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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1. 2017

01.  팔자는 내가 만들까, 남이 만들까?

<오늘은 내 인생의 첫날이다>


을지로의 잠 못 이루는 밤 

“삶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_그랜마 모세


예전에 시각장애인은 대부분 같은 시각 장애인과 안마원에서 만나 결혼하여 자식을 일찍 낳았다. 다른 장애와 달리 언제나 곁에서 수발을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길 안내도 해야 하고 식사도 일일이 챙겨줘야 한다. 아버지의 수발은 언제나 삼촌과 고모들의 몫이었다. 언제까지 집안에서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 없어 아버지는 일찍 결혼을 하였다. 23살 되던 해 같은 시각장애인 안마사와 결혼했다. 이듬해인 1971년 11월 내가 태어났다. 옛날에는 흔히 그랬듯 병원 아닌 집에서 할머니가 나를 받았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도 시각장애인, 어머니도 시각장애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과 온 친척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눈이 ‘제대로 보이는지’였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낳아준 생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생모에 대해 아는 것은 몇 가지 단편적 이야기뿐이다. 나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와 이혼하고 다른 안마원으로 가셨다는 정도다. 그것도 아주 나중에 들었다. 나를 길러준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27살 때 처음 알았다. 삼성물산에 입사하여 입사 제출 서류로 호적초본을 제출할 때 알게 된 것이다. 호적초본(현 가족관계등록부)을 처음 본 순간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7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생각을 추호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어머니는 나를 친자식보다 더한 사랑으로 키웠다. 

아버지는 라디오가 유일한 벗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에게 라디오는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이자 친구이자 선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평소 즐겨 듣던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소개하고 을지로 사는 맹인 안마사이며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듣고 싶은 음악으로 헨델의 ‘메시아’를 신청했다. 

같은 시각, 그 방송을 듣고 있던 한 여자가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남자의 사연을 듣던 여자는 뭔가에 홀린 듯 집에서 일하던 언니와 함께 남자를 찾아갔다. 여자는 어릴 때부터 입버릇처럼 “나는 커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과 결혼해 그 사람을 도와주며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여자의 부모는 말이 씨가 된다며 ‘범이 물어갈 년’이라고 혼냈다. 그렇게 혼나면서도 그 꿈을 버리지 않은 여자는 우연히 들은 라디오의 사연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명처럼 ‘애 딸린 이혼한 맹인 안마사’와 결혼해 꿈을 이룬 것이다. 바로 내 어머니의 이야기다. 

어머니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얼굴이 못생겼거나 불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용모가 단정했고 여고까지 졸업했다. 번듯한 집안에서 중매도 많이 들어왔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을 결심했다. 언니와 함께 처음 아버지를 만난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앞을 못 보는 청년이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손님을 맞이했는데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자장면과 군만두를 시켜 대접했다 한다. 남들과 똑같이 전화를 걸고 물건도 찾고 아무 불편 없이 거동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래서 음식을 먹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더니 아버지가 물었다. 

“왜 한 분은 안 드시고 계세요?” 

“아니에요, 먹고 있어요.” 

“아닙니다. 저는 안 보이지만 다 압니다. 한 분은 안 드시고 있네요.”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그것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 이후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 반찬도 만들고 청소도 해주었다. 그러다 결혼을 결심하고 평생을 반려자로 살아오시게 되었다. 그때 22살을 막 넘긴 꽃다운 나이였다. 

라디오를 친구 삼아 지냈던 시각장애인 안마사와 그 라디오에서 사연을 듣고 찾아간 여자,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과 사랑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때로 우리는 삶이 더 드라마 같고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톰 행크스 주연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잊지 못할 명작 중의 하나다. 톰 행크스는 아내와 사별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 역을, 맥 라이언은 다른 남자와 약혼한 여자 역을 맡아 열연했다. 두 사람의 만남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라디오였다. 톰 행크스의 아들이 라디오에 전화를 걸어 아내와 사별 후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그 사연을 우연히 들은 맥 라이언과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은 진정 한 편의 영화가 아닐까. 


팔자는 내가 만드는 것일까, 남이 만들어주는 것일까? 
 

“운명은 그 사람의 성격에서 만들어지고, 성격은 일상생활의 습관에서 만들어진다.” _데카르트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은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은 달콤하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가 달콤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결혼하지는 않았겠지만 시각장애인과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겠는가. 더구나 지금처럼 장애인에 대한 조그마한 배려도 없던 시절을 살아오면서…. 하지만 나는 자라면서 어머니에게서 단 한 번도 “아이구 내 팔자야”라는 푸념이나 원망 섞인 넋두리를 듣지 못 했다. 전처소생인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반항하고 말썽을 부릴 때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늘 아버지를 존경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을 뿐이다. 애 딸린 이혼남, 그것도 벌어놓은 돈도 없고 미래도 희망도 없는 맹인 안마사와의 결혼을 결심한 사람은 어머니 자신이었다. 

자신의 선택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긍정의 힘인지 아니면 신앙의 힘인지는 모르지만 어머니는 후회의 말, 불평의 말없이 늘 감사하는 마음과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다. 그것은 어머니뿐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늘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으며, 처지를 비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은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으며 팔자타령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게 “팔자타령 하지 말라”고 가르친 적도 없다. 말로 가르쳐주지 않았으나 나는 부모님의 삶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가르침을 배웠다. 불가의 가르침 중에 훈습(薰習)이 있다. 향이 옷에 배듯 어떤 것에 계속하여 자극을 주거나 노출될 때 점차 그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삶에서 보여준 모든 행위가 자식의 마음에 그대로 가르침으로 남는 것이 바로 훈습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아이고, 내 팔자야”라고 한탄하며 스스로를 비관하거나 푸념을 늘어놓는다. 뿐만 아니라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한다. 이러한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성공하고 꿈을 이루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는 아이 달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져 울음을 터뜨리면 옆에 있던 엄마나 할머니가 아이를 일으키며 말한다.   

“어이구 내 새끼, 누가 그랬어?”

분명 누구 때문에 넘어진 게 아닌데도 대부분의 엄마나 할머니는 대뜸 누가 그랬냐며 달랜다. 그러한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아이는 넘어진 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남 탓하기를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이다. 나쁜 의미의 훈습이다. “누가 그랬어?”라고 달래서는 안 된다. 자칫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은연중에 각인시키고, 남 탓하는 습관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말 습관을 바꿔보자. “어이구, 내 새끼 누가 그랬어?”가 아니라 “어이구, 어쩌다가 이랬어?” 또는 “어이구, 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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