 비추고 유세장 상황은 보여주지 않기도 했다. 실제로 연설 중간중간, 도널드 트럼프는 카메라를 향해 “나만 비추지 말고, 유세장도 비추라”고 무수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방송사들은 그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방송 보도는 물론이고 신문과 인터넷 매체들까지 모두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 대한 보도는 무시하거나 축소했고, 반대로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 현장은 확대하거나 과장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볼 수 있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언론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2016년 11월 21일,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후 미국 방송사 사장과 진행자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미국 언론을 “부정직한 미디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간담회에 참석한 일부 언론인은 이튿날 신문에 “총살대 앞에 선 것 같았다”며 당시의 서슬 퍼런 분위기를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나는 지금 거짓말쟁이들 사이에 서 있다”며, “특히 CNN은 전부 거짓말쟁이들이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맹비난했다고 전했다.

대승적 차원에서 화합을 주도할 사람은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한 치의 틀림없이 당연한 말이다. 이제부터는 승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먼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미국 대통령답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언론이 자신에게 중립적이지 않았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그의 반응도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언론은 유세장 상황을 왜곡했고, 선거 공약은 뒤로 감춘 채 트럼프의 막말과 기행만 과장했으며, 힐러리 클린턴에게 우호적인 여론조사로 그를 불리하게 만들었다.

선거기간 내내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에게 덮인 유리 천장을 뚫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힐러리 클린턴보다 도널드 트럼프의 정계 진출을 가로막은 유리 천장이 더 두꺼웠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는 그것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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