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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우리는 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

by 더굿북
“그녀가…정말…떠났어.”


그는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온몸의 힘을 다 써버린 듯했다.

샤오바이는 그녀가 방황을 끝내고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 광저우에 출장을 갔다가 샤오바이를 만났을 때 그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두 사람이 다투면 한 사람은 반드시 제자리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마저 포기하고 가버린다면 그녀가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가 없잖아.”

그날 샤오바이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헤어질 때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던 그였다.

그녀와 완전히 헤어진 다음 날 샤오바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방 친구들을 모두 깨우더니 새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전공서적을 꺼내 들고 다른 친구의 강의 시간표를 베껴서 일찌감치 기숙사를 나섰다. 그런데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샤오바이가 씩씩거리며 다시 들어왔다.

“멍청아, 이건 지난 학기 강의 시간표잖아!”

샤오바이가 실연의 아픔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틈을 이용해 고백을 하려는 여학생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오래가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은 조금 달랐다. 외국어 학부에 다니는 통통한 여학생이었는데 매일 커다란 검은색 배낭을 메고 다녀 우리는 그녀를 닌자 거북이라고 불렀다. 닌자 거북은 맛있는 것을 싸 들고 자주 기숙사로 찾아와서는 샤오바이가 유명 가수의 새 앨범을 사는 것을 도와주고 웃긴 얘기들을 해주며 깔깔거렸다. 샤오바이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기숙사에 찾아올 때 늘 다른 친구들 것까지 챙겨오는 마음 씀씀이를 보고 우리는 닌자 거북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샤오바이는 닌자 거북의 관심과 호의를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모두 닌자 거북에게 희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연당한 기회를 노리는 건 남자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여자들도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는구나. 그런데 혹시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우리와 계속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어.”

닌자 거북은 그렇게 하겠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 되었고 친구들은 모두 미래를 고민하기 바빴다. 첫사랑과 결혼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던 샤오바이는 그녀와 헤어진 뒤로는 아무 계획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군대에 입대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모두들 깜짝 놀랐지만 정작 본인은 지난 일 년 동안 허송세월했으니 이제 뭔가 뜻깊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친구들마다 학교를 떠나는 시기가 달랐기 때문에 대대적인 송별회나 눈물의 작별 인사 등은 모두 생략했다. 우리가 4년 동안 함께 한 시간을 떠올려보면 마치 연속극을 보는 것 같았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모든 일은 결국 괜찮아질 거야. 그렇지 않다면 아직 끝이 아니라는 의미지.’

나는 우리의 인생이 언젠가 모두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학교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샤오바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 이제 간다. 다음에 보자. 잘 지내.’

그는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학교에 입학해서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난다. 그때는 네가 너무 작아 보여서 왠지 내가 지켜줘야만 할 것 같았어. 그런데 지금의 너는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있을 만큼 강해졌어. 앞으로도 그런 모습을 잃지 않기를 바래. 나도 잘 지낼게. 다음에 보자. 안녕.’

닌자 거북은 광둥성에 있는 한 학교의 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떠나기 전 샤오바이를 만나러 갔지만 그가 만나주지 않아 결국 눈물을 흘리며 학교를 떠났다.

어떤 일은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일에 뛰어든다.

안녕. 모든 친구들아. 바람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우리는 모두 4년 동안 들이마신 숨을 참으며 사회라는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손발을 허우적거리면서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멈추면 안 돼. 2초만 더 견디는 거야.’

언젠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수 있기를, 그리고 노력하면 정말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학교를 떠난 이후로 샤오바이와는 거의 연락을 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그가 타이위엔에 있는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때마침 회사에 타이위엔으로 출장을 떠나는 동료가 있었다. 나는 천 위안(약 17만 원) 남짓한 첫 월급 중 절반을 떼어 고급 담배 두 갑과 특산품을 몇 가지 사서 샤오바이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꾸러미 안에 짧은 메모를 끼워 넣었다.

‘듣자 하니 군대에서는 군기를 잡는다고 기합을 많이 준다더라. 만약 맞을 일이 생기면 담배 한 개비 건네면서 잘 넘어가 봐, 그리고 네가 선택한 일이니 즐겁다면 계속해도 좋지만 혹시라도 힘들다면 당장 그만둬.’

얼마 후 샤오바이에게서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그의 글씨체는 여전히 세련되었다. 그는 부대 안의 생활이 엄격해서 우리가 함께 보낸 대학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내가 여기서 맞고 다닐 것 같아? 나처럼 착하고 인상 좋은 사람을 누가 때린다고! 그나저나 다 좋은데 한 가지 나쁜 점은 여기 있으면 연애를 할 수 없다는 거야.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좀 보고 싶기도 하네.’

‘아, 다음에는 괜찮은 음악 CD 좀 보내줘. 여기에서 목청껏 군가만 불렀더니 이제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 건지 까먹었어.’

‘지난번에 애들한테 들으니까 너 요즘 일이 바빠서 모임에도 잘 안 나온다며.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정말 부럽다. 나는 아직도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잘 모르겠어. 그냥 좋았든 나빴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비록 현재의 생활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어.’

‘바쁘지 않다면 편지로 네 소식 좀 자세히 전해줘. 전화는 끊고 나면 다 잊어버리지만 편지는 두고두고 읽을 수 있잖아.’

‘고맙다, 친구야.’

‘고맙다 친구야’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그가 정말로 우리의 대학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드넓은 바다에 우리 같은 부목들이라도 떠다니니 목숨을 부지하고 종종 수면 위의 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빛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 다른 지금의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다. 그때가 졸업한 지 1년쯤 지난 때였다.

그 이후 샤오바이는 부대를 옮겼고 나 역시 새로운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큰 파도에 휩쓸려 정신을 잃은 것처럼 몇 년 동안 우리는 서로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사이가 변할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몇 년 후 다시 만나도 우리는 여전히 철없는 그때 그 대학생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세월에 순응하지 않고 거센 운명에 무릎 꿇지도 않을 것이다.

졸업한 지 5년쯤 지나, 샤오바이는 광저우로 거처를 옮겨 정부 기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다음 해 광저우에 집을 사고 결혼 준비를 했다. 나는 그해 광저우 출장을 갔다가 샤오바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나타난 건 한때 몸무게 60킬로그램의 호리호리한 젊은이가 아닌 85킬로그램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내가 물었다.

“결혼 상대는 누구야?”

그가 대답했다.

“닌자 거북 기억나?”

우리는 그날 맥주를 열 잔이나 마셨다. 닌자 거북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을 위해,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행복한 현재를 위해, 지키지 못한 어린 시절의 맹세를 위해, 나를 이해해주는 너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추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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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샤오바이와 잘 아는 사람이 운영한다는 광저우 최고급 노래방에 갔다.

사장님이 메뉴판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시키고 싶은 건 뭐든지 시키세요. 술도 과일도 담배도 시키고, 노래도 맘껏 예약하시죠.”

나는 술을 한 잔 마시고 샤오바이에게 속삭였다.

“엄청 고상한 곳이라더니… 솔직히 이런 데는 품위를 포기한 사람들이나 오는 곳 아니냐? 너 엄청 수준 높게 봤는데 실망인걸.”

샤오바이도 술을 한 잔 마시고 조용히 말했다.

“지난번에 사장님한테 가장 친한 친구가 나를 만나러 온다고 했더니 꼭 데려오라고 하더라고. 친구가 촌스러워서 큰 레스토랑 같은 데나 좋아한다고 하니까 뭐든 대접해주겠다며 큰소리쳤어. 아마 우리의 깊은 우정이 이곳의 휘황찬란한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봐. 그러니 그냥 저 사람 의견을 존중해줘.”

샤오바이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이유로 사장님은 내게 끊임없이 술을 권했다.

샤오바이가 말했다.

“이야, 술 마시는 거 보니 많이 컸는걸!”

나는 방금 전 가게에 대해 한 말이 마음에 걸려 이렇게 물었다.

“넌 내가 고상한 척이나 하는 속물이라고 생각해?”

그가 대답했다.

“예전의 너라면 이런 경우에 술을 몰래 내 잔에 모두 따라버렸겠지. 하지만 지금의 너는 술잔을 모두 비웠어. 이건 상대방의 성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야.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우리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해. 내일은 녹음기를 하나 들고 와서 녹음했다가 어디 가서 성공학 강의나 할까 보다.”

어떤 일을 꼭 여러 사람이 알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만이다.

다음날 나를 배웅하면서 샤오바이가 말했다.

“앞으로 자주 오지는 말아라. 너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예전 내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 네가 가고 나서 다시 지금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까지 한참이 걸릴 거야.”

내가 물었다.

“지금 생활은 어때?”

“좋아. 태어나서 이렇게 지루한 생활은 해본 적이 없거든. 이것도 처음 경험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즐거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미친놈.’

그 후로 시간이 흘러 이 이야기가 시작된 시점이 된 것이다. 샤오바이와 나는 그날 저녁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지난번 만남 이후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샤오바이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이제 그에게 자기만의 생활은 없어졌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근하고, 주말에 낮잠이라도 자려고 하면 닌자 거북이 억지로 깨워 아이들과 바깥 활동을 해야 한다며 성화를 부린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이 모두 근처로 이사를 오셔서 매일 함께 식사한다고 했다. 그는 무슨 근거로 자녀에게 아빠의 사랑이 부족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부모님은 늘 바빠서 함께 한 시간이 적었는데도 이렇게 ‘훌륭하게’ 잘 크지 않았냐면서 말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벤치에 앉아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나는 몇 마디 안 하고 샤오바이가 하는 길고 긴 얘기를 듣고 있었다. 가끔씩 끼어들어 ‘그래서 지금 네 인생이 행복한 것 같아?’라는 식의 찬물 끼얹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물어본들 뭐가 달라지겠나 싶어 관뒀다.

샤오바이는 대학교 때 여자친구로 인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계획이 무너진 이후 다시는 그 어떤 계획도 세우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차피 선택한 일이라면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하면서 최악의 상황만 피하자는 주의로 살고 있었다. 그는 분명 군대에서 혹독한 훈련과 상관들의 기합을 받으며 힘들어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말로는 살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며 과연 군대란 곳이 듣던 대로 엄청난 곳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지금도 매일 사무실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며,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하고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큰 말썽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연말에 두둑한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고 좋아했다.

결혼 이후 닌자 거북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 때문에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샤오바이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뭐랄까, 마치 집안에 나만 아는 미녀를 숨겨 놓은 기분이랄까. 좀 뚱뚱하긴 해도 성격은 굉장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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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그에게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는 더 이상 농담도 하지 않게 되었고 엄청난 부담감이 그를 계속해서 깊은 물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혼자서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고 나는 조용히 들어줬다. 말을 마치고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웬일로 비웃지 않는 거야?”

내가 말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에 너를 자극했던 건데 오늘 네 얘기를 들어 보니 이제 완전히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던 거야.”

샤오바이가 한바탕 시원스레 욕을 하고는 말했다.

“늦었다. 내 차로 데려다줄게. 너 내 차 못 봤지? 엄청 크다! 보고 너무 부러워하지 마라.”

잠시 후 승합차가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큰 차랬지 좋은 차라고는 안 했다. 주말마다 이 차를 타고 온 가족이 나들이를 떠나.”

호텔에 거의 도착할 무렵 샤오바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나 조만간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일반 회사로 옮기려고 해. 연봉은 많지 않지만 먹고 살 만큼은 돼.”

“뭐라고?”

내 멍한 표정을 보고 샤오바이가 말했다.

“예전에는 젊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어. 그런데 나도 벌써 삼십을 훌쩍 넘었고 지금처럼 일하다가는 머지않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 같아. 그래서 모험을 조금 해보려고 해.”

잠시 후 그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응원해 줄 거지?”

나는 샤오바이를 바라보며 지난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침대 아래층을 내게 양보한 일, 실연을 당한 뒤 글쓰기를 그만둔 일,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군대에 입대한 일, 닌자 거북과 다시 만난 일,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일, 드라이브가 가장 좋다고 말하면서 업무용 승합차를 몰고 다니는 일… 샤오바이는 언제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고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을 적절한 유머로 넘길 줄도 알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위로 올라가지 못할 때 그들을 위해 기꺼이 사다리가 되어주었다. 마치 언제든 사다리를 휴대하고 있는 것처럼 그와 함께 있으면 어디든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었다.

“이 자식아, 내가 묻고 있잖아!

나는 대학 시절 노래경연대회 포스터 앞에서 망설이고 있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때 샤오바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너만 좋다면 함께 나가고 싶어. 준비가 다 되면 신청하러 가자.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이번에는 내가 샤오바이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응원해주고말고.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차에서 내리자 샤오바이가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벌써 몇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우리는 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유일하게 변한 것은 샤오바이 곁에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 대신 닌자 거북과 두 아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체중이 85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후덕한 아저씨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샤오바이에게 그에 관한 글을 쓴다고 이야기할 때 나는 가명을 쓸 테니 안심하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오히려 샤오바이는 가명 대신 진짜 이름을 써도 된다고 흔쾌히 허락해줬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볼 텐데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이 괜찮으냐고 재차 물었다. 그는 그런 건 상관없다며 원고가 완성되면 한 번 보여 달라고 말했다.

나중에 완성된 글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야야, 내가 무슨 85킬로그램이 넘는다고 그래. 나 84킬로그램이거든!”

누구나 인생에 이런 친구가 한두 명씩 있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와 달리 이들과 함께 있으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지 않고 어떤 얘기도 털어놓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서로의 가장 행복한 시절도, 가장 불행한 시절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누가 더 잘 살든 못 살든 상관이 없다.

누군가와의 관계에 더 이상 성공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당신과 그 사람은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 외에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샤오바이와 나는 요즘도 만나면 서로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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